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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Feb 10. 2022

하는 일은 너무 많은데 연봉이 낮다

야근을 몇 시간 했던 회사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쩌다 다른 팀의 주니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내가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온갖 회사의 가십과 욕을 늘어놓길 시작했다. 내가 주니어 때는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휩쓸려서 마치 노사위원장이   마냥 앞서서 같이 회사를 싫어하고 그랬는데, 매니저가 되고 나니 이야기를 걸러들을  있게 되었다. 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니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가치들만 지킬  있으면 이런 가십들은  귀로 듣고  귀로 흘리는 편이다.


 그런데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주니어가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연봉이 낮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부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해버리고 난 다음에 자기가 그 사람들의 일을 대신 맡아서 했는데 이 이후로 보상에 대한 말이 없다는 것이다. 종종 야근까지 불사하며 일에 구멍을 메우려 애썼는데 보상이 없어 서운하다며 곧 퇴사까지 불사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을 듣고 겉으로는 너무 안타깝다며 위로를 해줬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주니어가 처한 상황을 나도 똑같이 5년 전에 겪었기 때문이다.


 5년 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을 때 나는 화병에 걸렸었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매일같이 야근을 했지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돌아오는 보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업무 강도가 너무 센 탓에 사람들이 자주 입사하고 퇴사했다. 그탓에 퇴사한 사람들의 일은 전부 다 남은 사람들에게 떠넘겨졌다. 팀장이나 본부장에게 자주 일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뒷담뿐이었다. 새로 온 팀장은 박스 안에 썩은 사과가 있으면 다른 사과까지 썩게 만든다며 빨리 버려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나를 공개 저격을 하기도 했으며, 본부장은 회사에 오래 있은 탓에 히스토리를 아는 것 밖에 장점이 없으면서 태도가 안 좋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너무나 서운했고 내가 보란 듯이 그만둬서 내 빈자리를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관리자로 일하니까 왜 그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내가 그때 했던 일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나에게 불평불만을 했던 친구의 타이틀은 마케팅 어시스턴트였는데, 실제로 하는 일은 머천다이징 어시스턴트에 가까웠다. 그 친구가 하는 일을 듣고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없다고 딱히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히스토리를 잘 모르는 관리자 입장에서 이 말을 해석하자면, 직무가 회사의 필요에 따라 바뀌었는데 불만 없이 하는 것 보면 직무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거나, 지금 하는 일이 아주 쉽기 때문에 불만이 없는 것이라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이 머천다이징에 배경이 없는데 이 일을 쉽게 빠르게 해낼 수 있었다면 만약 전문성 있고 이와 관련 배경이 있는 사람이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태도가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가르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석하게도 세상에 일자리를 간절하게 원하는 신입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적으면서도 꼰대 같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정말 최악의 상사가 하는 생각을 가정해서 적은 것이다. 많은 상사들이 팀에 인원이 부족할 때 군말 없이 일을 맡아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상사들처럼 주니어가 한 말을 그들이 편한 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에서 인력의 중요도는 책임과 권한, 그리고 전문성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주니어는 직책 때문에 비교적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전문성도 아직 경력이 부족해서 많이 갖추기 어려웠을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 야근을 많이 했고 남들의 하던 일을 맡아서 했던 사실은 유리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회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한 시간보다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에게는 딱히 조언을 건네진 않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이 일을 말하기보다는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근을 그렇게 많이 했다니 정말 힘들었겠다, 이번 연봉 협상 때 꼭 원하는 금액을 얻기를 바란다고만 말해줬다. 하지만 나와 친한 동생이 같은 일로 고민 상담을 해오면 아래와 같이 조언을 해줄 것 같다.


내가 다녀본 회사들 중에 인원 부족을 겪지 못한 팀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떤 회사든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퇴사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물론 1인분을 하고 있다가 2-3인분을 하려면 힘들겠지만 이 상황을 기회로 이용해라. 주니어 같은 경우는 다양한 업무를 맡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을 텐데, 이 경험을 통해 두 가지 다른 업무를 해보면서 자신의 적성에 무엇이 맞는지 찾아봐라. 나도 제휴 마케팅이라는 일을 맡기 전에는 죽도록 싫었지만, 해보니까 의외로 잘 맞았던 경험이 있었다. 모든 일은 해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편견에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해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주의할 사항이 있다. 꼭 일을 맡기 전에 관리자와 딜을 해야 한다. 만약 본인이 미래에 전문성을 쌓고 싶은 분야가 확실치 않다면 '지금 팀에 사람이 부족한 것 다 안다. 본인이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래서 이 일을 맡겠다. 다만, 3개월만 두 일을 해보고 나에게 두 일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머지 일은 후임자를 찾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해라. 그러면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은 열린 자세를 가진 주니어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를 이미 하고 있는데 다른 일을 추가로 맡긴다면 팀을 위해서 지금은 맡긴 하는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후임자를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라. 경험상 내가 얼마나 힘든지 감정적으로 어필하는 것보다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협상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일을 추가로 맡긴다고 할 때 이틀만 생각해본다고 말하면 뭔가 더 있어 보이고 실제로 장단을 비교해 볼 시간이 생기니 꼭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연봉협상과 승진에 대해서 또 조언을 해주자면, 만약 가능하다면 본인이 현재 쓰고 있는 리소스와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 추가로 필요한 리소스를 계산해서 본인이 얼마나 더 추가로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계산해라. 그리고 다음 연봉 협상 시기에 승진과 연봉 상승을 꼭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해라. 사람이 절박할 때 연봉 협상을 약속받는 것은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원이 없을 때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말하다가 새로운 사람들이 충원됐을 때 입을 싹 닦는 팀장들을 많이 봤다. 이 약속은 팀장급에서만 끝낼게 아니라 본부장이나 실제로 예산을 배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까지 받아 놓는 것이 좋다. 증거는 무조건 이메일로 남겨야 한다.


물론 누가 퇴사할 때마다 적임자를 제때 뽑을 수 있는 회사를 가는게 가장 최선이다. 하지만 나도 최고의 일꾼이 아니듯이 회사의 상황도 최적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런 요령들을 알아 놓는 게 중요하다. 아, 그런데 우리의 (얄미운) 백인 남자 같으면 이 일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백인 남자 같으면 자신의 업무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아주 반겼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원래 업무는 동료들에게 대충 던져두고 보스가 관심을 가질 새로운 일에만 엄청난 정성을 쏟을 것이다. 그리고 2-3개월 뒤, 본인이 이 두 일을 완벽하게 잘 해냈다고 팀장으로 승진시켜주길 요구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의 자신감의 반이라고 가지려고 노력하자. 그럼 우리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Ibrahim Rifat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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