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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va Sep 09. 2022

Web 3.0 기획자 커리어 피봇팅 일대기

②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 선택하는 사람.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트는 사람(=나)에게는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을 위해 그렇다 할 정량적 기준을 세우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의 업계에 발을 들일 땐 자연스레 흡수 되었고,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잡기엔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eponymflow/4


어쨌거나, 용기를 '영끌'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바탕을 두어 성취를 이루었던 순간들을 리마인드 하면서 기준을 잡았다. 새로운 업계는 명확하게 지향하는 바를 두고 있어야 했고, 이전에 내가 노력한 시간 만큼을 그곳에서도 쏟겠다는 의지를 지켜야 했으며, 그리고 내가 손닿는 그곳의 고객은  나의 솔루션이 실질적으로 도움되어 그에 응당하는 보상으로써 요금을 지급 받을  있어야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루,  ,  년을 살아가면  일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며 몰입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19가 만연하던 시기. 막연했지만 항상 늘 그러했듯 필요한 것을 찾아가며 일궈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작은 성취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내겐 부피보다 밀도가 중요했고, 그 '옹골참'을 기준으로 필요 여부가 결정 되곤 했다.


 



하물며 나 조차 하루 몇 시간 이상 인터넷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직장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집 밖을 나갔는데, 코로나19 시기엔 사회 전반적으로 원격 근무를 적극 권장했다. 그리고 원격 근무를 적용한 여러 회사에서는 이러한 근무 형태가 오히려 더 좋은 성과와 효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직업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그 자이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했고, 심지어 오프라인 공간을 브랜딩 하고 고객에게 실물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살자니 시간이 지날 수록 오프라인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좋아서,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다지던 내게 이런 사회의 흐름은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똑바로 쳐다봐야 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시기를 겪고 있는지, 우리는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지.


편리함과 효율성. 지방에 있는 본가에 오더라도 서울에 있는 동료들과 화상 채팅으로 회의할 수 있다. 이동하는 내 외적 상황이 업무에 지장가지 않는다. 음, 마치 '같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 혹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연인에게 느끼는 걸 예로 들 수 있겠나. 결국 개인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면 물리적 조건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한 번 편리함을 경험하면 이전의 생활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병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며, 사람은 상황에 맞게 그들을 적절히 분배하고 활용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가치를 마주하고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From 2005 to 2021, the number of global internet users
increased by 400%.



Statista, published 2022.07


Our World in data


4.9 billion people use the internet around the world. That’s 62% of the global population. However, not every country is created equal. In the United States, there are 307.34M internet users (93% of the population). While China has a much larger number (765M), that’s only 54.3% of the country’s entire population. - Zippia, published 2022.03


2011년 21.7억 명 수준이던 인터넷 사용자는 10년 사이 약 49억 명을 돌파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터넷과 우리의 삶은 뗄래야 떼어낼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의 양은 동량의, 어쩌면 더 세밀하게 분석되어 방대한 정보로 치환된다. 이에 파생된 명과 암은 이전부터 익히 드러난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방대한 정보들은, 누군가의 삶에 편리를 제공하는 거름과 동시에 그의 삶에 해를 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효율이란, 효과의 비율이다. 리소스 대비 효과를 얼마나 낼 수 있냐는 뜻이다. 요즘은 모두 효율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투자한 노력에 대한 결과물은 어디서나 어떻게든 나온다. 하지만 그 결과물의 옳음과 옹골참의 정도는 매우 천차만별이다. 그토록 만인이 좇는 효율에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나의 리소스를 '어디에' 쏟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 생활 양식이 정보로 치환되면, 어디로 흐르는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세세하고 많은 정보를 가질 수록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결국 권한이 집중된 주체에 의해 각종 사회적 범죄와 금융 위기 이슈가 일어나는 매일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왜 내가 Web3.0, 블록체인 업계로 들어오게된 계기냐, 충분히 물을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지금부터다.





블록체인을 접한 것은 NFT 라는 매개체가 있었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 인터넷에 올라온 그림으로만 보이는데, 그 그림이 몇 억원을 호가하는 모습을 보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대체 그게 뭔데, 이렇게까지 비싸게 판매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뭔지 알기 위해 각종 수업을 찾아 듣고, 디깅(digging)하며 나만의 정의를 만들어 나갔다. 우리는 디지털 사회에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그림과 글, 사진, 코드를 쉽게 접하곤 한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해당 부분을 캡처하거나 복사해서 나의 메모장에 저장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내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디지털 사회에서 NFT는 Copy & Paste에 대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신, 소유자 및 창작자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점점 발전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진짜'를 구분해내는 판별력은 사람들에게 나날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정보를 사용하는 사람과 소유자를 명확하게 나누기 위해 그 태그를 달아 놓자는 것이다. 소유자 말고는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특별히 암호화 된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암호화 된 증명서는 바로 블록체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블록체인은 분산화 작업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암호화 처리하는 데이터 베이스 기술이다. 단 1명이 조작 할 수 없도록 10개, 100개, 수 억개의 노드가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승인하고, 암호화 작업으로 원장(ledger)에 저장한다. 인터넷은 전통 사회와 금융의 한계를 표면상으로 여실히 드러냈다. 지속적으로, 급격히 발전한 인터넷은 그에 발맞춰 발달해 온 사용자의 수준을 담아내지 못하며 더 나은 기술에 대한 필요성을 확연하게 시사했다. 그릇이 작은데, 고봉밥을 쌓다가 무너지는 격이다. 그 보완책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온 기술이다.


Worldbank & Crypto.com


초록색 그래프는 90년 대 부터 발달한 인터넷 유저수 시계열 그래프이다. 재미있는 건, 14년도 부터 시작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증감 추세(파란색)가 이들과 결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요성을 느낀 이들이 서서히 넘어오고 있는 것이라 해석했다. 내가 살아갈 세상은 더 많은 시간이 인터넷으로 향할 것이 선명히 보이는데 기존 사회 생리라는 통념 하, 시작부터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내 결정 권한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다. 적어도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이 되어야 결정 권한을 빼앗겨도 억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사회에 대입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블록체인이었다.


완전 무결함(integrity)은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어딜가나 문제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해결 가능한 원자재가 있다면 언제든지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사회에서는 조금 어려워보였다. 아니, 뭔지 모를 무력감에 더이상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로부터 지금의 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되 여러모로 부족하니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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