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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Nov 09. 2020

바스키아에게 인스타가 있었다면

장 미쉘 바스키아 전을 보고 느낀 세 가지

사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것은 불안과 좌절이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아 좌절하고, 또 잘 쓰고 싶어 불안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좌절한다. 언어 공부, 공예, 운동, 다 그렇다. 요즘들어 꾸준히 하는 것이 그리 없다. 겁이 자꾸 난다.

바스키아는 거의 내 나이 때 약물 과다로 사망했는데, 그 전까지 화가로서 약 3000점의 작품이라는 대단한 커리어를 남겼다. 그런 바스키아의 전시를 보며 나는 세 가지 생각이 났다.


첫번째, 정말 드물게도 자신이 특별하다는 감각을 계속 지켜낸 것이 놀라웠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내가 특별하고 특이하고, 또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주 생각했다. 똑똑하고 창의적이어서 날 좋아하진 않아도 내가 생산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단 '많은' 이라는 데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었고, '모든'이라는 건 어디까지가 나의 생산물, 창작물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특별한 줄 알았지만 너무 평범하고 지루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그런데 그 반면에 바스키아는 자길 더러 '전설'이라고 불렀다. 화가로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왠지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 예감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리는 그림의 작은 한 부분에도 빠짐없이 백 퍼센트 확신했다.
재능이 먼저인지 자신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바스키아의 이 태도가 아주 부러워서 닮고 싶었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을까? 잘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다.


두 번째, 바스키아는 평론, 시장, 대중에 의해 몇몇 이미지와 이름들을 덧씌움당하는데, 그게 유명세에 도움은 되었을지 몰라도 그 틀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이걸 부정하기 보다 작품으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했다.
미술계의 젊은 흑인 남성, 당대 미니멀리즘의 유행 속에서 아주 직설적인 회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도드라지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나의 값으로 정리되고 계속해 구색처럼 이용당하게 두지는 않았다.


세번째는 바스키아가 자기 작품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대담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 다양한 그림 중 똑같은 게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  그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만큼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은 대개 큰 크기에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했고, 무엇인가 그려놓았다가도 빽빽하게 덮어버리고 종이나 깃털로 만든 떡을 던져 붙이기도 했다. 캔버스를 과감히 척척 만들어 그리기도 했다. 작품 위에 손바닥이나 신발자국이 남아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앞서 서술했듯) 자기 그림의 모든 요소들은 모두 자기 의도대로 그려졌다고 했다.


만일 그가 계속 살아남아서/이 시대에 태어나서...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한 만큼,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만졌다면 어떤 작품을 그렸을까?

자기 표현을 잘 하는 만큼, 인스타그램을 쓰는 mz 세대로 태어났다면 피드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런 상상도 해 보며 작품을 봤다. 자기표현이란 늘 대단하고 신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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