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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Mar 22. 2019

브랜드 마케팅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연예인과 인증샷 찍던 삶에서 엑셀의 노예로

모델이 손을 다쳐서 촬영장에서 임시 손 모델이 된 나

나는 대학교 생활 내내 브랜드 마케팅을 짝사랑했다. 1학년 말 즈음 박신영 씨의 삽질정신이라는 책을 보고 광고, 마케팅 분야에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서관에 살면서 마케팅, 홍보, 광고의 차이점을 서서히 알아갈 때쯤 나는 브랜딩과 사랑에 빠졌다.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고 러브마크로 키우는 것. 얼마나 멋져보이는가. 쿨병에 걸린 20대 초반의 나는 거의 첫 눈에 반하는 것처럼 빠르게 브랜딩에 치어버렸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가 블로그 알바처럼 학생들을 쓰는 대외활동 말고는 딱히 브랜딩의 실무를 접할 기회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도서관을 맴돌고 있다가, 유니타스 브랜드라는 잡지를 발견했다. 유니타스 브랜드는 브랜딩에 대한 잡지였는데, 재밌는 예시와 함께 이론을 탄탄히 잡아갈 수 있는 좋은 공부 도구였다. 그러다 유니타스 브랜드의 편집장인 권민의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우다"와 “런던 나의 마케팅 성지순례기”라는 책들을 읽게 되었다. 이 두 책의 핵심은 브랜드를 배우기에는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패션 업계가 가장 좋고, 패션 업계를 배우기 위해서는 유럽 패션의 중심지인 런던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 책을 덮고 나서 정확히 3개월 후에 나는 브랜드를 배우기 위해 런던에 도착한다.


런던은 브랜딩에 대한 꿈을 키우기에 환상의 도시였다. 각종 패션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방문해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브랜드 백과사전을 만들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가장 벅찬 순간은 매년 세계 100위 브랜드 순위를 발표하는 인터브랜드라는 내 꿈의 회사의 런던 지사에 가봤다는 것이었다. 영어 이메일로 오피스 투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너무나 가볍게 무시당해서 문 밖에서 사무실의 로고만 보고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손에 쥐는 결과 없이 한국에 돌아왔음에도 24살의 나는 패기 넘치는 상태였다. 왠지 나의 열정을 제대로 설명하기만 하면 인터브랜드 인턴직을 손에 따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열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한 영어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인터브랜드에 제출하고 며칠 후, 서류 전형에 합격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다!


나의 꿈의 기업인 인터브랜드에서 면접을 보다니! 면접 전에 내어주는 물이 담긴 종이잔에 박힌 인터브랜드 로고도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HR 상무님과 면접을 보는데, 그때의 나는 면접 울렁증이 최고조인 상태였다. 하지만 비록 내가 염소같이 목소리를 떨지라도 내 열정은 커버레터에 충분히 담겨있으므로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면접 질문은 자기소개 및 좋아하는 브랜드 세 가지를 대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 등이 있었다. 긴장의 최고치를 찍던 나는 계속 버벅거리며 대답을 했고, 마지막 면접이 끝나고 받은 피드백은 '다혜 씨는 서류상에 브랜딩에 대한 경험이 하나도 없는걸 보면 브랜딩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였다. 그래서 나는 브랜딩을 공부하러 런던에까지 다녀왔고, 인터브랜드 지사 앞에도 방문했었다. 커버레터에 적혀있는데 혹시 못 보셨냐고 물어보니, '미안한데 저는 커버레터 안 읽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일주일 뒤에 온 탈락 이메일은 나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렸다. 그리고 탈락 이메일에 심지어 내 이름조차 잘못 적혀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자취방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몇 년 동안 혼자 꿈꿔왔던 짝사랑 상대에게 지독하게 차인 느낌이었다.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이제 접어야 할까? 뿌리부터 한국 사람이었던 나에게 포기는 없었다. 이후에 서류에 "브랜딩"이라는 세 글자를 넣기 위해 브랜드림이라는 브랜딩 프로보노 모임에 가입해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고, 다음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팀 어시스턴트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네이밍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컨셉 개발 회의에도 참여하면서 브랜딩에 대한 감을 잡아갔다.


