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Mar 23. 2023

실수로 인한 수치의 순간이 배움의 순간이었다

살다 보면 내 실수로 인해 수치스러운 순간들을 겪고는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자면 스스로가 속으로 느꼈던 수치보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 당하며 수치를 느꼈던 순간이 더 강렬하고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아있고는 했다.

특히나 누군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내가 바보가 된 것만 같았을 때, 그때 당시에는 난 그가 인간쓰레기라며 그를 매도했지만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로 인해 나름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었다.


수치를 느끼게 만든 원인인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했었고, 그로 인해 내 삶 속에 좋은 습관이 자리 잡아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언젠가부터 그 습관으로 인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었더라.


수치를 느꼈던 순간만큼은 굉장히 괴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불완전하던 자존감이 박살 났으며, 우울해졌으며, 나는 자책하며 사람이 무서워지고는 했었다.

사람들의 비웃음이 꼬리표처럼 나를 따르는 것만 같아서 사람들의 눈길 하나도 무서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치와 상처로 인한 아픔이 조금씩 희미해져 갈 때쯤, 그로 인해 내 안에 좋은 습관이 생겨난 걸 느꼈다.


내 깊은 수치로부터 나를 스스로 자유하게 해 줘야겠다는 결심은, 사람들 앞에서 내 실수를 가지고 내게 수치를 안겨주었던 사람이 그 일에 대해서 제대로 기억조차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내게 한동안 지독한 가해자였던 그는 동료들 앞에서 내 실수한 모습을 흉내 내며 함께 깔깔댔고, 그에게는 가벼운 농담거리였을지는 몰라도 우연히 복도를 지나가다 그 광경을 본 내게는 한동안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장면, 나를 흉내 내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자존감은 박살이 났고 나는 당장이라도 어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5년 동안 지독하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은 수치심과 우울감을 느꼈고, 그 이후로 조금 무뎌지고 나서는 그 기억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고는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로 인해 물렁거리기만 했던 내가 조금은 더 독해졌고 타인에게 밑 보이지 않는 방법을 ‘덕분에’ 터득했더라.


그걸 깨닫고 나서 신께서 내게 자가치유하라며 주신 기회인지, 같은 업계에 일해서 내게는 가해자였던 그를 알게 된 이가 전해준 이야기는 가히 놀라웠다.

그는 이야기를 마구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게는 한없이 끔찍한 기억이었던 그 장면을 자기가 한 것인지도 몰랐으며 심지어 그는 내가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직후에는 분노했다.

가해자인 그가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인척 기억 속에 묻어뒀다는 게.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억울함이 뒤따랐다.

그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기억에 나는 얽매여서 얼마나 깊은 수치심에 괴로워하고 발버둥 쳤었나.

그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나 보다.


그 ‘덕분에’ 내가 이렇게 좋게 변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 고통의 세월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바보 같은 실수로 인해 자존감이 박살 나고 수치심이 대신 자리 잡았던 순간이 아예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리는 건 싫어서 내가 억지로 의미 부여하고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그 수치심을 통해 내게 배움이 있었다는 의미 가득한 결론을 내리고 싶은 미련한 욕심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 결론이 좋다.

이 결론을 내리고 나서야 어제 겪었던 일처럼 겪던 수치심을 다시 겪지 않았고 나는 원망으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며 내가 실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실수로 인한 수치의 순간이 배움의 순간이라고 주장하며 살아가려 한다.

원망과 수치를 떠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과도한 자기 연민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