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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13. 2024

책이 말을 걸어올 때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정지아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3년 어느 추운 겨울날, 가장 춥고 아픈 내 인생에 말을 걸어왔다. 나는 퇴사 후 직장동료였던 현진언니와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가졌다. 현진언니는 작년에 아버지를 보내고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너무 와닿아 나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었다. 또한 이 책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시작한 독서모임 ‘독토리’에 첫 모임 첫 책이었다.   

   

나는 정지아 작가를 몰랐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제목을 보면서 아버지가 무엇으로 해방이 될까 하면서 첫 페이지를 읽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된다. ‘죽음이 아버지를 해방시켰다’ 주인공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했다는 모순덩어리의 이야기가 우울한 내 삶에는 다가오지 못했다. 하지만 책표지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이 소설을 2023년 1월에 한번, 6월에 한번, 11월에 한번, 2024년 10월에 한번, 나는 네 번 완독 했다. 이 책은 내 첫 번째 인생소설책이다. 2023년 1월에 읽었을 때 평점은 3점이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밌고 술술 잘 읽히는 책,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다. 나름 진지한 인생을 살고 있던 나는 소설에 흥미가 없었다. 정지아 작가님의 찰진 문장력은 내가 구례 장례식장에 와 있는 것처럼 현실감 있는 내용과 무의식 속에 묻었던 나의 과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처음 시작한 독서동아리 활동에 2023년 ‘한 책 읽기’에 선정도서였다. 6월에는 ‘먼데이독토’에서 독서토론을 하게 되어 두 번째로 읽었다. 이때 평점은 4점이 되었다. 책의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인지 소설의 인물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특별하지 않지만 평범한 인물들이 주는 고단한 삶에 대한 우리의 모습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또 한 번 정지아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었다. 주인공 고아리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아빠도 술을 좋아하셨는데, 유별난 구석이 많고 독특한 분이셨다고 손녀들에게 너무나 다정한 할아버지였다고.      


2023년 10월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아빠는 생전에 애주가셨다. 그런 아빠가 10월 14일 와인데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빠는 와인의 향기처럼 추억의 향기가 되어 나에게 그리움이 되었다. 경우 바르고 똑똑한 아버지는 녹록하지 않았던 인생을 술을 벗 삼아 고단한 삶을 달랬다. 나도 주인공처럼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오랜 인연들을 만나고 보았다. 지금 나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p.163) 인연들도 만났다. 아버지는 갔지만 인연은 남았다. 우리 삼 남매에게 가족의 죽음은 아버지가 처음이었다. 언니가 나에게 장례절차에 대해 어떻게 잘 알고 처리하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장례식장면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나는 이 소설로 아버지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를 벽제에 모신 그날은 햇살이 따뜻하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빠가 우리에게 “나 먼저 갈게, 잘 있어.”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14년 동안 지병으로 투석을 해야 했다. 아빠의 소원대로 아빠는 잠드신 것처럼 평안하게 하늘로 가셨다.   

   

나는 11월에 ‘한 달한 편’ 서평모임을 시작했다. 서평모임 첫 책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뜻하지 않게 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았다. 이런 내용이, 이런 문장이 있었다니 필사를 하고 책의 구조와 인물들의 마음까지 보았다. 

작가의 말처럼 “아버지 가고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쩌겠어요”하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에 목 놓아 울었다. 정지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상실에 대한 슬픔을 “떡집 언니의 끊여 온 전복죽처럼 뽀땃해지는 느낌”(p.191)으로 위로해 주었다.      


나는 브런치에 나의 첫 글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책이야기로 선정했다. 

유별난 구석이 있고 독특한 분이셨지만 자애롭고 선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글을 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에게 상실의 아픔을 어루만져 쓰다듬어 준다. 엄하고 고집불통 아버지가 아닌 다정했던 아버지로 부활하게 한다. 책을 통해 나는 기억 속에 아버지를 만난다. 오늘은 아버지의 첫 기일이다. 그날처럼 오늘도 하늘은 푸르르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구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뽀땃하게 안아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서평으로 시작으로 10일 동안 이 책을 함께 읽으려고 한다. 

고통도 슬픔도 시간이 흘러가면 옅어진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쌓이면 우리는 성장한다. 

독자님들과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을 함께 읽으면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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