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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봉구 Apr 01. 2023

원고료와 대천김

‘청소년평화모임’(이하 청평모) 회보에 실리는 글이 내가 쓰는 글의 전부인지라, 민망하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 청평모다. 혹 그동안 쓴 글들을 책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하여 지난 호를 정리하다 보니 마흔 꼭지가 넘는다. 아직 책으로 묶어내기에는 형편없는 글들로 주제도 가지각색, 중구난방이다. 그야말로 산문(散文)이다. 마감일을 제대로 지킨 적은 없지만, 6호부터 46호까지 한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은 회보의 발행인인 조재도 시인이다. 마감일까지 기다려주고 세심하게 교정을 해 주는가 하면 설과 추석에 원고료라며 ‘김’도 보내준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대천김’을. 때가 되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내 글의 원동력은 어쩌면 그 ‘대천김’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겨울 밥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찬은 단연 김이었다. 겨우내 김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이야 마트에서 손에 잡히는 김을 사다 먹으면 되지만, 그때는 시장에서 톳으로 사와 끼니때마다 김을 직접 구워내야 했다. 신문지 한 장을 펼쳐 놓고 그 위에 김 한 장 얹고 들기름을 고루 바른 다음 소금을 뿌렸다. 들기름 먹어 빳빳하고 윤기 나는 김 위에 뿌려지는 소금 소리는 처마를 적시는 봄비 같았다. 그렇게 들기름 옷에 소금을 걸친 김은 연탄불에 노릇하게 구워지고 적당하게 잘라져 이수씨개 머리핀을 꽂고 나서야 밥상에 올라왔다.

들기름 먹은 재래김도 일품이었지만 간장에 찍어 먹는 파래김 맛도 잊을 수 없다. 들기름이나 소금이 필요 없고 그저 연탄불이나 석유곤로 불에 몇 장 구워 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재래김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인 맛이었다.

어린 시절 입맛을 사로잡았던 김은 대천을 떠나면서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열여덟 되던 그해 겨울에도 어머니는 큰누이와 자취하던 대전 보문산 아래 동네까지 와 김을 구워주셨다. 연탄불에 김을 구우시다 쓰러지신 어머니는 그 후 2년 동안 겨울이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대학생이 된 첫해 여름 마지막으로 쓰러지신 후 더이상 밥상에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구워 먹는 김을 회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조리되어 포장된 상태로 판매되는 김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요리 좀 한다는 아내가 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가 가끔 구워주더라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을 흉내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청평모 원고료로 받는 ‘대천김’은 좀 달랐다. 원고료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김 맛과 같기 때문인지, 대천이라는 상표가 붙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매번 배달되어 오는 ‘대천김’에서는 어머니의 맛이 난다. 어쩌면 보내는 분의 마음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올겨울엔 대천 장에 가서 김 몇 톳 사와 구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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