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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04. 2024

$8을 넘겨버린 샌드위치

Enjoy your meal!

나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근교여행을 다녀온다. 공부는 뒷전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 유도를 위해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이 필수다. 수업 중간이라도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학생들에게는 살짝 낯선 풍경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생들은 의사 표현이 분명했다.


첫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께 수업 방식과 시험에 대해 질문했다. 수업은 진도 빼기에 급급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하고, 시험은 맞고 틀리는 것을 떠나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는 책을 찾아 답을 작성하는 오픈북 형식의 형태였고, 책을 봐도 찾을 수 없을 경우엔 교수님께 질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국에서 오픈북 시험은 '책을 봐도 풀 수 없는 문제들만 냈기 때문에 너에게 책 찾는 것을 허하노라.' 같은 의미인데, 미국은 전혀 달랐다. 경쟁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국내 총생산 기준 전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은 세계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를 선도하는 나라다. 총면적 기준 세 번째로 넓은 국가이자,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는 다문화 국가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느꼈던 문화적 차이는 여유가 넘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거리에서는 사람들에게 여유가 느껴졌다.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건물을 오고 갈 때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잡아주거나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등 사소한 배려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들었다.


수업을 마친 후 점심시간. 학생식당에서 선택한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샌드위치를 먹기로 결정했다. 재료가 정해져 있지 않고 직접 선택하는 것이 꽤 낯설었고, 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했다. 내가 가진 식권은 $8 까지만 free였기 때문에 $8 이내에서 골라야 했다. 물론 추가금을 내면 얼마든지 추가 주문이 가능하지만, 하필 그날 나는 지갑이 없었다.


생각 없이 맛있어 보이는 것을 다 추가하고 나니 당연하게도 $8이 넘고 말았다. 이미 추가한 재료는 뺄 수 없고, 포장이 다 된 상태의 샌드위치가 기다리고 있는데 나에게는 추가금을 낼 돈이 없었다. 바지 양쪽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동전 하나 나오지 않는 옷이 야속했고, 뒤이어 기다리는 학생들의 눈초리가 따가워 먹지도 않은 샌드위치가 목에 걸린 것 같았다.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옆에서 식사 중이던 다른 과 학생이 다가왔다.


"무슨 문제 있어?"

"내가 재료를 많이 추가해서 추가금액이 나왔는데, 지갑을 안 가져왔어."

"추가금이 얼마나 나왔는데? 내가 내줄게."

"정말? 고마워. 너 덕분에 살았어. 내가 내일 갚을게. 무슨 과야?"

"괜찮아,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너도 나처럼 누군가를 위해 추가금을 결제해 줘. 점심 맛있게 먹어!"


충격적이다. 이런 교과서 같은 인간이 존재하다니. 나는 모르는 학생이다. 대뜸 다가와 망설임 없이 추가금을 결제해 주고 쿨하게 떠나버린 그였다.


한국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학생을 만났다면 나는 쿨하게 추가금을 결제했을까? 줄을 서 있던 상황이라면 계산이 밀리는 상황에 짜증 났을 것이고, 식사 중이었다면 관심도 없었겠지. 오지랖의 민족이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은 애써 외면하지 않았나.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충분했던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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