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라는 가장 강력한 습관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 쓰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 중 -
조선 시대에 '김득신'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기억력이 남들보다 한참이나 부족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중 재능이 있는 아이는 한 번을 가르치면 열을 알았지만, 김득신은 열을 가르쳐도 하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평범한 아이들도 천자문을 넘어 사서삼경 등 고등과목을 공부할 때 김득신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하지만 김득신은 그러지 않았다. 한 번 읽으면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현실에 낙담하기보다는 반복해서 책을 읽는 방법을 선택했다. 얼마나 책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알려주는 사례가 있는데 이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김득신이 가장 좋아했던 책은 "백이전"이었는데, 무려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열 번, 백 번도 아니고 11만 3천 번이다. 나 같으면 숫자를 11만 3천까지 세어보라고 해도 못한다고 했을 것이다.
김득신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점을 메우는 방법으로 노력을 택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큰 사람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까지 '노력의 대명사'로 이름을 남길 정도니 본받지 않을 수가 없다. 김득신도 그렇지만 그의 부모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의 부모님도 김득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있었을 터였지만, 그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를 격려하며 비록 시작은 느리더라도 꾸준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주었을 것이다. 절대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은 채 그저 아이를 믿고 그 옆을 든든히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런 부모님이 있었기에 김득신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책읽기에 매진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언제나 첫째에게 가려져 있었다.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열을 가르쳐도 하나를 이해하질 못했다. 아무리 알려주어도 동문서답을 하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둘째가 이뻐 보이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둘째에게 차별 아닌 차별을 하기도 한 거 같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별로 손 타는 일 없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던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웠다. 기본으로 짜증을 깔고 있었고, 악에 받친듯 대답하는 걸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런 아이를 바꾸기 위해 아내님과 함께 읽은 육아관련 서적만 해도 수십권은 될 거 같다. 그러다 ‘김득신’에 관한 동화책을 읽고 우리 부부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우리부터 생각을 바꾸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둘째를 더 믿고 응원해주기로 했다.
아이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하기
더 많이 안아주기
당연히 너도 할 수 있어! 라는 믿음 가지기
아내님과 함께 둘째를 조금 더 신경쓰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한 번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하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참을성 있게 알려주었다. 더이상 첫째와 비교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둘째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었다. 그러자 둘째가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의 말처럼, 마치 새가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어느 순간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장씩 연습하던 한글이 재미있다며 몇 장씩 더 풀기도 했고, 손가락으로 겨우 셈하던 것을 이제는 암산으로 제법 잘 계산하기도 한다. 둘째가 끝까지 푼 문지집이 하나씩 쌓여간다. 이제는 더 둘 곳이 없어 분리수거해 버렸지만, 쌓여가는 문제집을 볼 때마다 둘째의 성장을 실감하곤 했다.
성격 또한 많이 유순해졌다. 그렇다고 기본 베이스가 바뀐 건 아니다. ^^;; 여전히 나를 닮아 신경질적이고 급하지만 예전에 비해 차분해졌다. 열 번 화내고도 남을 상황에서 참고 예쁘게 말하는 둘째를 볼 때면 대견함과 함께 그동안 아이를 믿지 못한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고보면 아이는 이미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편견과 오해로 제대로 성장시켜주지 못한 불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은 작품을 만든 에니메이터가 자신의 딸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항상 우울하고 불안해 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아이가 밝고 긍정적으로 변하도록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서야 우울이나 불안 역시 인간이 가지는 기본 감정임을 깨달았고, 아이가 살아가는데 하등 불편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인사이드아웃이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둘째를 보면 나도 그 에니메이터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신경질적이고 화가 많은 반면 둘째의 장점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먹을 것이 있을 때 항상 내 몫을 떼어 놓고 기다리는 아이, 집 비밀번호를 누를 때면 가장 먼저 달려와 환하게 반겨주는 아이, 셋째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며 지켜주는 아이, 누구보다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인내할 줄 아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둘째다. 부족한 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고 사랑스럽고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아이라는 사실을 나는 왜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걸까?
아이들을 볼 때면 부족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늘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