실무에서 직접 느낀 브랜딩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꽤 달랐다. 브랜딩 프로젝트는 회사의 상황에 따라 쉽게 존폐가 좌지우지됐다. 만약 회사가 돈이 없으면 가장 먼저 중단되는 게 브랜딩 프로젝트였고, 컨셉 개발조차도 에이전시한테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브랜딩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식어갈 때 즈음 스타트업 마케팅팀에 취직하게 되었다.


마케팅팀에서 일할 때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잊을 정도로 숨 가쁘게 달리기만 바빴다. 그리고 회사에서 오래된 멤버라는 타이틀이 붙을 즈음 새로운 CEO가 조직개편을 하였다. 팀이 크게 바뀌는 사람들은 한 달 전부터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 바빴지만 나는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마케팅팀에 남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타운홀 발표 당일날, 내 이름표를 보고 내가 브랜드 마케팅 팀에 발령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잊고 있던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꿈이 기억났지만, 감격 따위는 밀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 돌아 돌아 원하는 길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브랜드 마케팅은 솔직히 말해서 정말 재밌었다. 브랜딩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이 있는 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우선 가장 큰 원인이었고, 적성에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가 마케터로서 2년 경력을 꽉 채울 때였는데, 회사 내에서 누구에게 내 강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카피를 잘 쓴다" 혹은 "컨셉을 잘 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비스의 타겟인 20대가 바로 나 자신이었고, 나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컨셉에 녹여내면 바로 반응이 오는 것이 재밌었다. 그리고 TV 광고 촬영장에서 연예인과 인증샷을 찍는 것은, 문화의 불모지인 지방에서 자라 연예인에 대한 환상으로 10대 시절을 연명하던 나에게는 말 그대로 성공을 정의하는 행위였다.


만우절 컨텐츠, 이벤트 티저 등 기획한 몇 가지 컨텐츠들이 꽤 큰 성공을 거두었고, 프로모션 기획서도 반나절만에 뚝딱 뽑아내면서 꽤 "잘" 일하고 있던 시절, 나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튼다. 컨텐츠가 좋아서 성공한 프로모션은 나의 "기술"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컨셉을 짜는 것이 "기술"이라면 20대가 지나가고 나서 트렌드에 뒤쳐지는 나이가 오면 기술을 잃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렇듯이 항상 내가 재밌는 컨셉이라고 기획해서 가져간 것들을 40대 본부장들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매일같이 생각했다.


그러다 일 잘하는 옆 팀 CRM팀과 퍼포먼스 마케팅 팀을 보면서 때로는 창의적인 컨셉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꼼꼼하게 짜인 채널 플랜을 통해 성공적인 프로모션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컨셉이 좋아도 사람들이 몰라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하지만 컨셉은 중박이라도 1차 커뮤니케이션, 2차 커뮤니케이션, 3차 리마인드 등 여러 가지 채널에 360도로 소비자를 둘러싸면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저런 데이터를 잘 다루는 기술을 가진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즈음, 영국 워홀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영국 워홀에서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무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으므로, 2년 동안 한국에서 마케터로 일하면서 얻게 된 강점들을 한번 나열해보았다. 그렇게 적어보니 '트렌드를 잘 안다', '카피를 잘 쓴다'라는 강점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강점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언어적인 면보다는 기술적인 면을 더 강조하고, 혼자서 독학을 해서 기술을 어느 정도 쌓을 수 있는 퍼포먼스 마케팅 분야를 도전해보기로 깨달았다.


그렇게 런던을 도착하고 퍼포먼스 마케팅 커리어를 새로 시작한 지 곧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매일 기술과 지식을 쌓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뜨거운 결혼 생활은 아니지만, 더 이상 짝사랑은 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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