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휴직인가?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고 한 달이 지났다. 막상 휴직을 하면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새벽 운동을 다녀오면 아이들을 깨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을 거라는 첫째는 "5분만 더!" 를 외치고(그럴 거면 알람을 왜 맞추니?) 둘째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다를 떨고(일일히 대답해주기 정말 귀찮...), 셋째는 아예 자리를 옮겨 우리 방으로 와서 잠을 잔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 방은 엄청 춥다고 궁시렁 거린다(당연히 춥지. 우리 방은 아직도 보일러를 안 트니까...). 힘들게 아이들을 깨우면서 아침에 할 일을 확인 한다. 이부자리 잘 갰고, 양치질은 조금 불만족스럽지만 잘 했고, 학교 갈 준비... 공책 챙겼니? 연필 깎았니? 따로 준비해야 할 건 없니? 알림장에 이거 준비하라던데! 휴... 아침에 한 시간씩 달리는 것보다 아이들 뒤치닥거리가 더 힘들다. 아이들이 아침 루틴을 마치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아직 손이 가긴 하지만 얼추 스스로 할 일을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하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돌아오면 집안 일을 시작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집을 정리한 후 설거지를 한다. 주방 퇴근을 하면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커피를 내린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하루 중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짧은 자유를 느끼다가 문득 아내님은 혼자서 어떻게 이걸 다 해냈는지, 그리고 언제 공부하고 일까지 다 해냈는지 의문스러워질 때가 있다. 나는 벌써부터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아이들이 없는 자유로운 시간이 내가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4~5시간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제느 어느 정도 여유가 되어서 브런치 글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첫 번째 육아휴직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육아휴직 역시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해서 쓴 건 아니다. 오히려 첫 번째 때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육아휴직을 썼다. 사실 사직서를 먼저 냈다. 오랫동안 몸 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고, 익숙한 일에 적응하며 살기보다는 일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안정적인 급여, 익숙한 사람들과 일. 이렇게 힘든 시기에 굳이 회사를 나가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아내님을 빼고 말이다. 아내님은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사직서를 내라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내님의 믿음 덕분에 몇 달 정도는 쉬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로 결심했고, 그 수단으로 육아휴직을 택했다. 결국 육아휴직은 나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개인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면서도, 비록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4~5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 생각한다. 왜 그럴까?
우선 나를 위한 시간이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아빠나 엄마 중에 하루 24시간 중 자기 자신만을 위해 1시간이라도 가지는 사람이 드물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회사 업무와 회식, 모임과 집안 대소사, 그리고 육아를 하다보면 24시간도 부족하다. 자기자신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맘 편히 휴식을 가지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더 심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이미 녹초가 되었는데,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도 마무리 해야 한다. 아이를 재우고 시간을 조금 가져야지 하다가도 아이와 함께 잠들기 일쑤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후회하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를 돌본다. 그러면서 또 다짐한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 일찍 재우고 내 할 일 해야지!'
두번째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는 늘 늦게 아이를 데리러 간다. 허겁지겁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아이가 우리 아이다. 부모가 온 걸 보고 환하게 달려오는 아이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짠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를 어려워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전까지 늦게까지 늘봄을 맡기면 선생님들께서 다 캐어하고 놀이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안전한 공간에 머무는 수준에 불과하다. 선생님들도 많이 바쁘시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 한 두명과 어색하게 놀면서 오매불망 부모만 기다리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세번째는 아이들과 더 많이 눈을 맞추고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다보니 새벽 6시~6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했다. 아이들이 한창 꿈나라에 있을 때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일찍 퇴근하는 날에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 자는 모습보다 깨어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꼭 하는 일은,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꼭 안아주는 거다. 서로의 체온을 온전히 느끼며 아이들을 배웅한다. 가끔은 베란다 문을 열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불러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던 건, 아이들이 잠들기 전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우당탕 뛰쳐나와 나를 반겨줬던 일이다. 요즘은 내가 그러고 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돌아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 아이들을 안아준다. 그 순간만큼 서로간의 온기를 더 깊이 느끼며 연결되는 순간이 없는 거 같다.
비록 나를 위해 선택한 불순한 육아휴직이지만, 결국 아이들로 귀결된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더 많은 눈을 맞추고 사랑한다 말하고 가슴 가득 안아주어야겠다. 훗날 사소했던 이 순간도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