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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Oct 05. 2023

들라크루아의 일기_18221005

10월 5일, 파리

좋은 하루였다. 멋진 친구 에두아르와 하루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모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설명했고, 그는 내 생각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에게 술리에*의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아침에는 페델**과 함께 리즈네 삼촌을 보러 갔다. 삼촌은 다음 주 월요일에 가족과 함께 식사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많이 기대된다. 

우리 셋은 루제***의 집으로 가서 그를 데리고 수상작 전시를 보러 갔다. 그로 씨의 제자, 그중 뛰어난 제자인 드베이****의 그림과 토르소 조각상에서는 선생의 화풍이 보였고 난 거기에 싫증을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배우고 싶었는데!……

리즈네 삼촌은 내 그림에 감동을 받고 반한 것 같다. 그들 모두 나에게 혼자만의 길을 가라고 했고, 나는 지금 그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뭔가 한 가지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오늘 아침에 입어봤지만 어울리지 않았던 옷이다. 길거리를 다닐 때마다 옷만 보고 있다. 


━삼촌은 나를 제라르 씨*****에게 데려가겠다며, 오스타데의 '겨울 풍경Paysage d’hiver'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화가의 그림, '아틀리에에 있는 화가Peintre dans son atelier'를 따라 수채화를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삼촌은 이밖에도 플랑드르 화가 몇 명을 거론했다. 



*프) 술리에 역시 삐에레와 펠릭스 기유마르데처럼 들라크루아의 절친한 친구였다. 둘은 1816년부터 알고 지냈고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둘은 같이 그림을 그렸는데, 다소 소소한 습작들이었다. 들라크루아의 편지를 출판한 뷔르띠는 들라크루아가 술리에게 쓴 첫 편지 주석에 술리에 자신이 쓴 내용으로 그를 설명했다. “매일 저녁 나는 벙돔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내 누추한 방에서, 특별한 경우에는 지방장관 메종포르 후작의 비서일을 하며 지내는 도멩 호텔에서 젊은이들을 만난다. 내 사무실에 있는 오라쓰 레쏭이 들라크루아를 데려왔다.” 그는 죽을 때까지 들라크루아와 우정을 이어갔다. 1862년에 들라크루아가 술리에에게 쓴 편지에는 그러한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이 편지를 쓸 때 그는 이미 심각하게 아픈 상태였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그 행복한 순간을, 그리고 같이 만나며 마음껏 즐기던 순간을 떠올린다네.”   

    영) 들라크루아의 친한 친구인 에두아르 술리에는 그 당시 피렌체에서 프랑스 장관의 비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영어 과외로 부수입을 얻었다. 1816년, 그는 바로 이런 식으로 들라크루아를 처음 만난다. 술리에는 들라크루아에게 당시 프랑스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던 수채화 기법을 전해주었는데, 이것은 코플리 필딩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


**페델은 장점이 많은 건축가였다. “그자는 아주 활기차고, 낭만파 젊은이들에게 호의적이고,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상냥한 중재자였으며, 정이 많고, 헌신적이고, 예술가들의 예술가이자, 애호가들의 예술가인 사람이었다.” (어니스트 셰스노, 낭만주의 화가와 조각가들, 82쪽)


***조르루 루제는 1784년에 태어나 1869년에 사망했다. 다비드의 제자였으며 그의 위대한 몇몇 작품에서는 보조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1812년 살롱전을 통해 데뷔했다. 주로 대형으로 제작한 역사 그림과 초상화가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1849년, 들라크루아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가르니에의 뒤를 잇기 위해 미술원에 지원한다. 그러나 선출된 사람은 레옹 꼬니에였다.


****1804년 낭뜨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조각가 드베이는 1824년 그림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했다. 들라크루아가 그에게 가진 생각은 시간과 함께 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1857년에 쓴 다음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비록 나는 우리가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원자를 머릿속으로 정해 놓았지만, 드베이 씨에게 조금이라도 정의를 돌려주기 위해 그를 명단의 유리한 자리에 놓아줄 것이네. 그가 가진 조각가로서의 장점과 특색 있는 자질이 부각될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네.” (들라크루아의 편지, 제2권, 118쪽)


*****(영) 바론 제라르(1770-1857)는 로마 제국시대 잘 나가던 초상화가로 탈레이랑의 소개를 통해 루이 18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제라르가 속한 인맥, 즉 굉장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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