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에게도 9호선은 쉽지 않다.
여의도, 노량진, 고속터미널… 유동인구가 많은 노다지 환승역을 다 지나는 9호선은 출퇴근길 지옥철로 악명 높다. 완행과 급행이 1:1 비율로 운행되지만, 출퇴근길에는 완행도 급행도 지옥철이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비명소리는 기본, 밀고 밀리는 상황이 익숙하지만 적응되진 않는다. 누구 하나 밀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밀려난다.
‘이러다 압사당하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쯤 다음 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린다. 누군가 튕겨나가고 누군가는 밀려 들어온다. 내릴 곳이 아니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내리게 된다. 그렇게 튕겨 나온 역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밀리고 밀린다.
임산부도 예외는 없다. 불러온 배를 끌어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지만 이내 밀리고 만다. 분홍색 키링에 불과한 임산부 배지. 임산부석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겨우 들여다본 임산부석에 임산부는 없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다가가 앞에 서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일어나고 임산부가 앉으면 되는 간단한 상황인데 임산부석에 앉은 이는 요지부동이다. 잠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임산부를 무시해 본다.
인파 속에 휩쓸릴 자신이 없는 거겠지.
임산부는 익숙하다는 듯이 너덜거리는 손목으로 손잡이를 겨우 잡아본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힘을 주고 서 있는다. 허리가 아파오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점점 서 있는 게 힘들어지고 호흡이 가팔라오지만 아무도 관심 없다.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누가 비켜줄까?
눈을 질끈 감고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이가 일어날까?
일반석에 앉아있던 다른 누군가가 일어날까?
많은 인파 속에서 갖가지 상상을 해본다. 그 누구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어차피 쓰러질 공간도 없다. 그저 식은땀을 훔치며 호흡을 가다듬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틸 뿐이다.
“잠시만요, 내릴게요.”
한 마디를 하고 튕겨 나온다. 트이는 숨통, 이내 배가 당겨온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타 당기는 배를 쓰다듬어본다.
임산부에게도 일반인에게도 출퇴근길의 9호선은 쉽지 않다. 오늘도 우리는 9호선에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