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아이는 동글동글 동글뱅이 안경을 꼈다. 시력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처음으로 안경을 쓰게 된 날, 드디어 책에 있는 글씨가 보여 뛸 듯이 기뻤지만, 온 세상이 콧등에 내려앉은 듯 무겁게 느껴지는 건 조금 불만이었다. 시력이 나아지긴 했지만 멀리 있는 건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하게 형체만, 색채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안경인데도 고작 이만큼만 보인다고?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옆에 서 있던 엄마가 부드러운 손으로 뺨을 닦아 주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아이가 혼자 다락방에 올라와 창문을 내다본 지는 꽤 되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이의 삶에서는 정말 오래된 것만 같은 기간 동안, 아이는 매일 다락방으로 올라와 창문 밖을 보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눈이 나쁜지도 모르고, 아이는 그저 멀리 있는 것은 원래 그렇게 안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던 터였다. 잘 보이는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작은 창문 밖 세상을 보면 풍경은 한 편의 추상화 같았다. 아름다운 추상화. 움직이는 추상화. 뭔가 움직이는 형체가 보였고, 때로는 커다란 새가 창문 바로 앞을 지나 날아들기도 했다. 마치 인사라도 하듯. 그러면 아이는 뭔가 뚜렷이 보인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이미 날아가 버린 새에게 손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는 제대로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매일같이 다락방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햇빛도 나른하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던 어느 날 오후. 햇빛에 보송하게 마른빨래를 개며 엄마가 물었다.
-매일 같은 거 보면 지루하지 않아?
-아냐 엄마. 매일 변해. 매일 색이 변하고, 매일 분위기가 변해.
-그래서 정확히 뭘 보는데?
-그냥. 색깔을 봐.
-좋아하는 색깔 찾으려고?
-아니, 보이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때였다. 아이의 세상에 균열이 생긴 순간이. 아이는 멀리 있는 것은 색채와 분위기의 움직임으로만 감지하고 있었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억울했다. 뭔가 많이 놓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설명을 마치고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이미 우는 아이를 더 울리고 싶지 않아 아무 말 없이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을 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안경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이는 밤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세상이 달라질 거야! 안경이라는 것을 맞춘다고 했다. 그걸 끼면 세상이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 다락방에 올라가 창문을 봐도 저 멀리 강 끝까지 난 길이 모두 보인다고 했다. 아이는 마음이 들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멀리 있는 것을 봐도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을 보는 만큼 선명히 보일 거라니, 말도 안 돼. 책을 읽을 때마다 찡그리던 얼굴도 이제 없을 거라 했다. 아이는 책을 워낙 좋아했기에, 책을 잘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안경인데 고작 이만큼만 보인다고? 물론 책은 잘 보여서 그건 기뻤다. 하지만 쿵쾅거리며 올라간 다락방에서 창문 밖을 내다본 순간, 아이는 어젯밤 잠을 못 잔 게 너무 아까울 정도로 실망했다. 생각만큼 잘 보이지가 않았다. 여전히 저 멀리 있는 것은 뭉텅이로 보였고, 자세한 모습은 알 수가 없었다. 안경마저도 돕지 못한 시력 때문에, 아이는 속이 상했다. 그래서 곧바로 다락방에서 내려와,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엄마가 노크를 해도 대답도 않고, 안경도 쓰지 않은 채 침대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더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엄마는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눈이 그만큼 나빠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으로 홀로 울던 엄마는, 다음에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이를 걱정하게 되었고, 이제는 슬슬 이 슬픔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서 묘안을 짜냈다. 매일 아이와 다락방에서 데이트하기. 아이가 좋아하는 마들렌을 굽고, 향이 좋은 홍차를 우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창문을 같이 내려다보면 어떨까.
침대에 몸을 묻은 아이는 엄마의 묘안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게 무슨 소용이람. 하지만 엄마까지 슬프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걱정을 많이 끼치게 만든 대가라고 생각하자.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끄덕이다가, 못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엄마와의 티타임이었다.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는 차를 우렸다. 붉은 기가 도는 홍차를, 늘 마들렌과 함께 내왔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뒤를 따라 삐걱이는 마룻바닥을 지나, 더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 다락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창문 앞에 조심조심 쟁반을 내려놓으면 둘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일단 마들렌을 한 입 물고, 입 안에서 퍼지는 버터 향을 음미했다. 그런 후에 홍차로 입가심을 했다. 이것은 둘의 의식과도 같았다. 아무 말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티타임. 아이는 언제부턴가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 가끔은 눈물이 날 것만 같이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그렇게 조용히 차를 마시고 나면 둘은 작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매일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붕 박공 아래 작게 난 창문으로 내다보면, 저 멀리 강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엄마는 매일 아이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가,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흐릿하게 보이는 저 형체가 사실은 작은 강아지임을, 그리고 빨갛게 흔들리는 그 존재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이라는 것을, 엄마의 눈을 통해, 그리고 엄마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느 날에는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어느 날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 천천히 산책을 하면, 또 어느 날에는 마을 이장님 댁 대가족이 오순도순 함께 걸어가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직 버터향이 가시지 않은 입을 열어, 지금 펼쳐지는 풍경을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초록색 뭉텅이가 사실은 옆집 아저씨였다는 것을, 저렇게 꼬물거리는 것들이 사실은 이장님 댁 대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움직이는 추상화는 엄마의 설명으로 세밀화가 되었고, 아이는 눈에 보이는 것과 엄마의 설명을 토대로 만든 상상으로 세상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되었다.
아이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매일 엄마와 함께 하는 티타임이 즐겁다는 것이, 버터 향 가득한 마들렌을 매일 먹는 게 기쁘다는 것이,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엄마의 설명으로 본다는 것은 아주 다행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는 점심을 급하게 먹었다. 어서 빨리 올라가고 싶었다. 엄마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재빨리 물을 올리고 홍차를 우렸다. 이미 구워낸 마들렌의 향기가 온 집을 채우고 있었다. 둘은 삐걱이는 마룻바닥을 지나, 더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 다락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창문 앞에 조심조심 쟁반을 내려놓았고, 둘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일단 마들렌을 한 입 물고, 입 안에서 퍼지는 버터 향을 음미했다. 그런 후에 홍차로 입가심을 했다. 이제 창밖을 볼 차례다. 엄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볼 시간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이 전망 좋은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