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아이들이 집어든 만화책 <흔한 남매>에 내뱉은 내 말은 결코 친절하달 수 없었다.
엄마 생각에는 꼭 필요하지만 아이들로서는 마냥 즐거워서 할 수만은 없는 미션들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이를 테면 영어책 청독이라든지 글쓰기 같은 것이 그렇다. 아이들이 성실히 해냈을 때 나는 한 달 단위로 당근을 제공한다. 다만 엄마의 권력으로 어느 정도의 제한은 있다. 너희들이 기꺼이 한 것에 대한 보상이지만 보상도 엄마 돈으로 주는 것 아니겠니. (다소 치사한 감이 없지 않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서 내가 둔 당근의 바운더리는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
되게 억울할 것도 없는 게, 요즘 서점은 별의 별것을 다 판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충분히 선택의 즐거움을 누릴 거다,라고 엄마는 믿는다. 딸내미는 덕질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아이돌그룹의 음반을 고르거나 웹툰 작가 지망생답게 만화책을 집는다. 더러는 청소년소설책을 고름으로써 엄마 마음의 고요와 가정의 평화를 선사한다. 쌍둥이아들 둘은 엄마의 속내나 안색 같은 건 관심 없다. 올곧게 종이접기 책 아니면 <흔한 남매>다.
<흔한 남매>. 애증의 만화책.
아이들 책 읽어주기에 공을 들였다. 아이들이 걸음마할 때부터, 아니 내가 출산 후 다시금 사람의 모습을 되찾았을 때부터. 시작부터 공을 들였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겠다. 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노는 행위가 내게 힐링이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제일이었다. 순전히 내가 책이 좋아한일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책육아'라는 무려 '육아 용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내게 해온 게 아이에게 되게 좋은 거였네?를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비로소 '공을 들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읽어주고 또 읽어주었다. 책을 가까이, 편하게 여길 수 있도록 애썼다.
첫째는 최근 사춘기를 맞으며 관심사가 분산되긴 했어도, 다행히 책 읽기는 즐기는 편이다.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책을 펴드는 아이를 본다. 저도 제 마음대로 안되고 둘쑥날쑥 올라오는 짜증를 책으로 가라앉힐 줄 알고 저를 위로하는 친구로 삼고 있으니, 그거면 되었다.
쌍둥이 아들 둘. 요 녀석들도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림책, 글책을 꽤 좋아했다. 몇 권씩 늘어놓고 보거나 엄마에게 몇 시간이고 읽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목에 쇠맛이 날지언정 신이 나서 읽었다. 성급하게 보람을 느낀 날들이었다.
이런 그들이 2학년 올라가면서다. <흔한 남매>의 맛에 빠져버린 것이.
하교 후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거나 누워 각자의 <흔한 남매>를 펴고 낄낄거리는 게 일상이다. 도서관에 가면 만화방으로 직진. 빌리는 책이 열 권이면 아홉 권이 <흔한 남매> 시리즈 되시겠다.
비단 얘네만 이러는 건 아닌가 보다. 도서관에 비치된 <흔한 남매>는 이미 수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코딱지 묻은 손때를 타서 너덜너덜하다. 만듦새가 튼튼하지는 않은지 자꾸만 낱장으로 뜯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우리 집 두 아이는 발견할 때마다 연신 사서선생님에게 달려가 찢어진 부분을 내보이느라 바쁘다.
그나마도 인기 폭발이라 늘 대출 중이다. 도서 예약이라는 것을 엄마와 같이 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라고, 어느 결에 스스로 도서 예약까지 하고 있는 두 아이를 본다. 낯설다, 너네?
안다, 나도.
평소 나무늘보 같은 두 아이가 드물게 반짝임을 보이는 것이 <흔한 남매> 덕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엄마는 영 마뜩치가 않다. 그 적극성과 주도성 말이지, 정녕 <흔한 남매>를 위해서 여야겠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내게, 익숙하게 접착 작업을 하던 사서 선생님은 '그 마음 다 압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와중에 몇 번 도서 예약을 한 아이들이 지쳤다는 듯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몇 권 몇 권은 만날 없어요. 이거 사 주세요!"
그래. 눈치 없는 게 매력이지. 이래도 너네는 귀엽구나.
쉽게 얻게 할 수는 없다. (흥)
나의 심술을 살짝쿵 비틀어 기회로 이용하기로 했다. 미션의 당근으로 활용하였고, 그 결과로 <흔한 남매> 신간이 우리 집에 차곡차곡 들어왔다.
역시 보상으로 얻은 14권을 낄낄거리며 읽고 있던 둘째가 어느 날 외쳤다.
"엄마, 내일 간식으로 떡꼬치 만들어주세요!"
