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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Jan 03. 2025

애플사이다의 본고장, 헤레포드 Hereford

영국 애플사이다 여행기 1. 헤레포드 애플사이다 축제 Applefest

애플사이다, 들어보셨나요?


한국에서는 일명 '애사비'로 더욱 알려져 있는 애플사이다. 

유럽에서 '사이다 (cider)'는 대체로 사과로 만든 과실주를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사이다 (cider)', 프랑스에서는 '시드르 (cidre)', 

스페인에서는 '시드라 (sidra)', 이탈리아에서는 '시드로 (sidro)' 라고 부른다.

(독일권 문화에서는 '아펠바인(apfelwein)'이라고 한다. 사과 와인이라는 뜻이지만 사이다와 같다)


사이다는 서양 술인 만큼 아직 한국에서는 용어정리가 조금 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이다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무알콜 청량음료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자리잡은 것이다. 

개항기 일본에 유럽의 애플사이다가 처음 들어오고 이를 로컬라이징 한 것이 현대 사이다의 모태가 된다. 

이제는 동양권에서 사이다는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맛의 대명사가 됐다.

게다가 '개운하다', '시원하다' 등 일종의 한국사회의 밈이 되어 본래 사이다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영국에 가기 전까지는 애플사이다가 정확히 어떤 술인지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애플사이다에 흠뻑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매거진에서는 1년간 영국에서 지내며 애플사이다를 경험했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전통 애플사이다로 유명한 지역 한 곳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영국의 헤레포드셔 Hertfordshire다. 

23년 10월 헤레포드에서 열렸던 사과주축제 applefest에 다녀오면서 나의 인생의 기로도 바뀌었던 것 같다. 첫번째 이야기는 그 행사의 첫날 이야기이다.




한국인에게는 헤레포드는 아주 생소한 지역임에 분명하다. 

유명한 축구팀도 없고, 유명한 관광지도 없다.

굳이 꼽자면 인근에 우스터소스이 개발된 우스터 Worcester와 아주 가깝다는 것...?

그리고 웨일즈로 건너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거점지역이라는 점.

그런 점에서 사실 교통편은 버스든 기차든 잘 되어있는 편이다.


헤레포드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고도가 높아 마치 강원도처럼 영국에서는 추운 지역이다.

기록에 따르면 헤레포드의 사과 역사는 과거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했을 5세기 경에 사과를 좋아했던 로마인들이 이곳에 사과를 심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랜 역사의 헤레포드에는 과수원이 무수히도 많으며, 굵직한 애플사이다 제조업체도 여럿 있다.

한창 사과수확이 시작되는 10월에는 ‘Big Apple’이라 불리는 애플사이다 축제가 열린다.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뚜벅이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도 지방도시인 만큼 외곽의 여행지를 들르려면 차량이 있는 것이 좋다.

더군다나 주말에는 버스가 휴무이기 때문에 더더욱 다니기 어렵다.

이 날이 처음으로 헤레포드에 갔었던 날인데 날씨가 좋아서 아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런던에서 첫 열차를 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두시쯤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첫날 행사인 Perry day에 참석하기 위해 헤레포드 코트야드로 향했다.



처음에는 사과축제라고 하기에 우리나라 지역축제를 떠올렸다.

왜 한국 축제들은 토픽은 다르지만 컨셉은 대동소이하지 않던가.

커다란 무대를 중심으로 부스가 줄줄이 펼쳐져 있고 각종 체험과 먹거리, 공연 등이 있는.

어쩌면 조금은 뻔한 그런 축제 말이다.


그런데 첫 행사인 
Perry day는 배로 만든 발효주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Perry란 배로 만든 술을 뜻하는데, 영국의 오랜 역사를 가진 주종이다.

그럼에도 자국 내에서 인지도가 형편없이 낮아서 이들이 모여 이를 고취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입구에 전시된 배 종류만 20가지는 되어 보였다. 

배로 만든 술이라니! 

우리나라에는 배를 첨가물로 넣어 탁주를 만들거나 혹은 리큐르처럼 침출한 술은 종종 본 적 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많은 종류의 배가 있다고? 

우리나라 배 품종을 생각해보았지만 신고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무리 동양배, 서양배가 다르게 생겼다고 하지만 이정도로 다를 줄이야.

대부분 품종은 사이즈가 무척 작고 볼품없어 보여 먹는 과실로의 가치는 없어보였다. 

한국에서는 이런 배들은 경매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도태될 텐데 말이다.



세미나에는 이 지역의 사이더리 (cidery, 사이다를 만드는 곳) 오너들이 총출동한 것처럼 보였다. 

영국 애플사이다의 대부 톰 올리버부터 리틀 포모나, 유명한 사이다 팟캐스트 진행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미나 동안에 일곱종의 페리를 맛볼 수 있었다. 

식혜처럼 부드러운 베이지 컬러에 어떤 건 희뿌옇고, 어떤 건 투명했다. 

향은 마치 한국의 전통 약주처럼 달콤한 알곡의 풍미가 났다. 

어떤 건 파인애플처럼 열대과일 풍미에 곡물 향이 더해졌는데 꼭 희석한 고량주 같았다. 

발효 냄새가 무척 심한 것도 있었다.


마치 와인처럼 어떤 과수원에서 어느 품종을 어느 해에 만들었는지 라벨에 기재해두었다.

이들은 대부분 전통 애플사이다의 문화와 가치를 고수하는 메이커들로서 일종의 '내추럴방식'을 추구한다.

이들은 '내추럴방식'의 가장 핵심은 품종다양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똑같아 보이지만 개성이 다른 배들마다 고유한 이름과 특징을 정리하고 이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에서도 서양배는 대부분 고급요리나 파이의 재료로 쓰이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부분 일부 품종만 주로 사용될 뿐 그 외 품종은 도태되곤 했다.

그냥 먹기에는 너무 쓰거나 떫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러한 품종을 가져다가 술을 담궈 먹었던 것이다.


ㅇㅡㄹ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이더리 견학을 한 차례 다녀왔을 뿐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의 모든 페리가 오로지 자연 효모를 이용한 자연발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어떤건 심지어 유기농 인증까지 받은 술이었다.

다시금 한국에서 경험했던 나의 백데이터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이러한 과실주는 본 적이 없었다. 


와인보다는 알코올이 낮지만 맥주보다는 조금 높고, 

어떤건 탄산이 있어 청량한데 어떤건 스틸 형태의 알 수 없는 술 .

어떤 점에서는 와인 같지만 어떤 점에서는 맥주같은 그 중간 어디께 있는 술.

당시 나는 와인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세미나가 끝난 이후로 사이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맥주를 시작으로 전통주, 위스키에 이어서 나의 흥미가 과실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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