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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Oct 30. 2024

10시간 30분의 비행

낯선 미국 땅을 밟다.

'2013년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한 통의 문자와 함께 서둘러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스튜디오였다. 대학교 졸업반이 될 때까지 여권이 없었던 나는 교환학생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권부터 만들어야 했다. 스튜디오에서 여권 사진을 촬영한 후 같은 사진으로 비자 규격에 맞는 사진까지 인화를 요청했다. 교환학생으로 합격한 곳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치코 캠퍼스. 미국이라서 그랬는지 원래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생 비자 발급이 필요했다.


미국을 단순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다면 90일까지 머물 수 있는 관광비자(ESTA) 비자만 신청하면 된다. 나는 공부를 목적으로 장기간 체류를 해야 했기 때문에 F1 학생 비자가 필요했다. F1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 대사관에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부랴부랴 인터뷰 후기부터 검색했다. 인터뷰는 미국 체류 목적에 맞게 비자를 신청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말을 더듬거나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큰 이변 없이 발급받을 수 있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한 미국 대사관, 내 차례가 오자 준비한 대답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뇌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문 목적과 얼마나 방문하는지, 학교가 어디인지 등에 대한 가벼운 질문들이었고 무난하게 대답한 덕분에 F1 비자 발급에 성공했다.


대사관에 여권을 제출하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비자가 부착된 여권이 집으로 배송된다. 도장 하나 찍히지 않은 상태에서 비자부터 부착된 여권을 보니 괜히 설레는 마음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본 곳이 없기에 날씨를 검색해 봐도 옷을 어떻게 싸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1시간 만에 출국 짐을 싸버릴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낮에는 반팔인데, 밤에는 경량패딩을 입어야 하는 날씨가 도대체 무슨 날씨지?'


반팔과 야상, 카디건 위주의 옷을 주섬주섬 챙겨서 도착한 공항. 첫 출국인지라 엄마도 떨린 것일까. 안산에서 인천공항까지 톨비만 2만 원 가까이 나오는데, 기꺼이 차로 데려다줬다. 난생처음 가 본 인천공항은 웅장했다. 높은 천장과 밝은 조명, 탁 트인 풍경. 공항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설렘 MAX다. 체크인 후 여권 사이에 끼워진 비행기 티켓을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 진짜 미국 가나 봐."


말괄량이 사고뭉치였기 때문에 엄마는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행여나 내게 무슨 사고가 있을까, 시차도 다른데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아닐까. 한가득 걱정했지만, 나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걱정 어린 얼굴을 뒤로한 채 올라탄 비행기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뒤로 젖혀지지 않는 좌석에 대비해 준비한 목베개를 두르고, 제공해 주는 담요를 무릎 위에 덮는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해가 중천인데 잠이 올 리가 있나. 이내 자는 것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두리번 거린다. 만석이다. 다들 샌프란시스코에 무슨 볼 일이 있는 걸까? 출장일까? 나처럼 공부하러 가는 걸까? 여행 가는 걸까? 궁금한 것 투성이다.


좁고 불편한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 세수를 한다. 비행기 안은 건조하기 때문에 마스크팩과 로션을 챙겨가면 도움 될 것이라는 블로그를 보고 챙긴 것들을 화장실에서 붙이고 나온다. 건조한 탓에 금방 말라버리는 마스크 팩을 떼어내고 로션을 흠뻑 바른다. 건조함을 몰랐다면 피부가 쩍쩍 갈라진 상태로 비행기 안에 있었을 생각을 하니 이름 모를 블로거에게 고마웠다.


어느덧 기내식 시간. 하늘 위에서 먹는 식사라니. 밥이 덮여있는 은박지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보자마자 간에 기별도 안 갈 양이었는데, 다 먹고 나니 이상하게 배가 불렀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꺼지는 불. 분명 낮 시간인데, 기내에 불이 꺼지니 제법 밤 같다. 잠이 들 시간이다.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간식. 움직임은 줄어든 채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니 몸이 팅팅 부어버렸다.


'비행기에서 사육당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몸이 부어도, 사육을 당해도 마냥 좋기만 한 비행이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 승객 여러분께서는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창문 덮개와 좌석 등받이, 좌석테이블을 바로 해주십시오."


기장의 멘트와 함께 10시간 30분의 비행이 종료됐고, 낯선 미국 땅을 밟았다. 나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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