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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글 Sep 26. 2018

공상이죠, 그건

적어도 내게는 완벽한 사람

이상형을 묻는 사람에게 “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요.”라고 답하며 어물쩍거린다. 하지만 솔직한 대답은 ‘그냥 공상이죠, 그건’이다. 이상형은 선입견에서 비롯된 거라 믿기 때문. 몸매가 좋으면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나 똑똑하면 성실한 사람일 것 같다는 선입견들 말이다. 다만 염세적인 사람이라는 표적이 되기 싫어 속으로 삼킬 뿐이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고, 나쁜 남자는 매력 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나선다. 내 이상형을 굳이 만들자면 만났을 때 느낌 좋은 사람. 즉, 매번 바뀐다는 소리다. 느낌은 굉장히 모호한 거라 어제 좋았던 사람이 오늘은 아무 감흥도 없을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남자들에게도 내가 썩 괜찮은 느낌을 주진 못했나 보다. 연애를 많이 하진 않았다. 내 이별 후유증 중 하나는 ‘아, 이런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비이상형이 생긴
다는 것. 몇 가지 말하자면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사람, 예전 애인과 오래 만난 사람(오래의 기준은 ‘4년’이다), 셀카 잘 찍는 사람, 발목 양말 신는 사람,
향이 없는 사람 등이 되겠다. 향이 없는 사람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후유증이다. 후유증의 원인이 된 그는 아무런 향이 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당시엔 이 사실에 별다른 인식이 없었으나 그가 진한 머스크 향수를 뿌리고 온 후로 강한 인상이 박혔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을 때 내 몸에 남은 은은한 잔향이 좋아서. 부드럽고 포근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잔향을 그의 향으로 치부했다. 향은 사람을 기억하는 좋은 수단이란 걸 그제서야 깨달은 거다. 그와 이별한 후엔 마치 감별사처럼 그 향을 자주 맡는다. 그럴 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이 참 아플 때도 있으나 대개는 반갑게 맞이한다. 너도 잘 살고 있구나, 하고. 그래서 향이 없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릴 기회를 잃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이상형을 만드는 일, 한때 사랑했던 상대를 오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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