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가
사회 초년생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데, “제너럴리스트”처럼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선배들처럼 한 분야에서 진득이 내공을 쌓으면서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스타트업의 부족한 인력 문제 때문에 여러 부서를 떠돌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너럴리스트처럼 일을 했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일이 떨어져도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분야 중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인 디지털 마케팅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사회초년생 때 ‘주니어 주제에 시키는 일이나 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무슨 스페셜리스트야’라는 말 대신에 ‘마케팅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으니 1~2년 동안 여러 분야를 경험해보면서 너에게 정말 맞는 분야를 찾아보면 어떨까’라고 말해줬으면 조금 덜 분노하고 더 재밌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혹시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나 마케터들을 위해 마케팅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내가 아는 선에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마케팅 팀
마케팅 팀은 회사의 목표(인지도 상승, 유저 획득, 세일즈)를 달성하기 위해 마케팅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부서이다. 보통 프로모션은 온라인, 오프라인 여러 채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채널 및 팀과 협의하는 프로젝트 매니징이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종 소셜미디어 채널을 관리하는 것도 마케팅 팀의 일이다. 회사에서 에이전시를 쓰는데 회의적이라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에이전시를 쓴다면 보통 언제 콘텐츠가 올라갈지 마케팅 캘린더를 만들거나 에이전시가 만들어 낸 콘텐츠가 브랜드 톤에 맞는지 최종 컨펌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에 따라 마케팅의 꽃이라고 부르는 매스 캠페인을 간혹 마케팅팀에서 진행하기도 하는데, 회사에 브랜드 마케팅 팀이 있는 경우 브랜드 마케팅팀이 집행하니 매스 캠페인은 브랜드 마케팅을 설명할 때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마케터는 보통 어느 분야에서든 팔방미인이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식들으로 소비자에게 소구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유행하는 것들을 바로 카피, 프로모션에 녹일 수 있는 센스를 갖출 수 있으면 좋다. 보통 커뮤를 하면 유리하지만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것들 중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을 걸러낼 수 있는 분별력도 중요하다. 또한 프로젝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획력도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목표를 어떻게 달성시킬 것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다양한 채널의 특성을 파악해서 서로의 채널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채널 집행 기획을 잘 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다양한 팀과 일하며 그들을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마케팅은 대학교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로 무한 팀플의 굴레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빨 빠진 조장이어서 맨날 중간에서 얘들아 왜 그래 하면서 항상 뒤에서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2. 퍼포먼스 마케팅 팀
퍼포먼스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채널들에 광고를 집행하고, 회사의 목표를 달성한다. 돈을 많이 쓰기도 하고 많이 벌어오기도 해서 항상 요주의 팀으로 관리받는다.
퍼포먼스 마케팅에는 PPC, SEO, 디스플레이, 소셜, Affliates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특히 PPC(검색광고) 분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해외 채용 시장에서 정말 유리하다. 다만 네이버 검색광고 플랫폼은 조금 후져서 짜증 나기만 하지 고급 스킬에 낄 수 있는 편은 아니라서 한국에서는 PPC보다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광고를 집행하는 소셜 분야의 스킬이 우대받는다.
나는 운 좋게도 에이전시 사이드와 인하우스 사이드를 둘 다 경험해보았다. 에이전시 사이드는 채널 집행을 중심을 둬서 기술 쪽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관리해보면서 어떤 분야의 비즈니스가 나와 잘 맞는지 배워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규모가 큰 인하우스에 가면 채널 집행보다는 미디어 플래닝에 집중한다.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알 수록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예산을 덩어리째 줬을 때 가장 효율적인 채널에 어떻게 배분해서 어떻게 매출을 창출할 것인지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회사 내의 모든 데이터에 접근 권한이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데이터와 퍼포먼스 채널 데이터가 어떻게 서로 상호 영향을 끼치는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고 싶다면 숫자 감각이나 분석력을 갖추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내가 마케팅팀에 있을 때 퍼포먼스 마케팅이 너무 하고 싶은데, 고등학교 때 수학 고자였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너무나 거리가 먼 거다. 그래서 숫자 감각을 기르기 위해 네이버 IQ 올리기 게임 같은 것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IQ는 세자리 초반을 겨우 넘긴 것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숫자 감각이나 분석력은 꼭 타고나지 않아도 많은 데이터를 보면서 기를 수 있는 것 같다. CPC, CPA, CTR, CVR 같은 것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손으로 한번 계산을 해보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퍼포먼스 마케팅의 기본은 PPC이므로 면접을 보기 전에 Google Ads 자격증들은 미리 공부해놓고 따서 가는 게 좋다.
3. CRM 팀
마케팅이 새 고객들을 유치하는데 좀 더 집중한다면, CRM 팀은 이미 우리 서비스에 들어온 고객들을 잘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고객들이 더 많이 오래 머물면서 우리 서비스의 매출을 올려주게 하는 것이 이 팀의 목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카페에서 쿠폰 나눠주는 것이 가장 원시적인 CRM 로열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카페에 갈까 하다가도 열 번째 공짜 커피를 향하여 가던 카페로 발걸음을 올리게 만들어 주니까 말이다.
