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디어를 운영하다 보면, 누가, 왜, 어떤 의도로 돈을 주제로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돈이라는,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를 건드리기 때문에 ‘화자’가 누구인지가 궁금해지는 것이겠죠.
게다가 어피티는 ‘친절하게’ 돈 이야기를 하는 미디어잖아요. 돈 이야기를 친절하게 하는 곳을 초면에 무조건적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어피티를 왜 창업했냐’는 질문이 들어오면, 저는 제가 어떤 과거를 거쳐왔는지부터 이야기합니다. ‘잘 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투머치토커의 입에 시동을 걸기 시작해요.
사실 어피티는 저의 다섯 번째 팀입니다. 처음에는 ‘유명 언론사에 입사하고 싶은 대학생’의 외부활동에 가까웠는데, 여러 팀을 거치며 ‘좋은 언론사를 만들고 싶은 사람’의 창업이 되어버렸(?)어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다섯 번에 걸쳐 팀을 꾸렸고, 각 팀을 운영하는 동안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콘텐츠 전략을 실행해 왔어요.
첫 번째 팀: 미스핏츠(MISFITS)
미스핏츠는 2014년에 창업한 첫 번째 매체였습니다. 당시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해외 미디어는 지금도 건재한 VICE MEDIA였어요. 정치, 사회, 연애, 문화, 젠더 등 20대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분야를 맡아 콘텐츠를 제작했었죠.
형태도 지금과 많이 달랐는데요, 미스핏츠는 일종의 팀 블로그, 웹진의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홈페이지에 텍스트 콘텐츠를 올리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링크를 발행했고, 카드뉴스와 미드폼 동영상 등 당시 페이스북에 특화된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했어요.
두 번째 팀: 청춘씨:발아
2015년부터 운영한 청춘씨:발아는 시즌제로 운영된 매체예요. 청년 일자리 문제,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 지역 청년 인프라 부족 문제 등 각 시즌별로 하나의 어젠다를 잡고 바이럴 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웹사이트 없이 페이스북 페이지로만 운영됐고, 짤방 또는 짧은 영상 콘텐츠가 주된 포맷이었죠.
이때 레퍼런스로 참고했던 해외 미디어는 attn, playground+입니다. 정치, 사회적인 어젠다를 세련된 형식의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곳이었어요.
세 번째 팀: ALT
ALT는 2016년, 본격적으로 미디어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각오로 꾸렸던 팀이었습니다.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주로 영상 콘텐츠를 발행했고, 주제는 정치, 사회, 젠더였습니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이때 참고했던 해외 미디어는 Vox media, Buzzfeed였습니다.
미스핏츠부터 ALT까지, 3년간 20대 친구들끼리 모여 작은 실험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는동안 텍스트 중심의 콘텐츠에서 카드뉴스, 영상으로 콘텐츠의 포맷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과정을 목격했어요.
각 매체를 운영하는 동안 핵심 전략이나 콘텐츠 포맷, 목표 등은 세부적으로 달랐지만 주로 대학생, 취준생 등의 청년 이야기를 주제로, 페이스북 위주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정말 이제는 마지막이야!라고 생각하고 만든 매체는 포브입니다. 어피티의 전신이라 지금도 저희의 법인명, 포브미디어에 남아있어요.
포브는 정치, 사회 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독자’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종이 잡지의 넥스트 모델을 꿈꿨고, Vox media처럼 자회사를 통해 문화생활과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가 되는 것이 원대한 목표였어요.
또래 친구들이 대학생, 취준생에서 직장인이 됐기 때문에 콘텐츠 주제와 전략은 이전과 달라져야 했어요.
직장인 여성이 핵심 타깃이었고, 한정된 시간과 돈을 실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갈만한 음식점, 카페, 술집 등 공간을 짧은 정방형 영상에 담아 소개했습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스타그램에도 채널을 열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세 곳에 콘텐츠를 업로드했습니다.
반응은 애매했습니다. 시드투자를 받기 위한 IR에서도 타깃독자의 니즈가 정말 소비생활에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라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포브 구독자로부터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쉽겠지만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희는 잠시 포브 팀을 멈추고 타깃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콘텐츠 제작자인 우리가 좋고,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믿고 감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우리의 시선과 경험, 직관에서 벗어나 타깃독자를 대면할 때였어요.
그렇게 약 세네 달간의 타깃독자 리서치가 시작됐습니다.
