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술은 맥주와 소주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맥주는 도수가 낮고 배가 부르다는 이유 하나로 ‘맥주가 무슨 술이냐? 소주 안주지.’라고 허세를 부리던 시절이었다. 20도가 채 안 되는 초록병의 희석식 소주를 앞에 두고 어른이 된 양 마구 떠들어 대던 스무 살 초반의 내가 있었다. 요즘에야 술을 먹을 때는 안주 고르는데 시간을 더 쓰지만, 가난뱅이 대학생 때는 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은 모두 다 안주로 활용했다. 끓이지 않은 컵라면, 편의점 빵, 심지어 옆 테이블에서 남긴 안주까지도 거침없이 탐했다. 제일 즐겨 먹었던 안주는 마트에서 파는 분말 수프였다. 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김양수 작가님의 웹툰 ‘생활의 참견’에서 술과 수프의 조합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가성비 대비 최고의 안주라고 생각한다. 당시 1,000원 남짓의 저렴한 값에, 양은 많아 4~5인분은 족히 되는 데다 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니 그보다 좋을 순 없었다. 아 그렇다고 소주와 어울리는 최고의 안주는 분말 수프라고 섣불리 결정짓긴 물론 이르다.
‘광수 생각’이라는 만화를 기억하시는지. 아마 9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라면 다들 알겠지만 당시 엄청나게 유행했던 신문 연재만화의 이름이다. 그 만화에 이런 내용이 실렸었다.
형, 소주 안주로 제일 좋은 게 뭔 줄 알아요?
그건 말이에요...김광석의 노래예요. 소주 안주로는 김광석 노래가 최고라고요.
2009년 겨울의 새벽, 갓 스물이던 나와 친구는 스물넷의 선배와 학교 앞 작은 일본식 선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늦은 시간 손님이라곤 우리 셋이 전부였다. 학교·정치·사회· 연애부터 별 볼 일 없는 농담까지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할 얘기도 더 없었고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졸음이 점점 몰려오던 찰나, ‘서른 즈음에’가 가게에 흘러나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침묵했다. 그리곤 조용히 만화 속 대사를 읊조리고는 말 그대로 김광석의 노래를 안주 삼아 한참을 소주를 마셨다. 아마도 그때부터 좋은 술집의 기준을 맛있는 안주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두게 된 것 같다. 한 번은 비좁은 자취방에 둘이 앉아 소주를 마셨는데, 안주는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뿐이었다. 나는 그 당시 심취해있던 샹송 싱어인 에디트 피아프를, 선배는 이승환을 들려주었다. 에디트 피아프의 ‘la vie en lose’, ‘sous le ciel paris’, ‘la foule’, ‘autumn leaves’, 이승환의 ‘텅 빈 안녕’,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천일동안’, ‘변해가는 그대’, ‘개미혁명’, ‘덩크슛’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이어진 밤이었다. 대화는 거의 없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며 술을 마셨던 그날 밤의 술자리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가장 낭만적이었던 술자리로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90년대를 수놓았던 수많은 가수 중에서도 특히 소주와 김광석이 회자되는 것은 아마 그의 노래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단순히 자주 듣던 대중가요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겠다.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한 음정 한 음정에 온 힘을 다해 꾹꾹 눌러 부르고 고음을 내지를 때의 힘을 들여 끌어올리는 창법, 어딘지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바이브레이션, 심지어 가요계에 소문난 주당이었던 그의 공연 실황을 보면 삑사리(?)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아득히 멀리 있어서 넋을 잃고 감탄하게 된다기보다는, 어딘지 친숙하고, 언제든지 편히 기대면서 따라 부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거기에 더해 싸구려 통기타 하나만 있다면 그 어떤 술자리에서도 자신이 김광석이 될 수 있었고 모두와 함께 부를 수 있었다. 김광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사람들이 느꼈던 슬픔과 공허함은 어쩌면 사랑하는 가수의 상실에 더하여, 어느 순간은 김광석이었던 자신의 상실과 단절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90년대 청춘을 보내지 못했던 나에게도 김광석은 단순한 가수 그 이상이지만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의 빈자리에 슬피 울지는 못 했다.
