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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의 비밀

The Secrets of Hegemony

by 노충덕

패권의 비밀 The Secrets of Hegemony

2025. 11. 8 토


역사에서 어떤 나라가 강한 나라였는가? 어떻게 강한 나라가 되었는가? 그 나라는 왜 망했는가? 이런 의문은 중등 교육과정에서 핵심 내용으로 다루고 암기한다. 우리는 왜 그렇지 못했는가를 자문하면, 성리학이나 신분사회 등으로 답을 내고 답답함을 느끼며, 조상들의 못남을 탓하기 쉽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기존 사회가 형성한 지식이고, 지식의 대부분은 서양 학문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이 과정은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서구의 입장을 받아들이다 보니 우리의 모습은 왜곡되었고 왜소해졌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은 산업화를 이루기 전 유럽에서 어떤 나라가 강대국이었는가를 서술한다. 팀 마샬은 『지리의 힘』 연작을 통해 지정학의 관점에서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자크 아탈리는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로 유럽은 죽지 않았음을 주장하고,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로 현재는 과거 축의 시대의 통찰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한다. 토인비와 슈펭글러, 새뮤얼 헌팅턴도 자신의 관점에서 세계적 강대국, 문명의 흥망성쇠를 논한다.


『패권의 비밀』은 앞에 언급한 석학들과 다른 관점에서 헤게모니를 연구한 역작으로 서울대 명예교수 김태유의 연구 결과로 유튜브에서 강좌로도 만날 수 있다. 많다고 할 수 없어도 적지 않은 책을 읽었기에, 『패권의 비밀』이 가진 관점은 신선함 이상의 통찰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권을 정의하며 마르크스와 그람시, 아리스테이데스, 클라우제비츠 등을 언급하면서 “패권국이 국제관계에서 경제적 부국인 동시에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도 강대국임을 전제로 하여 한 나라의 패권을 가능케 하는 경제적 조건의 문제인 경제적 잉여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수단, 그 방식으로서의 경제 체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하여 다룬다.


김태유의 통찰이 보여주는 핵심 가치는


첫째, 농업사회는 감속 사회이고 산업 사회는 가속 사회라는 점이다. 감속 사회란 토지에 최대의 노동력을 투입해도 생산량의 증대는 한계가 있으므로 농업사회가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농민을 착취하거나 대외 정복이 필요했다. 산업 사회는 공급 부문의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글로벌 확대재생산 체제를 구축해 강대국으로 성장 유지 발전한다는 것이다.


둘째, 농업사회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신분제, 계급과 같은 엄격한 구조를 갖고 농민을 착취하기 위해 인간의 수양을 강조했다. 우리가 고전이라 말하는 동양의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그렇다. 산업 사회는 개인의 역량, 자율성, 과학, 기술혁신, 창의성을 강조해 사회의 잠재력과 생산력을 키우려 한다.


셋째, 경제와 전쟁은 순환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파괴적인 일이지만,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계기였음을 밝힌다. 전쟁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 성장에 군산복합체가 이바지한 점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넷째, 위와 같은 핵심 내용은 농업제국 스페인의 몰락, 상업제국 네덜란드의 흥망, 산업화를 이끈 영국, 2차 산업화를 이끈 미국에서 찾아내 농업사회의 강대국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산업 사회의 강대국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설명한다.


다섯째, 제조업의 비중이 떨어지고 금융업이 중심을 이룰 때는 망조를 보였다. 가치가 재투자되지 않고 금융에서 얻는 이익이 중심이 되면 국력이 더는 버티지 못한 사례를 네덜란드의 튤립 투자,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찾았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이것은 독자의 판단이다.


결국,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저자는 『패권의 비밀』에 다양하고 수많은 통계치를 활용하는 경제학자로 역사학을 따로 배웠다)가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이며, 그러한 비밀은 간명한 이론(김태유의 이론)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 내용을 토대로 역사를 가르쳐왔던 타성을 반성하고, 독서로 교양을 쌓는 일이야말로 가르치는 사람이 평생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일임을 생각한다. 김태유 교수의 말에 따르면, 『패권의 비밀』 주요 내용은 서울대 박사과정에서 한 해 동안 가르치는 내용이란다.

첫째, 책이 가진 핵심 내용은 서구 지식인이 동양 유학생에게 주입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란 것이 기쁜 일이다.

둘째, 한국에서도 서구 석학의 연구물에 뒤지지 않는 통찰로 농업사회와 산업 사회를 비교하고 경제 잉여의 관점에서 경제와 전쟁의 순환이라는 이론을 구성하니 반갑다.

셋째, 인구수, 군사력, 경제력, 영토 등의 변수와 지정학 말고도 강대국의 흥망을 경제적 잉여, 경제와 전쟁이란 주제로 설명할 수 있음이 즐겁다.


약 400쪽 분량,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큰 인사이트를 준 책은 『패권의 비밀』이다.


<경제와 전쟁의 순환, 그 이론의 역사>에서

-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그람시는 패권을 기본적으로 ‘강제+동의“로 이해하면서도 후자에 큰 관심을 보인다. 무력, 지배라는 정치적 요소보다는 설득, 지도라는 지적 도덕적 요소를 강조한다. 즉, 패권 없는 지배란 무상하며, 패권 없이는 지배 자체가 불가능하다.(p.15)


- 농업사회는 분배할 잉여가 줄어들면서 사회 구성원의 양보와 희생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패권이 행사되는 제로섬 사회다. 경제 성장이 가속하는 포지티브섬 사회인 산업 사회에서는 분배할 수 있는 잉여가 계속 늘어날 것임으로 양보와 희생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누리는 경제적인 이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패권이 행사될 것이다.

