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떼인 돈 못 받는 중
매 달 카드값과 월세에 치어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라, 돈 빌려 달라는 말은 항상 거절하는 편이었다. 딱히 여유 자금도 없는 채로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돈 빌려줬다가 이자나 감사 표시는커녕 자취방 월세 밀리기 직전까지 이제 정말 줘야 한다고 사정사정해서 받아냈던 기억이 있던 후로는 더더욱... 하지만 최근에 한 번 더 크게 데고,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평생 단 한 푼도 돈을 빌려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름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일도 잘 안 되고 힘들다길래 소액 몇 번 빌려줬더니 내가 달라고 하지 않아도 때 되면 그때그때 잘 갚아왔어서 나름의 신뢰도 있었다. 최근에는 투자가 잘 되어서 돈 잘 벌고 있다고, 돈 벌기 너무 쉽다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돈을 빌려 주면 불려서 주겠다며, 만약 이 돈을 다 잃어도, 지금까지 번 것들이랑 앞으로 강연비 등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어서 2주 뒤에 전액 상환이 가능하다며 제안을 해 왔다. 거기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홀린 듯이 덥석 큰돈을 빌려 주고 말았다.
약속한 2주가 되기 전, 투자처의 시세가 뚝뚝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 보여서, 내 돈 안전한 거 맞냐고 물었을 때도 다 날렸다며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그래도 고정 수입이 있으니 그걸로 줄 수 있다고 여유를 부리길래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약속한 날이 되자 자기가 나한테 대출한 셈 치고 매 달 이자를 줄 테니 잠시 더 들고 있어도 되냐고 하길래 몇 달 정도는 그렇게 해줄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할 일이 생겨서 이제는 전액을 받고 싶으니 준비를 해 달라고, 어차피 고정 수입도 있다고 했고, 돈 불려서 주지 않아도 되니 원금만 달라고 말했으나, 결국 그때도 주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매일 새벽 3~4시간만 자고 투잡을 하면서 이사와 이직 준비도 해야 했던 시기라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기였다. 아침에 면접 보고 오후에 회사 가고 저녁에 또 다른 회사 가고 퇴근하면 밤 12시인데 집에서 또 일하고, 삶에 범퍼가 하나도 없이 살고 있는 와중에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장례식에 갔다 오면 시간이 얼마 남고, 잠을 얼마나 더 줄여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며 잔뜩 스트레스를 받았을 정도였다. 한 숨도 자지 않은 채 일하다가 의자에서 잠깐 졸았을 때 끔찍한 악몽을 꾼 날은 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 왔다. 그만큼 심적으로 몰려 있을 때였는데, 들어오기로 한 돈이 안 들어오니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다. 안 그래도 지금 너무 힘들어서 여기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 제발 돌려달라고 했던 때가, 이미 돈을 돌려받기로 약속한 날에서 몇 달이 지난 뒤였다. 물론 그때도 돌려주지 않았다.
원금은커녕 자기가 매 달 주겠다고 한 이자조차 안 주기 시작하자, 몇 달 뒤 상환이 가능한 날짜를 서로 합의해서 못 박았다. 분명 그때는 가능하다고 해서 이자까지 미뤄줬는데, 당일이 되어도 다음 날이 되어도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계속 연락 안 받으면 고소하겠다고 카톡을 보내 놓고 기다리다가 여전히 연락이 안 되길래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자기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연락을 못 받았으며 그 기간 동안 넣어 둔 선물이 강제로 청산당해서 돈이 하나도 없다고 차라리 자기가 죽을까 하며 카톡을 보내 오더라. 자살은 됐고 내 돈 갚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알바나 뛰라고, 투자 그따위 것 소질도 없는데 집어치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어영부영 연락이 두절되더라.
하지만 이 친구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우리가 같은 단톡방에 속해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워낙 많고, 본명을 쓰고 있지 않아 모르는 것 같지만. 내가 있는 것을 모르고 드립이나 치고 게임하고 있는 얘기나 하면서 놀고 있더라. 아버지 장례식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그 시점에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갚을 의지가 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삼기 위해 아무 말 없이 기록 중이다. 정말로 이 친구는 내가 돈을 빌려 준 뒤 스트레스받아하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고, 갚으려는 노력도 안 하고 있으며, 뭉갤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뭉개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이 인간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빌려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돈을 못 받고 있다. 이제 지금의 나에게는 1달 월급 정도의 액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자금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내가 좀 더 기다려 줄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화가 날 일도, 사이가 틀어질 일도 없었을까 싶지만, 저렇게 뻔뻔한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앞으로 정말 부자가 되더라도, 아주 적은 소액 조차 빌려주지 말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법적 절차를 밟는 중이라 언젠가 원금 정도는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그동안의 스트레스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하루하루를 꽉 채워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의 뇌 한 구석에 이런 하찮고 짜증 나는 일이 할당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