CRM팀은 마케팅 분야 중에서도 가장 분석적이고 데이터랑 연관이 많은 팀이다. 그래서 보통 회사에 CRM팀이 세팅되면, 회사가 데이터를 맞게 잘 쌓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게 우선순위다. 불필요한 데이터를 쌓으면 서버 과부하가 될 수도 있고, 데이터가 적게 쌓이거나 잘못 쌓이면 분석이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 트래킹이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면, 이 고객들의 생애주기, 매출, 데모 그래픽 등에 따라 레벨을 매기고 이들을 잡아두기 위한 로열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리고 이메일이나, 푸시 메시지 같은 내부 고객들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고 성과를 측정한다.
CRM 프로그램은 회사마다 달라서 딱히 어느 프로그램을 공부하라고 추천은 못하겠지만, 우선 고객들이 웹사이트 안에 어느 경로로 들어와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볼 수 있는 Google Analytics를 미리 공부해두면 좋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멋진 CRM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서버에 직접 들어가서 원하는 데이터만 골라낼 수 있도록 mySQL이나 R, Phython을 공부해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3. 브랜드 마케팅 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향하는 이미지를 정의하고, 소비자의 인식과의 갭을 줄이는 부서이다. 보통 작은 회사들은 단기 매출 신장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브랜드 마케팅팀을 둘 여력이 없어서, 규모가 큰 회사에만 팀이 있어 TO가 적고 신입이 들어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브랜드 마케팅 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정의 내리는 것이다. 우리의 타깃은 무엇이고, 어떤 채널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지를 정해서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브랜드 마케팅 팀의 범위는 은근 다양해서 심지어 소셜 미디어의 화자는 어떤 캐릭터로 할 것인지, 그 캐릭터의 말투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하기도 한다. 이런 브랜드 이미지가 정해졌으면 이 이미지와 유저들이 생각하는 인식의 갭을 줄이기 위해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중에 가장 꽃은 매스 캠페인이다. 매스 캠페인은 다양한 채널에 큰 예산을 집행한다고 해서 Mass라고 부르는데, 보통 TV광고가 미디어 믹스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채널, 옥외광고 등 여러 채널들에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미디어 믹스 기획이 상당히 중요하다. 매스 캠페인을 진행해본 마케터와 진행해보지 않은 마케터의 차이는 천지차이라 매스 캠페인을 진행할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해보길 바란다. 가장 꿀잼인 부분은 광고 촬영 때 연예인과 함께 셀카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머리가 너무 크게 나와서 아무 곳에도 올리지 못하고 쓸쓸히 하드에만 저장해놓고 있지만 말이다.
브랜드 마케팅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신입을 잘 뽑지 않아서 미리 준비하기는 힘들다. 매스 광고를 집행하는 대형 광고사에서 경력을 쌓고 클라이언트 사이드로 이직하는 것이 돌아가는 것 같아도 지름길 일 수도 있다. 만약 신입 포지션으로 면접을 보게 됐다면 평소 그 브랜드의 이미지와 소비자들의 갭은 어떠했고, 이 갭을 줄이기 위해 본인이 생각했을 때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면접 때 풀어내면 좋을 것 같다.
4. 제휴 마케팅 팀
같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타 브랜드 및 회사를 찾아서 MAU를 맺거나 제휴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부서이다. 외근을 자주 나가는 부서라 자리가 자주 비어있다. 처음에 이 부서로 발령이 났을 때 내 커리어는 산으로 가는 것인가 하고 집에서 찌질하게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나는데 일해보니 솔직히 정말 재밌었던 부서였다. 일단 외근을 많이 나가서 바깥공기를 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미팅 사이에 갖는 꿀 커피타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일하는지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정말 좋았다.
보통 제휴 마케팅팀은 제안서를 만들고 타 회사에 제안을 하는 콜드 콜을 많이 돌리는데, 우리 회사는 다행히 젊고 힙한 이미지라 콜드 콜은 별로 할 기회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대기업에서 먼저 제안이 와서 서로 줄 수 있는 혜택들을 협의하곤 했다. 보통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노출이라거나, 무료 쿠폰을 교환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상대방의 브랜드 파워가 우리 회사보다 너무 낮을 경우 우리 서비스 쿠폰이나 크레딧을 돈 주고 팔기도 했다. 마케팅은 돈을 쓰기만 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제휴 마케팅 팀은 실제로 돈을 벌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요구되는 능력은 어떤 이익, 홍보영역을 상대방에서 제공할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도록 자사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과,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는 협상 능력이 필요하다.
CRM 부서만을 제외한 여러 마케팅의 분야를 직접 경험한 이후에, 나는 처음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나와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다고 생각한 퍼포먼스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럼 내가 한국도 아닌 런던에서 왜 퍼포먼스 마케팅을 시작하게 됐는지 대해서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