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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Jul 21. 2024

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아 센 지음

교양 수준의 경제학(여섯 번째)


   <자유로서의 발전>은 경제 성장이란 GNP 혹은 GDP를 키우는 것이고 이것이 경제 발전이라는 관점에 태클을 거는 책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분배’나 ‘복지’를 말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분위기다. 다행스럽게도 파이의 크기를 키워도 낙수 효과가 그리 효과가 없음(2017년 겨울 삼성도 뗄 수 없는 국정 농단 사건으로 방증된)을 알게 되면서 분배와 복지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바뀌는 듯하다.    

  


   저자 아마티아 센은 인도 국적의 경제학자다. 노벨경제학상 받은 저자는 ‘발전’을 ‘사람들이 향유하는 실질적 자유를 확장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후생경제학자인 센은 ‘발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효용, 소득 또는 상품 등을 넘어서 건강이나 수명, 교육 수준, 정치적 자유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사회정책이 강력한 나라들이나 사회정책이 확대된 시기의 성과를 뚜렷이 부각함으로써 공공정책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풀어보면 ‘가난한 나라도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높아지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공공정책에 의해 삶의 질을 급격하게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정의와 함께 센의 주요 관심사인 민주주의는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기회와 더불어 경제 발전의 기본적 요인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정책 논의와 관련하여 감수자 유종일 교수의 해제를 옮기는 것이 이 책을 쉽게 이해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복지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각에서 복지보다 정의가 우선이며, 복지 이전에 시장과 사회의 불공정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에 대해, 이와 같은 정의 우선론이 가진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실 정책 구상의 차원에서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다. 무엇보다 완전한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사회는 끊임없이 정의를 추구해 왔지만 아직도 현실은 불의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언제나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의를 개선하고 점진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을 따름이다. 완벽하게 공정한 시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 조만간 실현 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반면에 복지는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실현할 수 있다. 법 만들고, 세금 걷고, 정책 집행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실현부터 먼저 하고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그보다는 복지확대를 하면서 끊임없이 정의를 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센은 시장경제나 민주주의도 자유주의적인 신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에게 개인의 자유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가치다. 여기에서 자유는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하며,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자유란 사회현실의 토대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책에서 서론은 자유로서의 발전에 대해 센의 견해를 밝힌다. 서론에서 발전을 위해서는 부자유의 주요한 원인으로 가난, 독재, 빈약한 경제적 기회와 체계적인 사회적 박탈, 공공시설의 방치, 억압적인 정부의 불관용 혹은 과도한 활동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센이 연구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용이성, 사회적 기회, 투명성 보장, 안전보장이라는 조건이 서로 보완될 때 한 개인의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센이 바라보는 자유는 “소득이나 부의 극대화를 우리의 기본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단지 유용한 것일 뿐이며 다른 것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경제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다룰 수 없다. 발전이란 우리가 영위하는 삶과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과 관련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의 확장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장애를 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한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상호 작용하며 영향을 끼침으로써 우리가 더 완전한 사회적 인간이 되도록 한다.”는 거다.      


    파이를 키우는 것을 경제 성장으로 보든지, 분배에 가치를 높은 가치를 주는지는 사회가 선택할 문제다. 미국과 유럽은 선진국이며 우리 눈에는 경제에 관해 같은 입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센은 이와 같은 시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알려준다. ‘미국은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을 제한하는데 이는 유럽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가혹한 수준이다.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보건부터 교육제도에 이르는 공공시설에 대한 사회적 투입 또한 미국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에서 감당하는 두 자릿수의 실업은 미국에서 정치적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실업률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볼 능력을 무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경제 발전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진보와 보수가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고 서로의 주장을 듣지 않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2017년 상황이다. 양적인 성장보다 늦더라도 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고, 파이의 크기를 키워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분배와 복지에 비중을 둘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잡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 ‘부란 명백히 우리가 추구하는 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유용한 것일 뿐이며,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

- 국가와 사회는 개인에게 인간 역량이라는 기성품을 배달하는 것이 나니라 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교육과 보건이 경제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사회적 제도배열에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탠다.

- 헉슬리 : “통상적으로 새로운 진리는 이단으로 시작해 미신으로 끝나게 마련이다”(이단이라고 거부하다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맹목적인 믿음으로 신봉하게 된다)

- 만일 선거도 없고 야당도 없고 검열도 받지 않는 공개적 비판도 없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기근을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책임을 지도층과 정치 지도자에게 돌린다. 따라서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

- 민주주의의 보호적 역할은 그것이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아쉽게 마련이다.

- 악바르 포고령 : “아무도 종교로 인해 간섭받아서는 안 되며, 그가 원하는 대로 종교를 바꿀 수 있다. 만약 힌두인이 어렸을 때나 다른 때에 그의 의지에 반하게 무슬림이 되었다면, 그가 원할 경우 자신의 선조가 믿었던 종교로 돌아가도 된다.” (동시대에 유럽에서는 종교재판이 성행했다)

- 아리스토텔레스 : 신조차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 애로우의 정리

- 벵골 속담 : 정의는 마치 대포와도 같아 모기를 잡기 위해 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로서의 발전>은 2013년 10월 초판이 나왔으나 독자는 2017년 3월 1판 4쇄, 본문 506쪽 분량을 읽은 거다. 어떤 쪽은 재미있고 어떤 쪽은 지루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개념도 있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읽기를 마친다.          



P.S. 웹 검색하다보니 어제 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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