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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Sep 17. 2020

퇴근해도 일 생각이 날 때

일 스위치를 끄는 방법 네 가지


사회초년생일 때 우연하게 서울에서 고향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다. 나는 휴학을 1년 반이나 한 상태라 약간 늦게 취업을 했고, 친구는 칼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터라 일을 대하는 모습이 나보다 한참 더 여유로웠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대화가 회사에서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직도 친구가 흘려가면서 했던 말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바로 “나는 퇴근하고 회사 앞의 신호등을 건너는 순간 회사 일은 다 잊어버리고 스위치를 꺼버려”라는 말이다.

사회초년생이라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자기 전 침대 안에서까지 내일 할 일을 떠올리며 전전긍긍하던 나에게는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마음대로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릴 수 있지? 나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낮에 했던 실수들만 머릿속에 뭉게뭉게 떠올랐다. 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로 뇌가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심하면 번아웃까지 온다. 나 또한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몸과 마음에 번아웃이 왔고, 영국에 와서야 그 번아웃이 치유된 것 같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지금은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고, 현재 내 커리어 역사상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퇴근 시간이 되면 일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퇴근할 때 일에 대한 스위치를 끄는 법 네 가지에 대해서 공유하려고 한다.


1. 덕질하기

사람이든, 취미든 찐하게 빠질 주제 하나를 찾아야 한다. 일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삶의 기둥을 여러 개 세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텐데, 어설프게 무엇인가 시도했다가는 일에게 지고 만다. 배드민턴을 친다면 아마추어 대회에 한번 출전해보겠다는 자세로, 요가를 배운다면 물구나무서기를 성공해보겠다는 자세로 정말 “덕질”을 해야지 일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취미가 자주 바뀌는 편인데, 수영, 요가, 그림 그리기를 거쳐 요즘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식물에 빠졌다. 집에 일액 현상이 일어나서 닦아줘야 하는 아이가 있고, 매일 응차 응차 싹을 틔우는 내 새끼들을 생각하면 일은커녕 내가 직업이 있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만약 취미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그 취미부터 따라서 시작해보면 좋다. 지금은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취미를 내 방식대로 소화하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배우면 언젠가 나만의 취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 목표는 작게, 완벽주의 버리기

나는 보통 일과를 시작할 때 하루 끝낼 일의 목표를 세우는데, 목표를 절대 높게 잡지 않는다. 보통은 세 가지 다른 일거리를 잡고 그것을 끝내지 않더라도 조금씩 진행하기만 한다면 그 목표는 이뤘다고 간주한다. 한국에서는 일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딱 이메일 창만 열고 이메일을 보내면 조금씩 진행될 일을 더 완벽한 순간을 찾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퇴근 후에도 그 스트레스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오늘 일을 무리하게 처리한다고 월급이 더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까, 일단 시작할 때는 나의 리소스에 70%에 달하는 일만 적당히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작게 세우는 게 좋다.


3. 퇴근할 때 업무 일기 적기

나에게는 작은 습관이 있다. 퇴근길에 항상 오늘 배웠던 일이랑 아쉬웠던 일을 모바일 메모장에 짧게 남기는 업무 일기를 적는 것이다. 아니 퇴근하면 업무 생각을 안 하게 해 준다면서 업무 일기를 적으라고? 뭔가 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업무 일기를 적는 것은 분명히 일과 삶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된다. 보통 퇴근하고도 일 생각이 난다는 것은 일할 때 끝내지 못한 뭔가 찝찝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 일기를 적으면 오늘 내가 했던 일들을 돌아볼 수 있고, 배운 것들이 눈에 보인다. 이 글을 계속 읽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 자체가 일을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에 돌아보면 분명히 생각지도 않은 많은 것을 이뤘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배운 것들을 실제로 읽어보면 더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찝찝한 생각은 보통 불확실한 것에서 오기 때문에, 일기를 적으면서 내일 할 일을 확실히 형체화 해놓는다면 오늘 일은 오늘 일, 내일 일은 내일 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퇴근길에 일기를 적고 나서는, 일을 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생각만으로는 일을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4. 본인의 리소스를 아는 것도 능력이다

회사에서는 야근을 많이 하는 직원을 높게 평가할 것 같지만, 특히 외국계나 외국 회사 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매니저가 일을 덜어주기 위해 면담을 가지고 몇 가지 조치를 취하지만, 그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일처리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냐하면 매니저는 일이 왜 예정된 시간보다 오래 걸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일을 처리하는 것이 늦어진다면, 거절하는 방법을 몰라서 일을 과하게 맡는다는 안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보통 나 같은 경우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 따로 프로젝트 관리 툴을 쓰지 않고 머릿속에 외워서 진행하는 편인데, 만약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 일을 놓쳤다면 내가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는 위기 신호로 간주한다. 이때 매니저에게 일이 많다고 바로 불평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러한 일이 있어서 이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다른 팀원에게 일을 넘겨도 되냐고 물어본다. 대부분의 경우는 매니저가 흔쾌히 괜찮다고 얘기하는 편이라서, 모두가 기분 나쁘기 전에 일을 해결하는 편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팀 내에 리소스가 부족하지 않다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적용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은 항상 사람을 적게 뽑고 일을 많이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확실하게 반박할 수 없는 데이터와 자료들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전부 나열하고, 예상 시간과 나의 실제 리소스를 비교해서 왜 이것들을 모두 할 수 없는지 매니저를 설득해야 한다. 위에도 말했듯이 생각보다 매니저는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니까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이를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했을 경우,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교육을 받거나 아니면 리소스를 조정받는 등의 기대효과를 노릴 수 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말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고민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이 일을 정말 아끼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비록 지금은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그 고민들이 언젠가는 쌓여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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