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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Mar 30. 2020

직장에서 승진이 안될 때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들

자다가도 직장 꿈만 꾸면 불안이 도져서 벌떡벌떡 깨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내 꿈은 현실을 반영하는 편이 많은데, 하던 프로젝트를 갑자기 마지막에서 뺏기거나 승진에서 밀리거나 와 같은 내용이었다. 예전에는 감당하기 힘든 곳에서 일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는데, 요즘에는 ‘내 삶은 직장밖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면 대체로 나아지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뉴욕에서 하는 구글 트레이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팀에서 한 명만 참석할 수 있어서 저번 출장 기회를 물먹은 동료에게 기회를 양보하기로 했다. 영어로 표현조차 어려운 양보라는 생각은 모든 것을 본인 우선으로 둬서 결정을 내리는 서양권에서는 드문 컨셉이다. 그래서 매니저를 설득하기 위해서 내가 가지 않아야 하는 여러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나도 인간인지라 남 출장 보내주는 이유를 리스트업 하다 보니 회의감이 찾아왔다. 막상 생각해보면 플랫폼을 팀 내에서 가장 잘 쓰는 사람은 나이고,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더 많다. 하지만 태국 휴가를 다녀와서 바로 출장을 가기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뉴욕은 사실 그리 좋아하는 도시는 아닌지라 가기 싫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숨긴 채로 나는 매니저와 동료에게 섭섭한 마음을 몰래 만들어내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내가 가야 마땅한데 왜 아무도 나에게 가라고 등 떠밀어주지 않는 걸까.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배운 것은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상부에서 내려지는 결정이 모두 내 능력을 반영한 것이라 착각했었다. 영국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마음이 들지 않는 결정이 있을 때마다 그 이유를 내 완벽하지 않은 영어 실력이나 부족한 프레젠테이션 스킬에서 찾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영국인 친구가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휴가 간 사이 새 직장 상사가 입사했고, 일을 못하는 동료가 빠르게 상사와 친해지는 바람에 승진 기회가 그 동료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보다 정성적인 부분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개선(이직)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나 자신을 이유 없이 학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을 휙휙 바꿀 수 있다면 부처가 됐겠지. 현실은 괜히 능력도 없으면서 퇴사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연봉을 올린 동료를 곁눈질로 흘겨보며 혼자 화를 삭이기 바쁘다.


왜 내가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가 아닌 거야라고 혼자 화를 삭이다가 문득 내가 인생을 너무 좁게 보고 필요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는 반에서 내 등수가 중요했고, 친구를 제치고 내가 올라가기만을 집중했다. 하지만 반 1등에 올라가면, 전교 등수가 있고, 다음은 전국 등수, 다음은 세계 등등 세상을 경쟁으로만 본다면 이러다가 경쟁만 하다가 죽겠다 싶었다. 커리어 측면을 예시에 대입해보자면 종종 한국에서의 2년 직장 경력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는 6년 차의 경력인데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경력을 쳐주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나보다 연차가 낮은 동료들과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정이 나타나서 내 커리어가 시작한 연도인 2015년으로 돌려준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것이다. 전직을 한 탓에 그때 배운 스킬은 지금 많이 사용하지는 않긴 하지만 그때 배운 직장 윤리, 근성, 인내심,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기와 같은 일을 하는 마인드는 지금 영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시금석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연차에 따른 연봉이나 타이틀을 보면 항상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내가 얻은 스킬들을 살펴보면 꽤 만족스럽다. 매니저가 공석인 상태에서 혼자서 일을 만들어 내고 있고, 글로벌 브랜드 퍼포먼스를 구멍 없이 굴릴 정도로 큰 그림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이제는 직장에서 얻어 갈 수 있는 스킬에 집중하고, 링크드인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연차를 비교하면서 타이틀을 따지는 짓 따위는 그만둬야지. 대신 매년 내가 어떤 스킬을 얻었는지 보면서 커리어 발전 상황을 점검해보면서 행복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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