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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울 Mar 07. 2022

심리상담을 처음으로 받아봤다

13월을 살고 있는 기분. 이것이 내가 심리상담받게 된 계기이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아무런 변화도 없고 오히려 우울한 기분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설날에 쉬면 되겠지라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과 밤이 바뀐 불규칙한 수면 패턴, 하루에 한 끼 겨우 먹을 정도의 식욕을 이긴 귀찮음 등 일상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검색창에 심리상담이라는 글자를 치고 수많은 후기글을 읽으며 괜찮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약을 잡았다.


상담 전날에도 퇴근 후 지친 몸을 침대에 잠시 기댄다는 게 깜빡 잠들어서(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새벽 1시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는 걸 매우 힘들어하는 나였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아침에 못 일어나서 상담을 못 가면 어쩌지? 지금 다시 자기엔 집안일도 밀렸고 배도 고픈데. 약 1시간의 고민 끝에 나는 밤을 새우기로 결정했다. 그 새벽에 참치김치찌개를 데워서 밥을 먹고 수업 준비를 하고, 허리가 아파 잠시 눕는다는 게 또 그대로 자버렸다. 이때가 5시였는데, 여유롭게 알람을 8시에 맞춰놨지만 9시에 일어나버렸고 후다닥 아침을 꾸역꾸역 먹고 상담센터로 향했다.


허겁지겁 달려간 센터는 생각보다 안락한 느낌이 있었고 조용해서 좋았다. 상담사 선생님이 직접 로비에 나와서 나를 방으로 데려갔고, 편하게 말해보라는 말에 눈물이 툭 터졌다. 집안 얘기로 시작을 했고 요즘 제일 힘든 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온 무기력증이라고 했다. 나무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서 뿌리는 보이지 않게 밑으로 뻗은 큰 나무를 그렸다. A4용지가 꽉 차게, 밥 아저씨처럼 풍성하게, 그리고 나뭇가지에 잎을 자잘자잘하게 그렸다. 다 그리고 나서 상담사님이 얘기하시기를 나무의 뿌리는 욕구를, 잎도 성취를 뜻하는 거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게 있을 거라고 했다. 나무 크기가 크고 그리는 선이 강해서 자아가 약하지 않을 거라 했다. 물론 내 생각도 같았다. 지금의 상황이 좀 버겁고 마음이 힘들 뿐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그 나무 그림을 멀리서 보여주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고 질문하셨는데 순간적으로 작고 초라해 보였고, 그게 나 같아서 눈물이 터졌다.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고 가족과 관련된 문제 속에서 제일 어리고 작았던 내가 너무 짠해 보여 서러운 느낌이랄까.


상담 막바지에 이르러서 심리상담을 통해서 어떤 걸 얻고 싶은지, 혹은 그냥 상담과 관련 없이 앞으로 어떤 걸 얻고 싶은지 물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없어서 그냥 솔직하게 없다고 했다. 내가 상담을 하러 온 목적이자 이유는 어쨌든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이 감정들을 가지고 계속 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 작은 불씨가 나중에 더 크게 화가 되기 전에 해결하려고 온 거라고도 말씀을 드렸다.


상담해보니 어떠냐고 마지막으로 물어봐서 생각보다 속 시원하진 않다고 했다. 사실 내 감정을 말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은 편이라 줄줄 말해서 그런지 준비해온 거냐는 선생님의 말. 스스로도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통찰력이 없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게 비쳤구나,라고 생각했다. 다 털어놓으면서 감정을 폭발시키니 돌아보면 꽤나 후련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당일에는 오히려 얼떨떨한 게 컸는데, 되돌아보니 그날을 기점으로 감정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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