1차 리서치는 25~34세 연봉 3천만 원~6천만 원 정도의 직장인 여성을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는지, 출근길에는 어떤 것을 보거나 듣는지, 월급은 얼마를 받고 어떻게 쓰는지, 재테크를 하는지, 커리어 고민이 있는지, 스마트폰 메인화면에 어떤 앱이 있고 어떤 것을 왜 쓰는지 등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종족을 연구하듯 많은 질문을 던졌어요.
바로 이때 발견하게 된 문제가 타깃독자의 돈관리, 재테크 고민이었어요. 처음으로 매달 통장에 200만 원 이상 들어오는 생활을 하게 됐는데, 지금껏 이런 돈을 관리해 본 적은 없고 금융경제와 관련된 기초 지식이 쌓여있지 않았던 거죠. 또 사회초년생 시기라 큰돈 쓸 일이 아직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달 들어오는 소득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요.
그래서 일단 들어오는 돈을 소비하는 데 주로 쓰고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는 게, 우리가 만난 2030 직장인 여성의 고민이었습니다. 왠지 이 주제를 이야기할 때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저희는 이 문제에 집중해 2차 타깃독자 리서치와 시장분석에 들어갔습니다. 2차 타깃독자 리서치에서도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1차 인터뷰 때보다 인터뷰이의 연봉과 나이 구간을 좁혔고, 질문도 돈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시장분석에서는 ‘2030 여성들이 찾아볼 만한 금융경제 콘텐츠’를 찾았습니다. 유튜브, 블로그, 책을 중심으로 찾아봤고, 지금의 콘텐츠로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첫째, 타깃독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는 추천 알고리즘으로는 금융경제 콘텐츠가 도달하기 어렵다.
둘째, 타깃독자가 실제 경제생활에 문제를 겪게 됐을 때 검색을 통해 찾아 들어갈 만한 콘텐츠는 있지만, 이들에게는 이 행동을 하기 위한 문제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셋째, 유튜브, 블로그, 책 등 현재 금융경제 콘텐츠는 주요 타깃독자가 이미 스스로 재테크를 하는 4050 남성으로 설정돼 있는 경향이 있다.
넷째, 사회초년생 재테크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콘텐츠 내의 용어가 어려운 편이다.
아직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금융경제가 어려운 사회초년생 여성에게 금융경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문제가 명확했기에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때쯤 알게 된 해외 미디어 트렌드가 뉴스레터입니다. 이 트렌드는 우리의 고민을 확실하게 해결해 준 열쇠가 됐습니다.
뉴스레터는 추천 알고리즘의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특별히 서버에 문제가 있거나 스팸으로 분류되지만 않으면, 구독을 누른 뒤 안전하게 구독자의 메일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타깃 리서치를 하며, 직장인의 하루 루틴에 이메일함을 열어보는 행위가 공통적으로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오전 일과를 시작할 때 꼭 한 번은 메일함에 들어갔습니다. 뉴스레터를 확인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입니다.
영상 콘텐츠에는 시간의 축이 있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내용이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 뉴스레터의 주요 포맷인 텍스트는 아주 효율적으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메일함으로 찾아가는 경제 뉴스레터. 금융경제가 낯선 2030 직장인 여성과 경제생활 시작점에 선 사회초년생을 핵심 타깃으로 잡고, 저희는 경제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합니다.
피봇을 거치며 매체명도 바꾸었습니다. 돈 앞에서 위축된, 두려워하는 이미지를 반전시켜 돈 앞에서 이기적일 정도로 당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당당한, 이기적인, 오만한 이라는 의미를 가진 uppity를 저희 매체명으로 정했어요.
주식회사 포브미디어를 만들며 ‘타깃독자가 10년 뒤에도 더 나은 10년 뒤를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포브미디어의 첫 매체인 어피티 역시 마찬가지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어요. 지금의 미션 문구는 과거와 조금 달라졌지만요.
“돈 앞에서 당당하게!”
10년 뒤, 3040이 될 현재의 2030이 ‘돈 앞에서의 당당함’을 바탕으로 10년 뒤에도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바로 그때 어피티는 3040이 가장 신뢰하는 기성 경제 미디어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경제를 담당하는 어피티 외에도 문화, 정치, 사회 등 여러 분야의 매체를 아우르는 모습으로 포브미디어가 진화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구독자의 신뢰자본이 탄탄하게 뒷받침하며 좋은 수익모델로 돈 많이 버는 회사로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