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반년째 감금되어 있다.
자발적 수감생활이라 해야 할까. 코로나가 꿈틀대기 시작한 1월의 어느 날, 싱가포르에 있는 팀장으로부터 가능한 재택근무를 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평소에도 이른 새벽에 해외 인력과의 미팅이 있는 날은 종종 재택근무를 했지만, 아예 매일 재택근무를 하는 건 나에게도 좀 생소한 일이었다.
'한 2,3주 뒤쯤이면 오피스에 가도 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을 품은 채, 좁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내가 '짱 박혀' 일할 수 있는 공간인, 옷방 aka 골방으로 출근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방에 갇혀 반년 동안 단 하루도 예외 없이 일하게 될 줄.
지금부터 써나갈 이야기들은 그저 집안에서 셀프 감금당한 한 인간의 특별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기록이다. 혹 두서없이 횡설수설한다면, 이는 장기간의 조난 혹은 감금 혹은 표류로 인한 것이리라.(라고 믿고 싶다.)
프랑스 유학시절 살았던 집은 100년이 넘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는 그게 평범한 거라 했다.
"너희 집은 50년 되었어? 이얼, 신축인데?"... 대강 이런 느낌이랄까.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프랑스 기준 신축이다. 그런데 그 집은 한국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신축이 아니란 '오해'를 받고 있을 뿐.
이 오래되고 좁은 우리 집에서 내가 '피신(?)'할만한 공간은 옷방으로 쓰고 있는 구석의 골방뿐이다. 이른 아침 시간에 미국팀과의 미팅을 해야 할 때는 출근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종종 WFH(Work from home)이라는 이름으로 재택근무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 골방은 나의 사무실로 변신하는 소중한 공간이 돼주곤 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많아야 하루 정도였던 재택근무였기에 골방에서 일하는 데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 적당한 거리로 우린 계속 지냈어야 했는데...
2020년 설 연휴가 끝나가던 시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길에서 픽픽 쓰러진대!"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고, 방호복을 입은 무리가 나타나 쓰러진 사람을 수거해가는 광경들. '이게 실제 상황이라고?!' 중국 우한의 실시간 영상이라며 찌라시처럼 단톡 방에서 돌던 영상들은 영화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과 공포의 코로나 19는 중국을 휩쓸고 난 뒤, 두 나라의 가까운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재빠르게 한국에서도 퍼져가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에 있는 팀원들은 별다른 지침이 있을 때 까진 재택근무하세요"
그즈음 팀장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당시 엄청나게 많은 환자가 창궐했던 중국과 함께 '한국도 싸잡아(?) 묶였구나!'라는 약간의 억울함도 느껴졌지만, 이제 나는 저 골방에서 당분간(길어야 한 달이겠지 라는 마음이었지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가 당분간 그 방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려면 좀 사무실의 구색은 갖춰야 할 텐데? 그래서 방을 사무실처럼 좀 꾸며볼까 하고 집에 뭐가 있는지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집에 유일하게 있는 책상은, 본의 아니게 수납장(이라고 쓰고 '짐덩어리'라 읽는다)으로 용도변경이 되어 수많은 짐들을 머리에 인채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간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때엔, 매일 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니, 다리미판을 임시로 놓고 그위에 노트북 등등을 쌓아서 일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아늑한 느낌의 엣지 있는 홈 오피스 룩
"에이 뭐, 얼마나 오래가겠어. 일단 해보고 불편하면 방법 찾아보자."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은 최대한 미루고 피하려는 나의 성향은 여기서도 발휘되어, 그냥 하던 대로 하자며 가볍게 마음을 먹었다.
"뭐가 필요하더라? 노트북이랑 충전기. 음... 다리미판 쓰면 되고, 의자는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갖다 써야겠다."라며 아내 화장대의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집에서 24시간 붙어 괴롭히는데, 위로의 선물을 사주기는커녕 화장대 의자마저 빼앗아 버려 아내에게 참 면목이 없지만... 다리미판에 화장대 의자라는 오묘한 조합. 잠시 '아, 이건 아닌 거 같다.'라고 생각이 들다가, '뭐 어때? 그냥 일만 할 수 있음 되지.'라는 마음과 함께, 이내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한 사무실이지 않나. 깊이 생각 안 하니, 또 언뜻 아늑해 보이고 좋아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1월의 어느 날 아침, 주섬주섬 '허름한' 혹은 '단출한' 생존 키트를 챙겨서는 골방에 입성한다. 이 세팅으로 반년을 지내게 될지는 상상도 못 한 채.
그리고 그저 특별할 것 없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고,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골방 표류도 시작되었다.
*누구도 코로나 시대가 올 거라 생각 못했듯, 이런 주제로 매거진을 발행할 생각은 못했었는데, 수개월째 계속 재택근무를 하며 쌓이고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제 사진 출처: 영화 '캐스트 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