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화요일
━삐에레 무릎이 안 좋아 집에다 데려다준 후 거기서 잠시 쉬었다. 난 거의 넋을 놓고 그 집 하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옆얼굴에는 순결함이,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삐에레 아내의 들창코와는 대조적인 저 곧은 코! 나는 들창코를 자연의 흠으로, 곧은 코는 결점 많은 인간에게 주는 벌충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들창코가 상당히 추한 건 사실이다. 이건 본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늘 그렇듯 지금도 내 육체의 초라함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내 조카를 볼 때마다 그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다. 말을 오래 할 수가 없다.
━오늘 저녁 펠릭스가 그린 리즈네의 작은 초상화를 다시금 감상했다. 나도 그렇게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꾸고 싶진 않고, 다만 이런 단순함을 갖고 싶다. 내 생각에 긴장된 작업 없이 눈을 그리는 건 너무 힘든 것 같다. 특히 위쪽 눈꺼풀과 눈썹 사이의 간격을 표현하는 것 말이다!
━다음날, 그러니까 수요일에는 저녁에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뜨겁게 덥힌 브랜디와 뱅쇼를 마셨다.
━일요일, 그러니까 엊그제에는 얼마 전 대화를 나눴던 마당 드 꽁쁠랑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곡을 함께 노래했다.
━돈 후앙을 샀다.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
━나는 자꾸만 색을 바꾼다. 꼭 있어야 할 평정심이 더 이상 없다. 모델이 힘들어할까 싶어 내 마음도 괴롭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충분히 관찰하지 않는다.
*들라크루아의 조카, 즉 누이 앙리에뜨의 외아들이었던 샤를 드 베르니낙은 미국으로 보내져 영사일을 하다 1834년에 뉴욕에서 생일 마감했다. 발파라이소에서 오는 길에 베라크루즈에서 감염된 황열병 때문이었다.
샤를 드 베르니낙은 아주 아름답고 우아했던 엄마를 닮았다. 그에 반해 외젠 들라크루아는 허약한 체질이었다. 이러한 건강상태는 1820년에 앓았던 열병 때문이었으며, 일생 동안 그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