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일요일
나의 소중한 XXX*가 돌아왔다. 오늘 만났다. 다시 보자 그저 기뻤다. 그런 후 가슴이 조이는 듯 고통이 느껴졌다. 그를 데리고 방으로 가려는데, 빌어먹을 편지가 거기 있는 게 기억났다. 그는 필체를 알아볼 터인데……. 나는 망설였다……. 그를 다시 만났다는 기쁨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핑계를 만들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늘어놨다. 결국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저녁에 다시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며 떠났다. 우리는 산책을 했다. 그에게 저지른 내 잘못 때문에 그와 J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신이시여 그가 계속 모르게 해 주소서!
그런데 이런 순간, 왜 나는 만족스러운 자만심을 느끼는가? 그가 뭐라도 알게 되면 가슴이 찢어질 텐데.
그는 음악을 하느라 바쁘고, 나는 그 사실에 기쁘다. 오늘 함께 보낼 즐거운 저녁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한때 생생하게 느꼈던 행복이 다시 재현되는 것은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똑같은 사람들과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게 내가 그와 함께 보낸 유쾌하고 친밀했던 순간이 다시 돌아오는 걸 막는다거나, 내가 담아둔 그 기억을 막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도 일종의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그가 있는 세계는 나의 세계와 다르다. 나는 그와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 무엇이 내게 어렴풋이 걱정거리를 던져주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의사표시를 했고, 더 이상 조금도 연관되고 싶지 않다……. 어제 나는 XXX와 대화를 나눴다……. 그도 뭔가 속임수가 있다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여긴다. 그와 대화를 한 이후로, 나는 걱정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졌다.
━ 나는 어제 에두아르, 로페즈**와 함께 모짜이스***의 아뜰리에에 갔다. 멋진 아뜰리에였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나 멋진 아뜰리에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 나는 아직도 이탈리아 극장의 그 여성을 보러 갈지 말지 저울질하고 있다.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황홀경에 빠진다. 그것에 대해 꿈을 꾼다. 마치 나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행복과도 같다. 오직 꿈에서나 가질 수 있는, 다른 생의 기억 같은 것. 이 행복은 내가 손에 넣었을 때는 생기가 거의 없었지만, 오늘은 내 상상력으로 색을 입었다. 이 상상력은 내 고통과 기쁨의 원천이다.
━ 빠스꼬 삼촌 댁에서 저녁을 먹은 건 지난주 금요일이었을 거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멍해질 만큼은 마셨다. 엄격한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겠지만,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펠릭스도 있었고, 앙리도 왔었다.
* (프랑스어판에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영어판에는 술리에라고 밝혀져 있다) 술리에는 피렌체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들라크루아는 그가 없는 동안 발생한 상황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다. 술리에의 정부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류사회에 출입하던 것은 분명하고, 이 일기에서는 J라는 이니셜로 언급된다.
**Lopez 또는 Lopès라고 표기되는 그는 무명의 화가로 생을 마감했다. 1833년과 1835년 살롱전 카탈로그에 누구누구의 제자 Lopès라고 언급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동일인으로 보이며, 그는 들라크루아의 어린 시절 친구였다.
***장-바티스트 모짜이스는 빈센트의 제자로, 초상화 화가이자 석판인쇄공이었다. 그는 1784년에 태어나 1844년에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