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유 김연배 지음
2025. 11. 18(화)
2017년 『패권의 비밀』은 농업사회와 산업 사회를 감속 사회와 가속 사회로 비교하고, 전쟁은 기술의 혁신으로 경제발전을 추동한다는 이론으로 패권의 비밀을 풀었다. 김태유의 2021년 후속작 『한국의 시간』은 산업 혁명을 제1차 대분기, AI로 전개될 세상을 2차 대분기로 설정하고, 대한민국이 겪은 산업화 과정과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국가가 정책으로 새로운 산업 혁명인 2차 대분기에 앞장설 때라고 주장한다.
행복을 추구할 때 개인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며 국가의 경제 성장이 기초라는 입장은 (부정적인 의미로 국가주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긍정적 방향으로 본다. 화승총과 무라다 소총을 견주어 기술의 차이로 임진왜란 당시 고통받았음을 상기시키며, 4차 산업 혁명을 먼저 달성해야 한다며 부제로 ‘FIRST MOVER TAKES ALL’로 지었다고 미루어 본다.
‘산업 혁명은 세상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었다’라며 중국, 일본, 조선의 인식과 대처를 서술한다. 일본의 요시다 쇼인과 화혼양재, 조선의 최익현과 위정척사를 비교하며 조선은 수신을 치국으로 여겼다고 평가에 공감한다. 중국의 중체서용을 도모한 양무운동이 불완전하나마 산업 혁명의 저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는 내 기존 지식을 허문다.
유럽 농업사회는 수직적 신분사회를 유지하려 노동의 신성함과 청빈한 삶에 만족하라며 천국에 가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건강 상태의 악화, 약탈로 고통받는 사회를 낳았다. 농업사회는 감속이란 보이지 않는 힘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사회였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 혁명을 ‘희대의 사기극’(p.52)이라고 얘기한 까닭이다.
인간이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여 창조한 산업은 천지창조에 비견할 만큼 경이로운 일이었다는 근거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오전에 3시간 일하고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오후에 3시간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 시민이 각 도시의 시장을 선출, 종교의 자유,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를 위한 전쟁만 용인)를 들어 설명한다. 산업 혁명은 경제 성장 동력이 토지와 노동에서 자본과 기술로 바뀐 것이고 감속하던 사회가 가속하는 사회로 바뀐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매판자본이 일으킨 기적’이라며 기적의 비밀에는 첫째, 수출주도 산업화로 성공했다며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농업국에 불리하고 선진 산업국에 유리(시카고 보이즈의 칠레 수입대체 산업 문제)하다는 논지다. 수출주도 산업화와 정부 정책의 최적 조합이었다고 평가한다. 둘째, 적자 수출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정책을 성공시킨 것은 적자 수출이었다고 말한다. 적자 수출로 인한 기업 결손을 동일 상품의 국내 판매 이윤으로 벌충하면서 국가 경제와 수출기업의 동반 성장을 가능케 했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문장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으나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미국에 파는 현대차와 국내에서 판매되는 현대차의 질과 가격이 다름을 인식하는 것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최저가 낙찰제를 꼽는다. 최저가격으로 인프라를 건설해 물류비용을 낮추고, 또 거기서 절감한 비용으로 새로운 인프라를 더 많이 건설해, 경제 성장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1km 건설 비용이 일본의 칠분의 일이었으며, 20년간 유지 보수 비용을 빼고도 절감한 비용으로 고속도로 2개를 더 건설할 수 있었다는 추계 통계와 그림(p.122)을 제시한다.
한강의 기적은 확대재생산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한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원천적 경제 원리는 산업화라는 내생적 성장에 정부 주도 계획경제라는 외생적 성장을 더 해 경제 성장을 지속해 준 것이었다. 학교 교육 과정은 이를 혼합경제 체제라고 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달성한 압축성장은 독재와 민주화 같은 정치적 성장통, 기업윤리와 노동윤리 같은 경제적 성장통, 부정부패와 반기업 정서 같은 사회적 성장통을 겪고 있다. 『한국의 시간』을 통해 저자는 OECD 가입을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너무 일찍 갈아 있었다고 평가한다. 선진국을 흉내 내며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를 시작하면서 마치 선진국이 다 된 양 선진국 기준의 제도와 국제규범을 수용해 자본시장과 서비스 시장의 문을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를 자유화하고 정부의 여러 보호장치를 없앤 결과로 IMF 사태를 불렀다고 본다. 이후로 6개 정부의 경제 성장률은 대세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N포 세대와 헬조선, 가난한 노년,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에 주목하며 경제의 본질은 성장에 있다고 힘써 말한다. 후발국의 보호무역을 금지하는 WTO의 완전 자유무역은 선진국의 절대 우위를 보호하려는 역차별이고, 선발국이 보호관세(2025년 트럼프가 좋은 예다)를 남발하고, 후발국의 기업을 겁박하여 리쇼어링을 강요하는 것 등은 적극적 진로 방해라고 말한다.
경제 성장 동력이 가속을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라며 방법론을 찾는다. 선승독식이라 표현한다. 미래는 산업과 기술에 달렸다며 2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과 일본이 과학기술이 있었기에 재기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불사조 효과’라 이름 지었다. 부익부는 있어도 빈익빈은 없다는 논지를 통계와 그래프(레퍼 곡선 P.241)로 제시하며 기업을 키우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빈부 격차의 주범은 기업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금융투기 같은 불로소득이다. 낙수효과가 없다는 것은 불로소득에만 해당한다. 세금을 많이 걷는 방법은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기업과 고소득층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산업 사회의 확대재생산이고 가속하는 경제 성장이며 국가 발전의 기본원리다.
한강의 기적에 3가지 비밀이 있었다면 4차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3가지 비책을 제시한다. 규제 완화를 위한 정부혁신, 인재 확보를 위한 사회혁신, 활로 개척을 위한 대외 혁신으로 설명한다. 정부혁신과 사회혁신은 컨트롤 타워가 기득권을 빼앗아(?) 체계적으로 진행할 일이지 저자의 아이디어와 제한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도입부에서 밝혔다. 북극항로를 선점하고 러시아에 진출해야 한다는 대외 혁신 영역은 귀담아들을 일이다.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로 공무원의 순횐 보직에 따른 전문성 부족의 결과로 분석한다. 생태환경에 따라 비단잉어의 크기가 달라지는 ‘코이의 법칙’을 염두에 두고 관료 사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결정 지능과 유동 지능에 기초해 청년층과 노년층이 종사할 직업을 구분해 보는 시도는 흥미 있으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 지능을 기초로 국가 경제 이모작 시대를 열자는 주장의 논거인 지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듯하다. ‘북극항로’를 열어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은 2025년 정부에서 수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 장의 시작에 에드워드 기번의 “바람과 파도는 항상 가장 유능한 항해자의 편에 선다”라는 문장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패권의 비밀』에서 감속 사회와 가속 사회, 경제와 전쟁의 순환을 배우고 『한국의 시간』이 밝힌 한강의 기적의 비밀 3가지를 처음 알게 됐다. 경제 성장에 관한 상식의 재구성을 경험한다. 2차 대분기, 4차 산업혁명의 길에 앞서야 선승독식할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하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중지를 모으고 숙의해야 할 일이다. 2025 APEC을 계기로 정부와 대기업, 젠슨 황이 주기로 한 GPU 26만 장이 효과를 내도록 전력의 안정적 확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