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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May 07. 2022

사랑의 편지인가, 유언장인가.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장편, <소설가의 영화>를 보고.




0.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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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다시 말해 길수(김민희)가 잠자리에 들면서 갑작스레 변한 시공, 영화관이라는 장소에 다다르면서 시작되는 시퀀스에 매몰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끝내 그 시퀀스에서 벗어나는 데에 실패했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다소 파편화하여 글을 적어나간다. 이 글은 실패한 감상이자, 그럼에도 근래 너무 ‘내 글’을 쓰지 않았던 나의 몸부림이다.




<소설가의 영화>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1. 거칠게 기워진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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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소인 책방에서, 준희(이혜영)가 수화로 “날이 아직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라고 말하자, 영화는 곧장 차를 타고 어딘가에 도착한 준희를 비춘다. 이때부터 준희는 책방을 출발점으로 ‘실컷 다니기’ 시작한다. 다음 장소에서 준희는 박효진 감독(권해효)을 만나고, 박 감독에게 사용법을 배운 망원경으로 공원을 바라본다. 바로 다음 컷에선 공원에 도착한 준희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곳에서 만난 길수와 단편 영화 얘기를 나눈다. 그 뒤 공원에서 ‘음식 먹는 것’을 이야기하다가는 떡볶이집으로 이동한다. 영화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이동 과정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수화와 망원경 그리고 음식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장소-장소를 인공적으로 연결한다.




<소설가의 영화>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2.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여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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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책방에서 시작한 영화는, 떡볶이집까지 거쳐 이내 책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환적 여정을 담고 있다. 이런 여정 가운데에 흥미로운 대사들이 있다. 바로 “여기가 나중에 촬영할 때 쓸지 몰라서”, “이 길이 너무 예쁘지 않아? 여기서 찍어도 좋을 것 같다” 등 영화 촬영을 기약하는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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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씨네21에 실린 홍상수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을 돌아보자. 홍상수 감독은 “소형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즉흥적으로 찍고 편집해 둔 소품들이 있다, 이번 영화에 쓴 단편영화도 시나리오나 주제 없이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소설가의 영화>에 김민희와 이혜영의 캐스팅만 확정해둔 채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1~2년 전에 찍은 단편 영화가 생각나서, 해당 단편과 스토리가 있는 <소설가의 영화>를 놓고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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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앞서 “여기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라는 발언, 특히 단편영화에 등장하는 길 위에서 준희가 말한 대사는 발언 이후에 단편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단편을 예언하듯 호명하는 대사가 돼 버린다. 이는 이후 책방에서 준희가 술에 취한 채 막 던진 이야기가, 실제 길수가 겪었던 일과 동일하다는 상황과 고스란히 맞물리게 된다. 인위적인 장소 간 연결과 있을 수 없는 우연들, 그와 대비되는 자연스러운 배경, 이들은 영화 내에 공존한다. 그리고 <소설가의 영화>는 둘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실컷 돌아다닌’다.




<소설가의 영화>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3. 쓰고 싶었지만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 ‘경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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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등장하는 공간 외부-내부, 프레임 내부-외부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공간의 바깥에서 내부로 침투하는 준희의 동선이라든지, 떡볶이집 바깥에서 관찰하는 어린아이의 존재 그리고 그를 따라 화면 바깥으로 나가는 길수의 장면이라든지, 첫 등장에서 프레임 바깥에 있다가 호명되어 어쩔 수 없이 영화 내로 소환되는 박 감독이라든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직전 컷에서 존재가 호명된 세원(서영화)이나 길수라든지 등등... 특히 이걸 영화에서 가상 인물-실재 인물의 경계가 모호한 길수의 존재와 엮는다면 좀 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실패했다.




<소설가의 영화>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4. 연정의 편지, 혹은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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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에서는 프레임 바깥의 누군가가 끌려 들어온다. 바로 홍상수 감독 본인이다. 이전까지 본인의 영화에서 본인의 얼굴은 고사하고, 목소리조차 거의 비추지 않던 그가 (<강변호텔>의 오프닝 내레이션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준희의 영화 속에 본인의 목소리를 담았다. 핸드헬드로 거칠게 찍은 홈 비디오 형식의 해당 영화는 길수-김민희-와 촬영자-홍상수-가 “사랑해요”라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과 함께, 김민희의 모친으로 보이는 어느 장년~노년의 여성을 등장시킨다. 길수-김민희-가 꽃다발을 보며 “흑백인 게 아깝다”라는 말을 하자 촬영자는 “색깔로 찍으면 되죠”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내 컬러로 전환되며 화려한 색감의 꽃다발을, 길수-김민희-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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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영화’가 끝난 뒤, ‘소설가(준희)의 영화’의 크레딧인지 <소설가의 영화>(홍상수)의 크레딧인지 분간할 수 없는 엔딩 크레딧이 등장한다. 크레딧이 등장한 이후, 영화는 극장의 문을 열고 등장하는 길수의 모습을 비춘다(이때 카메라는 그 누구도 잡고 있지 않은 듯 미동조차 없이, 생명력 없는 시선으로 공간의 정중앙을 응시한다). 상영 종료 5분 전에 알람까지 맞춰둔다던 준희는 찾아오지 않았고, 영화관 프로그래머만 길수에게 ‘다른 분들은 옥상에 있을 것’이라 말을 전하는 데에 그친다. 이미 끝나버린 영화를 만든 이들이 옥상에 존재할 때, 가상의 인물-길수-인지 현실의 인물-김민희-인지 모호한 존재는 분리된 공간(옥상)에 있는 그들을 향해 찾아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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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영화>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세계로 출발한 엘리베이터 이후에 관객이 맞이하는 것은 불 켜진 현실 속 영화관이다. ‘작품 내 엘리베이터의 상승 -> 현실로의 복귀’로 이어지는 흐름은 길수의 시점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옥상)로 상승하는 이미지와,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는 감각과, 그리고 건강이 악화된 홍상수 감독의 개인사와 맞물리며 죽음을 연상시켰다. 홍상수는 언제든 본인의 이야기들(사생활, 작품에 대한 평가 등)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본인의 존재를 직접 끌어들인 적은 없었다. 그랬던 그가 거의 처음으로 죽음을 가시적으로 다뤘던 <강변호텔>에서 본인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하더니, 이번 <소설가의 영화> 속에서는 카메라를 든 1인칭 출연자로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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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는 <강변호텔>에서 본인을 투영한 것이 자명해 보이는 캐릭터 영환(기주봉)의 죽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다음, 눈물을 흘리며 잠드는 김민희의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소설가의 영화>에서, ‘소설가의 영화’에서 홍상수는 1인칭으로 등장하며 김민희와 “사랑해요”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이때 결혼행진곡을 흥얼거리며, 꽃다발을 움켜쥔 김민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신부의 이미지다. <소설가의 영화>는 결국 결혼식을 치를 수 없는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정의 편지이자, 먼저 떠나게 될 사람으로서 미리 남긴 유언장이 아닐까.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과정이, 스스로의 존재를 작품 세계 속에 내비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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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시퀀스의 직전 장면은 술에 취해 잠든 길수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영화관, 그리고 ‘소설가의 영화’는 모두 길수의 꿈이었는가. ‘소설가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었는가. 길수의 꿈인가 김민희의 꿈인가. 김민희와 홍상수는 같은 꿈을 공유하는가. 모든 의문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단 하나의 사실, 김민희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찬 영화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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