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철 지음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2025. 3. 9. 일요일
이스탄불에 가거든 먼저 볼 곳을 찾았다. 톱카프 궁전, 성 소피아 교회, 술탄 마흐메드 사원(블루 모스크)은 서로 가까이에 있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셀리미예 모스크는 서북쪽으로 떨어져 있지만, 오스만 건축 거장인 미마르 시간이 건축한 대표 사원이니 가 볼 일이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튀르키예식 커피를 마셔봐야 이스탄불에 제대로 가봤다고 할 것이다.
『중간세계사』는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끈 타임 안사리의 표현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더스강에서 이스탄불까지를 다룬다. 서양 중심의 세계사와 중국 중심의 동양사에서 소홀하게 다뤘던 지역에 관한 관심이 커가는 증거다. 비잔티움(330~1453)과 오스만제국(1299~1922)을 개관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비잔티움은 중세 기독교 세계와 동방정교회의 중심이었다. 로마 제국의 통치 전통, 그리스 문화와 로마 관습, 기독교 신앙이 결합하여 있다. 비잔티움은 타문화에도 개방적인 다문화 제국이었다. 비잔티움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무역을 통해 부를 키웠다. 교회의 벽과 돔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콘(icon, 성상화)과 모자이크가 대표적이다. 대형 돔으로 상징되는 비잔틴 건축은 교회 건축물이 대표적이며 르네상스 건축의 원조가 되었고 공법은 오스만제국에도 계승되었다.
아나톨리아반도 서부에서 작은 토후국으로 출발한 오스만제국의 성장을 살피는 저자는 “시작은 미미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욥기의 글귀에 맞는 말이라고 본다.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국가의 정치적 기반은 이슬람이었다. 오스만제국에서 종교적인 언어는 아랍어였지만, 시, 역사, 지리, 철학, 과학 등 인문 분야에서는 페르시아어를 사용했다. 오스만제국은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 차별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다문화 사회였다. 이슬람 율법은 비무슬림에 대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명시했고, 쿠란에는 “협정은 준수되어야 한다”라는 국제법 원칙을 의미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오스만제국은 제국의 영토에 사는 비무슬림을 딤미(Dhimmi)라 하고 생명, 재산, 종교의 자유를 약속해 주었다. 그 약속과 원칙은 비무슬림 종교사회 공동체인 밀레트(millet) 제도로 구현되었다. 밀레트 제도는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위한 혁신적인 제도였다. 오스만제국은 600년이나 계속된 군사 제국으로 광대한 영토를 운영하기 위한 행정 제도와 군사 제도를 핵심적으로 유지했고 문학, 예술, 건축 분야에서도 오스만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중간세계사』 비잔티움,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사이, 오스만제국 등 3부로 구성하고, 역사와 문화는 서로 충돌하면서 발전의 원동력이 생기고 모방과 발견으로 전해지고 창조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황태연의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을 이론의 바탕에 깔고 이해한다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가 언급한 타임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쉴레이만 세이디가 지은 『터키 민족 2천년 사』를 먼저 읽는다면 중간 세계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제1부 비잔티움(내용은 분량제한으로 생략)
제2부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사이(내용은 분량제한으로 생략)
제3부 오스만 제국(내용은 분량제한으로 생략)
오류 1 : 732년에 투르 전투에서 카를 마르텔이 지휘하는 프랑크 왕국 군대에 격퇴당하여 알프스산맥을 넘지 못했다(p.131)는 것에서 알프스는 피레네의 오류다.
오류 2 : p.154의 지도 <서양이 바라고 뻗어간 대항해시대>에 사용한 지도의 색깔은 명백한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