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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ae Nov 23. 2021

D+4년 10개월

재미있는 이야기

1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엄마 재미있는 이야기 써~”

재미있는 이야기란 어떤걸까. 한시간만 일을 하겠다고 컴퓨터를 꺼내 앉으니 회사일인지 물어왔다. 회사 일은 아니다. 그냥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꺼냈을 뿐이었다. 어떤 글을 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이는 회사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인지 상세히 물어왔다. 글자를 써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지. 아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그리고 가이드를 줬다.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아니지?” 가이드에는 조심스럽지만 확실한 경고도 있다.


슬프거나 무서운 이야기는 안된다. 처음 만나는 책이 너무 어두운 색이거나 유령 도깨비 같은 게 나오면 옆에 찰싹 붙였던 엉덩이를 급하게 떼어내고 가이드라인을 점검한다. “무서운거 아니지? 슬픈거야?”

“그럼~ 엄마 주황색 책도 슬픈 이야기는 없잖아.”

습관성 답변으로 자신있게 받아치고 나서야 지난 해 만든 책을 생각했다. 무섭거나 슬프지는 않지만, 재미있었을까.


책 리뷰  https://blog.naver.com/2yjyj/22223796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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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느새 우리 아빠 옆에 앉아 내 책을 설명하고 있다.

야심차게 500권 넘게 만들어놓고, 입고 서점을 못찾아 부엌 한켠을 창고 삼아 1년을 버티고 있다. 부득이 약소하게 운영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답변을 몇통 받다가 덩달아 내 마음도 약소해져버렸었다.


“네, 할아버지 엄마 주황색 책 많이 있어요. 그거 당근마켓에 팔면 그 걸 읽은 사람이 또 친구한테 전해주고 그렇게 다른나라 전 세계로 퍼질 거예요.”

그렇게 널리 퍼질 수 있다니. 아이의 마케팅 전략을 들으며, 지난 1년을 빠르게 반성한다. 정말 올해는 팔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전략가는 재빠르게 오늘 글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수영장을 갔다. 그중에 재미있었던 거를 이야기로 남긴다. 수영장에 미끄럼틀이 있는 건 신기하고 또 수영장의 시소를 타면 물이 올라갈 때마다 쏘인다. 그중에서 수영장에서 미끄럼 타는 게 제일 재미있었고, 동물 타는 것도 재밌었다. 동물 타고 미끄럼 타기도 했다. 제일 재밌었다.

핼러윈 이벤트를 받았다. 그 중에 젤리 받는 이벤트가 제일 좋았다. 물놀이도 재밌었다. 거기서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재밌었지만, 엄마는 안에 사람을 그려서 그 사람을 도은이가 안보여서 나는 사람을 옆에 그리지 않고, 앞에 그리지도 않고 옆에 내 이름만 썼다.

“오늘 거제도를 왔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아빠 에이미 타고 김포공항 국내선 타는 곳 까지 왔다. 그리고 국내선 타고 거제도 시내버스 타는 곳으로 왔다. 하얀색 버스를 타고, 옥포 터미널까지 와서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오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사백키로를 달려왔다. 시간은 다섯시간, 운전을 많이 했겠다. 힘들었겠다. 새차를 사가지고 왔다. 친환경 천연가스 차다. 안에 포장도 안뜯었다. 정말 웃겼다. 내일 드라이브 하고 비닐 제거 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아이의 이야기를 그대로 내리적는다. 아이의 말은 문장이 끝나는 “다”마다 보이지 않는 야무지고 작은 느낌표가 찍힌다.

거제도는 처음이었고, 아이와 둘이서 이렇게 먼 길도 처음이었다. 아이에게 우리 갈수 있겠지 라고 물어봤던 것 같다. 출발아침 나는 긴장해서 전날 늦게 자는 바람에 일어나는데 한참을 끙끙 거렸고, 아이는 이름을 부르자마자 용수철처럼 튕겨나왔다. “우리 비행기 타야지”

아이는 오는 길을 알뜰히도 기억하고 있었다. 거제도에 와서 만나기로 한 엄마아빠 여정까지.


아빠와 같이 왔으면 더 좋았겠다.
아침 먹은 이야기와 저녁 먹은 얘기 한다. 아침에 저녁에 똑 같은 식당에 가서 먹었다. 맛있었다. 나는 중간에 배가 아파서 그만 먹었다. 세식구랑 물을 같이 떠서 했다.


아이의 이야기는 제일 재미있었던 수영장에서, 가장 걱정했던 여행지까지 도착하는 길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먹은 저녁식사 이야기로 마무리를 향해가는 것 같다.

몽돌해변에서 돌을 던지며, “이 돌은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지”라고 말해서 나는 또 한참 돌도 보고 바다도 보구 우리 어린이도 보고.”


할머니 저 잠깐 밖에 좀 봐야겠어요. 이야기를 쓰려면 밖에좀 봐야하거든요.. 시 쓰는 건 엄청 힘든 일이거든요



우리가 같이 시를 읽은 적이 있던가. 아니 “시”라는 단어를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적이 있던가. 두돌? 어쩌면 세번 계절을 지날 때 까지는 아이가 하는말과 행동의 출처를 내가 알 수 있다고 생각 했지만, 작년에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그런건 불가능 하다는 걸 배우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어린이는 무려 “시”를 알고 있다. 그리고 시 쓰는게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도.



