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세이] 낙선했다고 안 좋은 글은 아니잖아요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후기 공모전에 수필과 포스터 분야로 지원했었다.
포스터는 붙었지만 수필은 낙선했다.
하지만 정성 들여 쓴 글이고 내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브런치에라도 남기려고 한다.
포스터라도 부디 좋은 결과 내기를!
20살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큰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하던 대학에 순탄히 들어가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고, 친구들과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꿈꿨다.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된 삶을 꾸릴 줄 알았다. 나에게 20년간 꿈꿔왔던 미래는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삶'이었다. 나에게 청년 생활이란 평범히, 열심히 산 결과로 편안함을 안겨주는 꿈이었다.
나의 25년 인생은 단 한 번도 평탄한 적이 없었다. 내가 걸음마도 떼지 못했을 때 우리 가정은 파탄 났다. 그럼에도 무너진 환경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치열하게 살았다. 밝은 미래를 꿈꾸며 견뎠다. 슬프게도 대학 합격과 함께 독립이 가능할 거라 기대했지만 사정이 어려워 등록금 납부를 못 해 입학 취소가 되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쓰나미처럼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이 밀려왔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묻고, 묻고, 또 묻으며 내가 없어진 채로 버텼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도망 나왔다. 나를 찾고,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나로 살기 위해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었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빠른 취업과 결혼을 선택했다. 가정이 꾸려지면 안정감이 생길 거로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친정도 없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팍팍한 생활이라 나 자신 말고는 의지할 게 없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든 날 중, 인터넷에 '청년기본소득' 광고가 떠 있었다. 공고된 조건엔 내가 부합하지만, 불안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다른 20대처럼 학교도 안 다니고,
취업도 했고, 자녀가 있는데 내가 청년인가?'
나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어디를 가도 애 엄마였다. 항상 어른 같아야 했고, 내 나이에 맞는 대접은커녕 20대 청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본소득 신청 공고 사항에 결혼했으면, 취직했으면, 자녀가 있으면 안 된다는 전제 조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게도 너무 기적같이 느껴졌다.
그동안 휴식과 취미는 사치로 생각했었다. 그렇게 삶에 치여 살던 나에게 청년 기본소득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느껴졌다. 난생처음으로 생계를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소비를 계획해보았다.
나는 환경에 압도되어 충분히 하지 못했던 공부와 독서를 하고 싶었다. 책 한 권에 거의 2만 원꼴이라 구매하는 게 쉽지 않았고 도서관 대여도 직장 생활 때문에 힘들었는데, 청년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사고 싶었던 책을 몽땅 샀다. 가사와 육아가 최선이었던 나는 그게 좋은 부모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독서를 시작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진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욱더 내면이 단단해지면서 아이들에게 목매는 엄마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그게 진짜 멋있는 부모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기에.
나는 이 경험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의 꿈을 가졌다. 아픔을 겪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며 더 나은 삶을 꿈꾸도록 도와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현재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실력을 기르려 노력 중인데, 기본소득 지원금이 아주 큰 서포터이자 든든한 기반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운이 좋았던건지, 너무 절묘한 순간에 나에게 크나큰 희망이 되었다.
청년기본소득의 목적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사업은 청년들이 취업난과 생활고에 치여 휘둘리지 않고, 잠시 쉬며 본연을 들여다보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기회의 브레이크'다. 청년기본소득은 청년의 아픔과 힘듦을 나라에서 공감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책이다. 기본소득의 개념은 물론, 추진까지 이어지는 건 매우 선진적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평등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이런 제도의 소중함을 깊이 느낀다. 훌륭하고 뜻깊은 경기도의 선물을 청년들이 모르고 지나치지 않길, 소중한 선물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