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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Aug 22. 2023

시효 이야기3

 사례3

 지인의 부인에게서 급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카페나 사무실로 오라고 했더니 굳이 자기 집에서 봐야 한다는 거였다. 혼자 있는 부녀자 집에 혼자서 찾아가기가 멋쩍기도 하여 완곡히 거절을 표명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데도 부인은 한사코 상의할 게 있으니 꼭 혼자 집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인은 오래전 대형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 중이라 10년 가까이 연락이 끊어진 상태로 알고 있다. 참으로 난감했다.

 영문을 모르지만 어쨌든 외면만 할 수 없는 처지라 일단 찾아는 가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현관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가니 부인이 작은방으로 가자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불륜 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아뿔싸! 그가 바로 거기에 있다. 10년 가까이 보지 못하고 있던 지인이 작은방에 웅크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봉에 나도, 그도 놀랐다. 다행히 지인의 얼굴은 비교적 밝은 표정이다. 10년 가까이 숨어서 지하 생활을 해왔을 텐데 말이다. 어찌 된 일이냐고 경위를 물었다. 지인은 드디어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것이다. 10년이 넘어 자수하고 기소중지를 풀어 새 출발을 하려는데 절차를 알려달라는 거였다. 

 자초지종을 듣고서 사건의 개요를 확인한 후 시효를 정확히 계산해보았다. 웬걸, 이를 어쩌나. 큰일 났다. 아직 시효가 남아있다. 10년이 도달하려면 1년을 남겨놓고 있는데 10년을 넘긴 걸로 오산한 것이다. 시효의 개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자 지인과 배우자는 사색이 되었다. 몸 둘 바를 모른다. 내가 마치 불청객이 된 분위기다. 내가 시효를 막아놓고 있는 듯 괜히 겸연쩍어진다. 냉랭해진 분위기에 더는 머물 수 없어 서둘러 나왔다.  


 지인은 그로부터 1년을 더 숨어 있다가 시효가 만료되어 다행히(?) 처벌은 면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만난 그날부터 숨어 지낸 1년이 지나온 9년보다 몇 배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야말로‘일일이 여삼추’라 살이 쪽쪽 빠지고 불면증까지 도졌다고 한다. 

 수배된 자는 현실계에서는 무국적자나 다름없다. 시효 안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그의 집안에는 균열이 생기고 자신의 정신세계에도 심한 균열이 생긴다. 10년의 수배 생활이면 청춘의 핵심을 망가뜨리고 남는다. 시효를 향해 달리는 동안 수배자에게는 시간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 시효가 임박한 그에게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도망으로 구속은 면했으나 자신에게 갇혀 사니 숨이 막히는 시간의 연속이다. 자수하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감옥에서 해방된다. 10년 만의 만기출소다. 

 형사적 절차에서도 시효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시효를 잘못 건드리면 패가망신한다.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이해관계인에게 시효는 뒤끝을 보인다.      


 모든 권리에는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의 높이를 결정하는 건 법도,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시효이다. 권리마다 자기에게 맞는 높이의 자리를 가지고 그 권리를 누리는 자를 내려다본다. 그가 게으름을 피우고 잠이 들면 권리는 자리를 박차고 그를 떠난다. 이것은 고집이 아니다. 시효의 타고난 성향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말릴 수 없다. 시효를 넘긴 사건은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권리라는 영혼이 떠나버린 사건은 시체와 다름없다. 뒤늦게 사건을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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