대단한 정보를 알아냈어. 달이 밝다 오늘 야경은. 달이 비춰서 바다가 투명색으로 보인다. 다리가 멀지만 예쁘다. 비행기도 하늘에 떠있다.
바다 다리에 색깔이 무지개 색깔이기도 해서 예쁘기도 하고. 다리색이 한가지 색이기도 하고 예쁘다.


빠르게 옮겨 적고 우리 모두 베란다로 나가 거가대교를 봤다. 아이의 말처럼 달이 밝았고, 달과 기다랗고 반짝이는 다리가 비치는 바다의 색은 이채로웠다. 검고 푸르다기 보다 아이 말처럼 투명했을까. 시를 쓰려면 밖을 잘 봐야한다.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아이가 글을 쓰라고 한음 한음 또박또박 읊어준 이야기를 옮겨 적으며 다시 써본다.

글을 쓰려면 밖을 잘 봐야 한다. 쓰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2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오늘은 배를 탔다. 배에서 돌을 설명해줬다. 거북이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배를 타니 돌아가는 시간이 좀 오래걸렸다. 오늘은 새로운 호텔로 옮겼다. 새 호텔은 주차장이 위로 좀 올라가야 있었다. 할아버지 차를 바꿨다. 그 차를 타고 새 호텔로 옮겼다. 새 호텔은 좋다. 오늘 새 호텔은 오늘이야기를 쓴 특별한 곳이다.



첫번째 숙소는 거제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리조트 였다.

그 리조트가 들어서며 섬의 북쪽이 다시 개발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키즈카페가 4개나 있는 거대한 마을이었다.

두번째 숙소는 아니었다. 임박해서 일정을 무리하게 늘리다 보니 좋은 숙소는 없었다. 무려’오아시스’라는 이름을 단 호텔이지만 우리가 받은 열쇠는 지방의 연립주택의 열쇠였다. 하지만 이제 이 곳은 ‘오늘이야기를 쓴 특별한 곳’이다.


“너무 좋은 시간이 되었으. 정말 아름다운 곳과 음.. 해금강 음.. 돌벽 아름다운 풍경에 너무 좋았고! 해금강을 에.. 나오면서 동백꽃굴. 아주 인상 깊으고 그.. 도은이랑 무슨 체험이지?

갯벌체험 한 게 너무 좋아.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아주 아름답고 할머니랑 우리 도은이랑

도은이 엄마랑 즐거운 하루 여행이 되었어요.”


아빠는 이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도 한마디 하라고 아이가 이야기 했던가 내가 했던가.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아마 엄마도 머릿속에 ‘오늘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와가지고 깜짝 놀랬어. 도은이랑 엄마랑 너무 좋은 숙소를 잡아놔서 이런데가 있나 했어. 경치도 좋지 숙소도 좋지. 풀장도 도은이랑 하는데 재미있었어. 할아버지가 못 오셔서 아쉬웠찌.”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엇박자 처럼 재빠르게 아이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었어요. 갯벌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 같아서 사진으로 남겼어요. 아빠한테도 보내줬어요. 갯벌체험이 재미있었는지 기억에 계속 남았네요. 조개를 잡았는데, 진짜 재밌는 하루 였어요.



이야기가 끝나는 걸까, 글을 받아 적다가 나도 소리내서 말하고 말았다.


“갯벌체험에서 조개를 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호미로 캐고 캐고 캐도, 조개가 나오지 않는거예요.”

“응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캐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깊은데 까지 많이 캤어요. 조개가 움직이는게 신기했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느닷없는 어린이의 감사 인사에 엄마가 화답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였어요”

그러니까 나의 엄마는 이제 할머니다. 다른 사람이 마무리 짓는데 아쉬웠을까.


조개 선물로 받은 것도 좋았어요. 오늘도 재밌는 하루 보냈어요. 조개도 맛있게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됐어요. 내일도 좋은 하루 되길 바라며 도은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 동백꽃도 예쁘고 사진찍은 것도 예뻤어요. 동백꽃이 겨울에 피는 건 신기했어요.


아빠가 여기까지 와서 바다의 금강산을 안보고 갈 수 없다고 나선 길인데, 아이는 가는 길 곳곳이 기억에 남았나보다. 배를타기 전에 지나가는 말로 이 반짝임은 잎들이 모두 동백나무라 추워지면 빨간 꽃이 예쁘게 핀다고 이야기 해줬는데 이야기를 접으려다. 아이가 기억하는 걸 가만히 다시 음미한다. 우리의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허수아비를 구경해서 정말 신나했어. 그리고 무슨 잔치하나보다 생각했어요. 할아버지 오늘 어땠어요? 오늘 나랑 놀아서 정말 행복했데.



“도은이가 뒤에서 노래하니까 가수인지 라디오인지 몰랐데.”

“할머니는 옛날에 우리 아빠가 쓰던 탈곡기가 있어서 너무 신기했어. 할아버지 정말 힘들게 하셔

가지고 엄청 힘들게 하셔서. 그렇게 살았는데”


하루가 저물고,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가는데 엄마와 아빠, 내 아이가 나누는 이야기는 오늘 일정을 나서던 가을들판으로 돌아간다.


어린이가 같이 못온 아빠 보내준다고 찍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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