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유노윤호만 있는 걸까요
그동안 블로그에 많은 질문이 달렸지만 유일하게 답변을 못하겠던 질문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의욕도 없어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현재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고, 간절히 원해서 성취했기 때문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열심히라는 단어만 보고 살아온 것 같은 유노윤호처럼 말이다.
그러다 어제 칼 뉴포트의 열정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그동안 많은 미디어와 성공한 사람들이 말했던 본인이 열정이 가는 곳에서 일을 찾으세요라는 말이 허상이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 일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유독 도드라져 보일 테고, 잡무를 주로 처리하는 커리어 초기 단계에는 불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나는 누구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뭐지' 같은 질문은 근본적으로 답하기가 불가능하여 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당장의 좋은 일을 찾기보다는 "커리어 자산"을 쌓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일이 생산하는 가치를 중시하라는 주장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열정은 허상이라는 이 책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마케팅의 꽃이라고 불리는 브랜드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대학교 공강 시간에 틈만 나면 도서관의 마케팅/광고 섹션 앞에 앉아서 2~3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여러 인턴과 대외활동을 통해 얻은 소중한 꿈의 일자리였다. 하지만 신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벤트 당첨자 선정, 트렌드 조사와 같은 단순한 일만 처음에는 담당했고,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나는 열정만 따라서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커리어를 선택했기 때문에 일을 하는 동안 불행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만약 열정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다. 지금은 비록 기초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할 것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커리어 자산"을 쌓기 위해 희소하고 가치 있는 능력으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직업을 얻으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불행한 현실은 사회 초년생에게 본인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직업을 단번에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사회 초년생을 위해 본인이 좋아하는 직장을 찾는 나만의 방법 세 가지를 아래서 소개하고자 한다.
1. 책 5권 읽기 + 업계 관계자 3명 만나보기
관련 전공도, 관련 경력사항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일단 관련 분야에 책을 딱 5권만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왕이면 3권은 현업자가 쓴 마켓 트렌드에 대한 쉬운 책들, 2권은 아주 어려운 이론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이론과 실제 업무에는 많은 거리가 있어서 당장에는 취업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일단 머릿속으로 해당 업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가벼운 흥미를 붙이기에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다.
본인이 왜 이 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시점이 되면, 링크드인이나 학교 네트워크 등을 통해 업계 관계자를 만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채용 추천을 해달라는 말은 삼가는 것이 좋고(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알아서 추천해 준다), 이쪽에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제 업무 환경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정중하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 좋다. 이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분야에 취업하려면 어떤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나요 와 같은 검색하면 나오는 질문보다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주로 이해관계자(어떤 타팀과 업무를 하는지, 주로 상대해야 하는 외부 파트너의 종류)는 누구인지, 그 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등과 같은 질문이 좋다. 내가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았을 때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고, 누구와 업무를 하게 될지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료조사가 끝나고도 이 일을 좋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인턴이나 작은 직책이라도 일단 지원을 해서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2.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배울 것을 찾기
직장인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누구나 입에 달고 살면서도 본인의 일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일을 맡겨놓으면 열심히 끝까지 처리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신입으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면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입사하면 멋지게 해외출장도 다니고 연예인과 광고 촬영을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당첨자 명단에서 경품만 노리고 다니는 체리피커를 걸러내는 게 일의 전부다. 하지만 이 일 또한 무시할게 못된다. 왜냐하면 이 일은 윗사람들이 손이 부족해서 맡긴 일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테스트라고 볼 수 있다. 단순 반복적인 일이라고 대충 일을 처리했다가는 기본적인 일도 꼼꼼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상사에서는 쉬운 일도 못하는 사람에게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을 맡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쉽고 기본적인 일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옆 팀 사람은 랜덤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돌려버려서 시간을 줄였고, 나 같은 경우는 엑셀 함수들을 사용하여 당첨자들을 빠르게 선정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때 배운 함수들을 열심히 써먹고 있다. 이렇게 일을 잘 처리하다 보면 속도가 붙고 일이 더 재밌어진다. 일에 속도가 붙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명확히 보이고, 이때 자신의 강점들을 모아서 살펴보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감이 잡힌다.
3. 커리어 일기 쓰기
글은 참 신기한 도구이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돌아다니는 생각들도 글로 적어보면 어느새 윤곽이 잡히고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일기는 나 누구에게도 100%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며 멈췄지만 나는 항상 출퇴근을 하며 든 일에 대한 감정을 핸드폰 메모장에 빠르게 적는 습관이 있었다. 블로그 글을 위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재빠르게 기록해놓는 용도로 처음에는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 커리어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나는 브랜드 마케팅을 2년 동안 하다가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전환하여 런던에서 모든 것을 처음 배웠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어떻게 키워드 옥션이 돌아가는지 몰라서 눈이 깜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직 돈만 추구하는 클릭 낚시 회사 사장이 F 단어를 써가면서 매일같이 욕을 하는 환경이 나를 매일같이 압박해왔었다.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커리어 일기"였다. 비록 회사에서 수모를 겪고 있지만,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이 글로 보이니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커리어 일기를 통해 내가 잘하는 것, 부족한 것을 보니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는 아주 쉽게 보였다. 그리고 이 일기가 면접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말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아직도 인터뷰를 보러 갈 때면 정돈된 커리어 일기인 내 블로그 글들을 쭉 훑어본다. 그러면 어떠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마냥 짝사랑이 되지 않으려면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마땅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노력으로 돌리기 어렵지만, 한번 거절당한 일자리는 능력만 키운다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위의 방법을 통해 본인의 능력과 적성을 찾고 꼭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하루에 24시간 중 일하는 시간인 8시간, 즉 33%는 행복이 보장된 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