엄마가 뜻드미지근해 할 새도 없이 아이는 책을 안고 달려온다. "으뜸이 레시피가 있어요."
해당 페이지를 내 눈앞에 들이미는 통에 외면할 수도 없다.
흠. 할 만 한데?
"오케. 내일 간식으로 해 주지!"
"와. 엄마 최고!"
제목도 귀여운 '요리 금손 으뜸이의 시크릿 레시피'.
소질은 없으나 정성과 사랑이 전부인 나.
으뜸이에게 간식 레시피를 배워본다.
찬물에 10분 불린다.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는다. 떡을 나무꼬치에 꽂는다.
어라? 나무꼬치를 꽂으니 떡이 쩍 갈라진다. 이런. 이번엔 다른 떡을 들고 살살~ 꽂아본다. 살살 갈라지네.
무슨 일이지. 요리를 글로 배우는 사람 특, 레시피에 없는 상황에서 당황한다. 열심히 짱구를 굴려본다.
'냉동실에서 꺼낸 떡이라 그런가. 그래. 우리도 겨울에 갑자기 추워지면 피부가 마르고 얼어 갈라지고 터지잖아. 그럼 어떻게 해?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하고 바셀린을 바르고 면양말을 신지. 그래. 떡이 추워서 그런 거네. 따뜻하게 해 줘야지. 그거 있잖아, 햇볕정책.'
제법 논리적인 결과를 도출한 후, 냄비에 물을 담고 떡을 끓인다. 말랑말랑해졌는지 찔려보고, 떡을 건져냈다. 구제된 냉동 떡을 꼬치에 꽂아보니 비로소 스무스하게 꽂힌다.
하지만 순간 망설였다.
'여기서 다시 꼬치를 꽂아?'
하지만 나는 기특하게도 다음 단계를 내다본다. 팬에 구워야 할 텐데 꼬치를 꽂은 상태로는 고루고루 굽기 어려울 것이다. 꼬지를 꽂지 않고 조리를 하기로, 창의적인 결정을 내린다.
아니. 가만있어봐. 으뜸이 안 되겠네? 레시피를 머리로 쓰지 않고서야?
(뽐내기 용으로 괜히 추궁해 본다.)
냉동떡 구제를 위해 팔팔 끓여준다 . 그 사이 양념소스를 만든다.
양념소스 만들기 : 고추장과 다진 마늘, 진간장 반 스푼, 설탕 한 스푼, 물엿과 케첩 두 스푼, 물 세 스푼
섞어 섞어 섞어준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떡을 구워준다. 노릇하게 구워지면 키친타올에 건져 잠시 두며 기름을 빼준다.
캬. 기가 맥힌다. 양념소스고 뭐고 이대로만 먹어도 바삭하고 고소하고 다 하네. 자꾸자꾸 주워 먹게 된다.
아까 그 팬에 양념소스를 중불에 끓인 후 불을 끈다. 대기했던 구운 떡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아따 편하네.
꼬치를 끼우지 않고 조리한 후, 양념을 골고루 입은 떡에 나무 꼬치꼬치를 하나씩 꽂아준 게 신의 한 수였다, 고 자평한다.
왼쪽은 딸래미 몫이고, 오른쪽은 쌍둥이 몫이다. 하교하는 팀(!)별로 나누어 담고 기다린다.
아이들 반응은 뜨거웠다.
학교 앞 분식집보다, 휴게소보다 맛있다고 난리다. 엄마 이거 팔라고, 분식집 차리라는 거창한 제안까지 서슴지 않는다. 흠. 그 정도라고?
한창 진로 고민중인 열아홉 아니고 마흔줄의 여성은, 근래 조심스럽게 꿈꾸고 있던 몇몇의 길과는 사뭇 다른 방향의 길을 떠올리고 멈칫한다. 그러면서도역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는 열린 자세로 돌아서기에 이르렀다.
그럼 메뉴를 또 어떻게 구성해야 하나. 이미 머릿속에 가게 내부 인테리어 구상까지 간 엄마의 음흉함을 알아챈 걸까.
아이는 신이 나서 다음 메뉴를 주문한다.
"엄마, 다음에는 컵라면 볶음밥 해주세요!"
엄마의 마음을 갈대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흔한 남매> 으뜸이의 만만한 시크릿 레시피일까. 아니면, 그 '비밀스럽게 성근' 레시피가 야기한 더 어설픈 주부의 성취감일까. 혹은 아이들의 무한 칭찬을 먹고 자란 엄마의 자신감일까.
<흔한 남매>에 마음의 장벽을 쌓은 이유와 시간에 비하여 퍽 빠른 속도로 보들보들해진 걸 느끼면서도, 왜인지 너무 막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