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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녕 Apr 27. 2019

두 달 간의 침대생활

엄마의 하루|설상가상의 나날들

한 번도 쳐 본 적 없는 중요한 시험을 기다리며 두 달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건 곤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앉아있질 못하니 5년 전에 끊은 책을 갑자기 우아하게 읽을 수도 없었고 앉아서는 흥얼대며 실컷 들었을 푸디토리움의 음악을 누워서 들으니 기분이 나빠졌다. 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건 세 번의 끼니 꼬박꼬박 챙기는 일과 워서 과일을 먹는 일뿐이었다. 장실도 가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서 볼 일을 보는 건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남자도 나와 덩달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루, 봄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산책도 갈 수 없었고 나와 함께 두 달을 누워 있어야 했다. 얼굴도 못 본 꼬마의 존재는 강렬했다.

매일매일 같이 누워있어주었던 하루, 봄이

그 남자가 그랬다.

"친정에 가면 안 돼?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아침에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는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그랬다. 자꾸 일어나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아니!! 애가 나온다고, 누워 있어야 된다고!!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그랬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고. 젊은 20대 시절 아기를 낳은 엄마는 이런 불상사를 아예 이해 못하는 것이다. 그저 노산인 탓뿐이었다. 그래, 나 서른여덟 살이다. 곧 마흔이야. 엄마가 마흔 때는 나를 중학교 보냈겠지만 난 이제 출산이라고. 전화를 끊고 다짐했다. 기필코 내가 누워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여기서 어찌 됐건 버텨야 한다. 병원에 누워 있을 순 없다. 그렇게 병원에서 호언장담한 며칠이 지나고 있었다.


24시간을 누워 지내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상 생활하는 많은 분들이 존경 스러울 따름이었다. 누워서 거래처 사장님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아프냐고 묻는 말에 꼬마가 나오려고 해서 누워있어요,라고 답했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말했다. 너 그럴 줄 알았어. 막달까지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 첨 봤다. 뭐야 그럴 줄 알았으면 얘기 좀 해주지, 왜 말 안 해줬어요. 처음이라 몰랐다.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말이다. 남들은 쉽게 애 낳길래 나도 아무 일 없이 낳을 수 있는 줄 알았다. 다들 그랬다, 해봐야 안다고. 그래. 이제야 알겠다. 젠장. 이런저런 일들을 누워서 하고 이 와중에 기필코 해야 하는 세금신고는 그 남자가 해주었다.


누워서 열흘 정도 지났을까. 검색하다 발견한 질투의 화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찌질한 연애담 정도로 느껴지던 드라마가 조정석의 유방암과 공효진이 선택한 뭣도 없는 조정석과의 미래가 처절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넌 조정석이랑 결혼하면 그냥 나 같은 미래가 있을 뿐이야. 좋아하지도 말라고. 이토록 처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왜지? 나 아줌마인가 보다. 드라마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4주가 지났고 검진일이 되었다. 병원에 엉금엉금 걸어서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앞으로 남은 4주 잘 버텨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원장님에게 말했다. 2주 후면 38주니까 그때 제왕절개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보았다. 원장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이유를 물었다. "저 빨리 출산하고 일하러 나가야 해요. 그리고 자연분만 너무 무서워요." 엄마 될 자격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차시며 어른에게 물어봐서 날을 받아오란다. 그 남자가 답했다. 날이요? 선생님 편한 날로 하면 되죠. 원장님은 버럭 하시며 말씀하셨다. 태어난 생시를 누가 그렇게 정하냐며 한심하다고 하셨다. 예... 둘은 머쓱하게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나 아기 낳을 날 좀 잡아봐. 엄마는 답했다. 애가 뭐 날 정한다고 나오냐? 아니 나 제왕 절개하려고. 왜 제왕 절개하려고? 무조건 자연분만해야 한다고.... 엄마도 원장님도 내 마음을 모른다.


한 달을 누워 있는 동안 무기력함에 찌들어 우울증은 나날이 심해졌고, 회사 직원들은 세 달간 무급 휴직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누워있는 두 달, 출산 후 세 달. 총 5달을 일을 하지 않고 직원들의 급여를 챙겨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일을 해야 공사비를 받아오고 그 공사비가 급여가 되는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 내가 없어도 두 달만 한번 해보면 어떻냐는 말에 직원은 수금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일로 회사를 마비시킨 무능력한 대표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조산을 하든지 말든지 나가서 돈을 받아오라는 건 미안하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직원의 가족의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만두어도 좋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현장이 미수 처리가 되며 모든 업체들이 나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시공사 대표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워있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한 업체는 나에게 누워서 전화를 받는다며 팔자가 좋단다. 슬픈 나날들이었다.  


일어나서 밖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꼬마의 존재가 미웠고 속상했다. 뱃속에서 상처되는 말들과  더러운 생각들을 오롯이 듣고 있는 꼬마가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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