- 역사상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을 통해 대외 팽창과 확대를 꾀하는 국가를 제국이라 볼 수 있다. (p.22) 제국의 번영과 패권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경제 체제의 등장은 예상하기 어렵다. 그 말은 ’로마의 평화‘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산업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 농업 사회는 정체된 국내 농업 생산의 돌파구로써 국외로 눈을 돌려 영토 확장을 꾀했다. 총생산이 정체될 때마다 새로운 전쟁을 통해 또다시 총생산을 증가시키는 과정을 반복했고, 그 결과 농업 경제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 (p.36의 그림) 경제 성장이 정체된 농업 사회에서 유일한 성장 동력인 전쟁도 결국 부가 패자에게서 승자에게로 단순히 이전되는 제로섬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상업 사회는 확대 재투자 체제에 의해 경제가 가속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사회로 달리 보면 인류 최초의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상업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농업사회와 달리 확보된 이윤을 전부 소비하지 않고 그 일부를 자본으로 축적하고 그 상업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상업 거래에 재투자된다. 이윤을 기업과 가계의 수입을 증대시켜 기존 수요를 확대하고 이에 따라 기존 상품의 공급이 증가하거나 새로운 상품의 도입을 자극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확보된 이윤은 자본으로 축적되고 확대된 수요와 공급이 새로운 시장 균형을 가능하게 하여 경제 순환 주기가 원활하게 반복되고 지속된다. 이것이 상업 사회의 확대 재투자 체제의 바탕을 둔 경제의 선순환이다.

상업 사회에서 얻는 높은 이윤율은 위험 부담을 무릅쓰는 기업가 정신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상업 사화의 성장 한계는, 축적된 자본이 산업 사회에서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신상품을 효과적으로 발굴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 농업사회의 상품 중에서 새로운 고수익 상품을 찾아내야만 했던 데 있었다. 상업 사회의 쇠락을 초래한 중요한 요인이 신상품을 발굴하지 못한 상업자본이 결국 금융 자본화되거나 투기 자본화되었던 데 있었다.

상업 사회가 산업 사회의 확대 재생산 체제라는 자가 동력을 갖추지 못할 때 농업 사회와 마찬가지로 성장의 한계에 부딪쳐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p.51 그림5)

산업 사회의 확대재생산 체제는 상업 사회의 확대 재투자 체제와 유사하고, 상업 사호에서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윤이 자본으로 축적되고 또 소득을 증가시켜 수요가 증대한다. 나아가 기술혁신을 통해 공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신상품을 개발함으로써 지속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이와 같이 성립된 산업 사회의 경제적 순환을 유지해 주는 힘은 첫째, 민간의 기업가 정신, 둘째, 사회적인 과학기술 마인드, 셋째, 국가 차원의 산업 정책이다.

산업 시회의 확대재생산 체제의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 흐름도(p.57 그림8)는 책이 제시하는 핵심 개념을 도식화한 것이다.

◦19세기 내내 영국은 수출의 대부분을 직물과 철강 등 1차 산업 혁명의 결과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제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산업 정책을 포기하고 산업계 기업가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자유 무역 정책을 고수했다. 이는 금융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자본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하는 자유주의가 영국 금융 엘리트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영국 패권의 쇠퇴는 가속화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은 패권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2025년 한국 정부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자본의 이동을 도모하는 일을 추진하며 예상되는 문제점을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반면 미국과 독일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 아래 석유, 가공식품, 전자 장비, 비철 금속 등 2차 산업 혁명의 생산품들을 생산하고 수출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대규모로 창출하여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생산 기술을 표준화한 ’미국식 제조업 체계 American system of manufacturing’를 발전시키면서 영국 제조업의 생산성을 능가하는 혁신을 보여주었다.


◦2차 대전 때 영국은 지나치게 국력을 소모한 나머지 금 및 외화 보유액이 바닥나고 국내의 생산시설이 낡았기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자면 군수품, 선박, 식량 등을 더욱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미국의 군수 물자에 의존하여 마치 농업사회의 전쟁에서처럼 파괴적 전투에만 국력을 소진했다. 총력전에서 군수품을 많이 생산한 순서, 즉 산업 기술력과 기술자를 더 많이 육성한 미국, 독일, 일본 순으로 전후 3대 경제 강국이 등장한 사실이 산업 사회의 전쟁이 장기적으로 포지티브섬 게임(동반 성장 관계)임을 말해 준다. 2025년 한국의 방산 수출액 급증은 남과 북이 대치한 위기에서 나타난 기회인 바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후발 산업국인 독일과 일본이 세계 대전에서 패했음에도 선발 산업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앞섰다. 인류 역사를 통해 전쟁에서의 승전이 경제발전과 번영에 필수조건이었던 상식과 원칙을 벗어나는 독특한 현상을 김태유는 ‘불사조 효과(Phoenix Effect)’로 이름지었다.


- 영구 평화와 세계정부에 대한 루소와 칸트의 열망은 단테의 것을 이어받았다.

- 산업 혁명을 “생산 기술의 혁신이 일어남으로써 주거래 상품이 제조업 상품으로 바뀌고, 경제 구조가 산업 사회의 확대재생산 체제로 이행하는 사회경제적인 급격한 변화”로 정의한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국가는 이미 산업화에 성공하여 상품의 수출에 자신이 있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국가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자유무역은 비공식적 제국주의라고도 한다. 산업 사회에 이르지 못한 나라는 국가가 강력한 보호무역으로 자국의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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