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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Jul 14. 2022

당신은 이 영화의 결말을 알 수/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배드 럭 뱅잉>의 치밀하고 영리한 구조에 대하여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크린 위에 영화가 시작되면, 갑작스러운 광경이 관객을 강타한다. 바로 어떤 이성애 커플이 직접 찍은 섹스 홈비디오다. 예상 이상으로 격정적인 둘의 애무와 성교가 적나라하게 재생되더니, 절정에 달한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영화의 제목이 등장한다,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 거칠게 직역하면 '비운의 떡치기 또는 괴짜 포르노' 정도가 될 테다. 사실 섹스 비디오 속 여성은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름은 '에미', 직업은 교사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영화는 세 개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일방통행]과 2부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 그리고 3부 [실천과 빈정거림(시트콤)]으로. 1부에서는 루마니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주인공 '에미'와 그를 둘러싼 배경을 비춘다. 2부에서는 여러 개념을 조소와 함께 나열하며 그를 설명하는 클립들이 거칠게 나열된다. 3부는 1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놓고 다양한 인물이 토론하며, 점점 분위기가 고조된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1부의 제목은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이란 표현은 1부에서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정보의 일방통행, 그리고 이동의 일방통행. 1부에서는 영화의 핵심인 '교사 에미의 섹스 홈비디오 유출 사건'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되며, 에미의 입장에서만 해당 사건이 전달된다. 또 1부에서 에미는 계속 루마니아의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은 카메라의 시선들이었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대부분의 숏에서 에미가 등장하지만 중심에 위치하지는 않으며, 에미를 잠시 비춘 뒤 숏의 나머지 시간은 주변 공간을 비추는 데에 할애한다. 이렇게 공간을 비추는 과정에서 1부의 숏들은 길게 지속한다. 그 긴 호흡 동안 영화는 숏 내에 보이는 객체들과 관객에게 들리는 소리의 주체를 분리하며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입체적으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지만 화면 내에는 전혀 다른 건물이 비치는, 혹은 고양이끼리 싸우는 소리가 앙칼지게 들려 오지만 화면은 한 승용차를 비추고 있는 식이다. 이런 숏들이 계속 반복되며 루마니아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와중,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 에미의 사건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된다. 관객은 '사건에 대한 설명 없이 왜 자꾸 이런 숏이 반복되는가?'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고, 이 의문은 2부와 3부를 거치며 점차 해소된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2부,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으로 넘어가면 영화는 갑자기 돌변한다. '소사전'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키워드와 그에 대한 짧은 설명이 반복되며 수많은 키워드가 난잡하게 제공된다. 한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한 1~3개 정도의 짧은 영상 몽타주들이 키워드마다 제공되는데, 영화를 위해 촬영된 영상과 실제 영상이 뒤섞여 등장한다. 특히 키워드에 대한 설명은 전부 루마니아의 여러 면을 조소하는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의 정교회' 키워드에서는 파시스트 찬양 노래를 부르는 수녀들이 등장하는 실제 영상을 보여주며, "독재와 긴밀히 연결된 종교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부모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어린이, 여전히 팽배한 여성혐오적 인식, 루마니아의 가정 내 아동의 60%가 가정폭력을 경험한다는 사실, 루마니아군이 과거에 유대인을 학살했던 과거 등 2부는 루마니아의 수많은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1부와 2부는 관객들이 자칫 당황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1부에서는 카메라를 보며 "꽃에 물 한 번 줄라우?"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지나가고, 2부에서는 현실의 영상들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영화는 코로나 시국을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하며 현실을 더 가까이한다. 하지만 동시에 2부의 키워드 중 '진실'에서 "진실이 중요한 일이면 '난' 오히려 픽션을 택한다"라는 감독의 자의식 가득한 설명이 지나가기도 하며, 명료하게 인위적인 클립들을 삽입하며 가상의 이야기임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즉, <배드 럭 뱅잉>은 현실과 픽션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고, 도리어 둘을 몽타주하는 영화인 셈이다. 또한 1부가 루마니아의 공간이나 사람처럼 물리적인 요소를 소개하고 있다면, 2부는 루마니아의 여러 사상이나 사회적 이슈들을 비추며 정신적 요소를 소개한다. 현실-픽션에 이어, <배드 럭 뱅잉>은 루마니아의 (물리적인) 실체와 정신을 몽타주하는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이런 다층적인 몽타주 뒤에 변증법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영화의 3부, [실천과 빈정거림(시트콤)]이다. 유포된 에미의 섹스 비디오를 학교 학생들이 보게 됐고, 이에 반발심을 가진 학부모들이 "에미가 교사로서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3부의 주 흐름이다. 에미를 향한 다양하고도 저열한 폭력과 혐오가 학부모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며, 이때 오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1부와 2부, 특히 2부의 내용들이 ‘실천’으로써 활용된다. 그 과정에서 3부만의 특징적인 촬영이 등장하는데, 바로 (난폭한) 클로즈업이다. 1부의 촬영은 공간을 소개하기 위한 패닝 정도만이 활용됐고, 2부는 클립들의 몽타주뿐이었다. 하지만 3부에서는 카메라가 ‘빈정거리는’ 듯 여러 인물의 얼굴을 거침없이 클로즈업한다. 촬영이라는 폭력, 그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폭력적인) '클로즈업'이란 수단으로 갖은 폭력을 숨기지 않는 토론회의 얼굴들에 대응하는 것이다.


▲ <배드 럭 뱅잉> 스틸컷 ⓒ알토미디어

토론으로 고조되는 분위기를 지나 영화는 세 가지 결말을 보여준다. 에미가 교사로 남지만, 폭력적인 클로즈업을 계속 사용하며 결국 싸움으로 끝맺는 첫 번째 결말. 에미의 사임이 결정되자, 토론회에서 (1부의 숏들처럼) 화면 바깥으로 물러나는 에미를 비추며 끝나는 두 번째 결말. 마지막으로 에미가 ‘원더딜도우먼’이 되어 모두를 그물로 낚아 한 명씩 입에 거대 딜도를 쑤셔 넣는 세 번째 결말. 영화는 각 결말에 부제를 단다. 첫 번째 결말은 "이 영화는 농담"이라 말하고, 두 번째 결말은 "아주 잠시 당신의 시간을 뺏었다"라 말한다. 마지막 결말은 첫 번째처럼 "이 영화는 그냥 농담"이라 말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라고 덧붙인다. 이 영화를 현실로 남겨 지속할지, 픽션으로 마무리할지는 관객의 손에 달렸다.




※ 본 글에 대해 필자는 소정의 고료를 받았으며, 필자의 주관과 판단을 통해 작성한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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