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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24. 2024

평대리에는 소농로드가 있다.


단출하게 생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곱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셋만 남은 이들이 거기를 지키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던 일곱 청년이 있었다. 의기투합하여 패밀리처럼 활동을 하면서 몰려다녔다. 청년들이 무더기로 몰려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하던 일에 탄력이 붙자 노동을 하고 돈을 모아 의욕적으로 중국에 사업체를 꾸렸다. 오픈을 앞두고 의욕에 불타고 있던 무렵, 하필이면 코로나가 터졌다. 냉장고에 사둔 재료는 써보지도 못하고 5,000만 원이 그대로 녹아버렸다. 씁쓸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정착지를 찾기 위해 떠돌다가 만난 게 제주 평태리였다.      



3년 동안 감자농사를 지었건만 수확은 형편없었다. 물이 빠지지 않는 땅에 농사를 지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감자농사짓는 사람이 감자를 사 먹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여기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의 놀림과 조롱 속에 다행히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었다. 흔히 삼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제주도 원주민이다. 그는 낙심한 청년들에게 자신의 땅을 내어 주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집을 짓는 데도 기꺼이 나서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이는 그들이 제주 중에서도 평대리에 정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농사일이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물량이 적을 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생산량이 많아지자 인력 문제는 심각한 고민으로 등장했다. 육지도 마찬가지지만 제주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뭍과 달리 제주도는 인력이라고 해야 한정된 인원인데 수확철에는 다들 일손이 딸리기 마련이다.      



농산물은 생물이다. 시기를 놓치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심지어 제때를 놓치면 폐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인건비가 비싸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 농사를 지을 때만이 아니라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도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사람을 쓰는 데는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 말이다.      


그러나 소농로드팀이 농산물 수확과정에서 필요한 인건비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금전의 한계가 있었다. 자본력이 취약했던 이들은 좌절 대신에 이 위기를 뚫고 나갈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그 간절함이 통했을까! 전국에서 수확을 위해 기꺼이 오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인건비 대신에 수확 후 흑돼지 파티를 하는 것으로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농사꾼으로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그들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칸트의 식탁>이 그것이다. 우선 시골에 살면서 지인들과 대화하며 지식과 견문을 넓혀나간 칸트를 모델 삼아 살기로 했다. 그들이 인문학자들을 초청하여 해당 분야 강의를 듣고 소통을 즐기는 이유이다. 농사가 그들의 현실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터전이라면 인문학은 그들의 영혼을 살 찌우기 위한 터전이다. 이처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유지하는 한 그들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이들이 사는 지역인 구좌읍과 평대리는 감자와 당근이 유명하다. 전국에서 사용하는 당근의 70%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소농로드를 비롯하여 세화 곳곳에는 캐릭터화한 상품을 만날 수 있었다. 농사 외에 소농로드의 또 다른 부수입원은 식사와 차를 파는 카페이다. 그중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소농로드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삼은 야채를 기반으로 한 자연주의 채소커리이다.      


일단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메뉴는 세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주의 땅이 만들어낸 싱싱한 야채와 채소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만큼 일단 제품은 믿을 수 있다. 그들이 온라인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둔 밀키트를 선보인 것도 사람들이 진심을 믿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일이다.      



아직 걸음마에 불과한 소농로드 입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사업의 다각화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야 하고 내실화도 다져야 한다. 당연히 제품의 질도 소비자의 눈높이를 충족해야 하고 정체성도 확립해야 한다. 세 명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하여 뜻이 맞는 이들과 만나고 협업도 진행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소농로드가 사업을 시작한 게 작년이다. 현재 소농로드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세 청년들은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들의 꿈을 펼치기에 제주는 너무 좁다.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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