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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녕 Apr 27. 2019

나도, 너도 태어나다.

엄마의 하루|처음이자 마지막일 기억

38주 1일이 되는 날. 새벽부터 분주히 준비해서 병원에 갔다. 오늘만은 전화를 꺼놓고 아무 생각 없이 있으리라. 엄마로 집중해보는 거라 다짐했다. 일. 일. 그놈의 일. 스트레스받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될 마음가짐은 당일 날조차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출근 인파와 함께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 내려서 병원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잘 버텼어. 오늘 끝내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에 후련한 마음이라니.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출산을 후련하다는 단어로 대체해버리고, 두 번째 입원이라 능숙하게 병실을 지정하고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대기실엔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동지들이 몇 있었다. 세상에 어제부터 입원해서 진통 중이란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의 선택이 옳은 거야. 역시 제왕 절개지. 수액을 맞고 수술 동의서를 썼다. 수술 동의서엔 죽을 수도있고 의료 사고가 날수도 습니다. 알겠으니 사인하자고했다. 긴장을 하니 갑자기 엄청나게 진통이 왔다. 진통이 와도 난 그간 참은거처럼 참고 제왕절개를 해야한다. 갑자기 자연분만은 불가하다. 마음의 준비는 아직도 안됐다. 예민해져 있는 찰나 부모님이 갑자기 대기실에 들이닥쳤다. 조용한 대기실에서 엄마는 말했다. 남들 다 잘 낳는데 왜 제왕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끝내 아쉬움 가득 한말을 남기고 나갔다. 그 남자를 불렀다. 엄마, 아빠 오빠가 불렀어? 오늘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예민한데 와서 저 말을 또 하는 거야? 그 남자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내가 왜 그 남자에게 뭐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출산이 임박한 예민한 여자다. 그리고 나는 11시에서 11시 반 사이에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오늘의 임무다.


아무튼 진통은 진통이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11시에 수술실에 입성했다. 11시 15분에 하반신 마취주사를 허리에 놓았다. 조용한 노래가 흐르고 있었고 간호사 4명과 마취과 선생님까지 5명이나 수술실에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노래를 흥얼댔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듣고싶은 노래를 신청해야 할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 이건 별일 아닌 거야. 미소가 떠올랐다. 마취과 선생님이 물었다. 첫째죠? 빨리 보고 싶겠어요.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아까 짜증 부린 엄마에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잠시 가다듬고 있는데 원장님이 20분에 수술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2분 후 아기를 보여줬다. 엥? 물에 젖은 아기는 엄청나게 못생겼다. 슬플 정도로 울고 있는 못생긴 저 아기가 나의 분신이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생후 4시간 후.


정신이 들었을 때 그 남자가 아기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말론 수술로 태어나서 그런지 또랑또랑하단다. 아픈 곳이 없어서 그것 역시 다행이었다. 내 몸도 괜찮은 듯 했다. 그리고 딱 세 시간 뒤 난 알게 되었다. 내가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세 시간 뒤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걷지를 못했다. 배는 누가 칼로 찌르는것처럼 타들어가고 다리는 경련이 계속 났다. 걷지를 못해 3박 4일의 마지막 날에야 아기를 보러 갈 수 있었다. 그 남자 말로는 옆방도 수술했다는데 엄청 빠르게 잘 걷는다고 했다. 그럴 리 없다. 엄청 아프다. 그 여자는 수술한 게 아닐 거다. 하지만 수술한 게 맞았다. 그 여자는  훗날 커피를 마시며 난 아기 낳는 게 체질인가 봐 라고 말하는 훌륭한 채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저 반대 방에 걷지 못하는 여자는 분명 죽을 고생을 한 것이다. 나보다 더 심한 몰골로 있는 저 여자는 진통을 있는 대로 하고 수술대에 오른 한번에 두번 출산을 겪은 불운의 케이스였다. 지안 엄마를 보며 난 그래도 나은 건가 라고 여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출산은 다시 할게 못된다.

모르는 한 번은 가능하다. 두 번은 못할 노릇이다.


재인,채아,지안이의 아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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