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변 Nov 02. 2022

통화녹음 금지법과 음성권




. 통비법 개정안 발의, 통화 녹음 금지법


1. 통화녹음 금지법  


 지난 8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대표발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안(일명 통화녹음 금지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대화의 참여자일지라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현행법도 제3자가 타인간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하는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지만(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제16조 제1항 제1호), 대화 당사자간, 즉 그 대화의 참여자일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현행 통비법 제3조는 "타인간의 대화"의 녹음, 청취를 처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번 개정안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규정을 추가하였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윤상현 의원은 “현행법은 사생활의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중 핵심은 음성권이 될 것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ㆍ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제16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




2. 음성권


 음성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ㆍ방송ㆍ복제ㆍ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음성권은 초상권ㆍ명예권ㆍ성명권ㆍ프라이버시권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기본권입니다. 


 다만 음성권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음성권이라는 표현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정의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례도 아직 없다보니 음성권의 개념과 보호범위 등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립되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다만 하급심에서는 음성권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판시가 다수 있습니다.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이라도 이를 소송상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상대방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면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300만원 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2021가단5160620 판결). 과거 대법원에서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음성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판결(2019다256037 판결)이 있기는 했지만, 이 때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음성권에 대하여 설시한 것은 아니었고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9. 2. 선고 2021가단5160620 판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녹취, 방송 또는 복제 · 배포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헌법 제17조와 함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데, 이에 따라 개인은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도 가진다.따라서 동의 없이 상대방의 음성을 녹음하고 이를 재생, 녹취,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설령 그것이 형사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상 보장된 음성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한편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등 행위 목적의 정당성, 수단․방법의 보충성과 상당성 등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녹음자의 비밀녹음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일단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평가된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하여야 한다.




3. 반대여론과 수정안 발의


 통화녹음 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상당합니다. 조사기관에 따라 개정안에 대한 찬반비율이 상이하지만, 전반적인 여론은 통화 녹음은 공익 제보나 약자들의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대화 참여자의 녹음마저 금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쪽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 및 SNS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으며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반대의견이 64%로 집계되었습니다.


 여론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보니 윤의원은 얼마전 수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형량을 낮추고, 공익목적인 경우 예외를 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되, 녹음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22. 9. 29. 발의된 수정 개정안>



Ⅱ. "공공의 이익" 그리고 "형사처벌"의 문제



1.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한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직장내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직장상사가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자 참다 못해 이를 신고하고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위자료를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하였는데 그 때 증거로 몰래 녹음한 녹취록을 제출했습니다. 이 경우 공익에 관한 것일까요? 사익에 해당할 소지가 상당합니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상정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욕설을 하며 시비를 걸자 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녹음을 하는 경우가 다수 있는데, 이는 공익에 관한 것은 아니므로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가 오히려 통비법 위반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권리의 다툼이 첨예한 소송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계약서가 없거나 증거가 없어서 상대방이 했던 진술로 증명을 해야할 때도 부지기수입니다. 소위 구두계약의 경우라던가 계약서가 멸실된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에 녹취록은 유의미한 증거가 됩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런 녹취행위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결국 이러한 방법은 사실상 원천봉쇄되게 되고 결국 진정한 권리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적 압력, 괴롭힘, 갑질은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간접적으로 또 추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잦습니다. 이러한 경우 공익과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에 관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형사범죄인 사기, 절도, 명예훼손, 모욕 등에 대한 증거로 녹취록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도 개인적인 법익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정작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상대방인데 피해자인 나도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녹음을 하지 않는다면 정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가해자는 무죄가 선고되는 억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녹음에 대한 동의를 구한 다음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하여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형식에 따르면,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사유인 형법 제310조와 관련된 거증책임전환에 대한 판례(대법원 1996. 10. 25. 선고 95도1473 판결)를 고려해보았을 때, 공공의 이익 해당여부의 증명책임은 피고인이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부작용이 더 큰 법안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대법원 1996. 10. 25. 선고 95도1473 판결>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형법 제310조의 규정에 따라서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된다는 점을 행위자가 증명하여야 하는 것이나, 그 증명은 유죄의 인정에 있어 요구되는 것과 같이 법관으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때에는 전문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의 제한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는 적용될 여지가 없다.




2. 형사처벌의 문제


 헌법상 기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사생활의 자유, 음성권1)등의 보호를 그 취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의 침해와 형사처벌은 구분되는 문제입니다. 타인의 얼굴 등을 무단촬영한 경우, 즉 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초상권도 헌법상 기본권(인격권)에서 도출되지만 초상권을 침해하여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2) 이는 민사소송을 통하여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

1) 음성권에 대하여는 이를 정면으로 인정하는 헌법재판소 판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일반법원의 경우 하급심 판결에서 음성권 침해로 인정한 판례가 다수 있지만, 대법원은 명확한 법리적 설명 없이 이들 판결을 확정하였다(대법원 2019다256037).

2) 성폭력 범죄인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이른바 몰카)는 예외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하여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반드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형벌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이므로 형벌권을 '중요한 사회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여야 하는 것(헌재 2009. 7. 30. 2008헌가14)입니다. 쉽게 말해 "대화 참여자의 무단 녹음이 국가 차원의 제재인 형사처벌까지 할 사안인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으로도 얼마든지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위자료 등 손해배상). 음성권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최근 판례도 민사소송이였으며,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였음은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화의 참여자가 녹음을 한 것 자체가 과연 징역까지 처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녹음을 배포하여 추가적인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중대한 법익 침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도 종종 발생합니다. 최근 유투브 등을 통한 '폭로' 영상이 다수 있는데, 무단 녹음한 녹음본을 임의로 편집하여 공개하는 행위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 사안에 따라 명예훼손죄 등 얼마든지 다른 죄목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녹음을 토대로 추가적인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그 추가적인 행위가 중대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인 것과 녹음 자체가 중대한 범법행위로 형사처벌의 대상인지는 구분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사생활의 자유, 음성권 보호 등 통화녹음 금지법 개정안의 취지도 분명 합리적인 측면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개정안이 과연 타당한지는 더욱 심도있는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변호사가 보는 "카톡 간편 송금 금지", 사실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