2014년 10월 27일. 가수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난 그를 참 좋아했고 많이 울었다. 밑에는 작년 이 무렵 늦은 밤 그를 추모하며 개인 SNS에 남긴 글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소심했고 자존감이 낮았고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꼴에 얕잡아 보이지 않겠다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도통 제멋대로였기에 친한 친구라곤 몇 명이 전부였다. 항상 교실에서 남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는데, 재생목록은 단 한 곡이 전부였다. ‘절망에 관하여’ 그의 노래였다. 어쩌다 그 노랠 알게 되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사춘기 음침한 소년에겐 분명 무척 멋진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엔 겉멋에 취해 주구장창 듣던 그의 음성에 이끌려, ‘Here I stand for you’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민물장어의 꿈’ 등의 노래를 들었을 때 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그가 넥스트의 보컬이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인 라젠카의 웅장한 오프닝 곡이 그의 작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들었을 때 난 주저 없이 락키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부에 찌들어 지쳐있던 고등학교 때 유일한 낙이라곤 모의고사치고 갔던 피씨방과 주말, 노래방에서 주구장창 부르던 ‘해에게서 소년에게’뿐이었다. 자칭 타칭 마왕이라 불리던 그이지만 지금도 10시가 넘으면 잠이 오는 내게 새벽 방송이던 고스(고스트스테이션)를 듣기란 도통 무리였고 지금도 마왕보단 그저 형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다.
그가 세상을 뜨던 그날, 양복도 없던 나는 상복이랍시고 검은색 옷을 갖춰 입고는 학교 앞 순댓국집에서 소주를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불멸에 관하여’니 ‘별의 시’니 ‘The hero’를 들어봤냐고 친구들과 떠들다가, 거나하게 취하고 형은 철학과를 나왔으니 철학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또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뭐니 내뱉다가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 지 5년, 난 아직도 그의 노래를 듣는다. 이제는 제법 배가 나오고 사회생활한답시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불멸 따위는 얘기하지 않지만 늦은 밤거리를 혼자 걸을 땐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느냐며 그의 노랠 흥얼거린다. 일면식은커녕 그는 나라는 팬이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형이라고 부른다 해서 기분 나빠할 사람이 아니란 것만은 잘 안다. 항상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로해주고 대변해주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형, 여전히 삶은 너무 힘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그리고 나 여전히 형의 노랠 들어요. 요즘 들어 더욱 형이 그리네요. 형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내 마음속에 절 응원해주고 계신 거죠? 날 믿으면서요. 형, 내 인생의 한 장면마다 날 위로해줘서 고마웠어요. 그곳에선 행복하구 편히 쉬세요. 2019년 10월 27일, 문경훈
그의 기일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김광석의 죽음에 슬퍼하던 선배들의 마음을 그제 서야 알았다. 덧붙여 소주 안주로는 김광석의 노래가 최고라는 말의 의미도. 이제 신해철을 생각하면,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리움과 슬픔에 도통 술을 안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부터 그는 나와 함께였다. 때로는 TV 시트콤 속 코믹한 대교주로, 때로는 전람회의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진보적인 음악을 시도했던 천재적인 음악가로, 때로는 묵직한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무대를 휘어잡던 밴드의 리더로, 또 때로는 우울한 청춘들을 위로해주던 인생의 선배로, 그는 언제나 내 영웅이었다. 그가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지금도 난 그의 노래에서 위안을 받곤 한다. 이제 나도 누군가 소주 안주로 제일 좋은 것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한다, 그건 신해철의 노래라고.
소주를 마실 때마다 신해철의 노래를 듣지는 않는다. 다만 신해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소주를 마신다. 오늘도 그의 노래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