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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Sep 06. 2023

동물원에 갇힌 사람 둘

나는 '나는 솔로' 애시청자다. 이 TV 프로그램의 전신은 '짝'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짝'이 폐지되고 한참 지난 뒤 오늘날의 '나는 솔로'로 되살아났다. 내가 '나는 솔로'를 챙겨본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대뜸 '외롭구나!' 한다. 그 사람들의 기대에 맞는 대답을 해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니다. 외로워서 데이트 프로그램을 보는 거였다면 '나는 솔로'에 나오는 출연자들보다 더 이쁘고 잘난 사람들이 나오는 데이트 프로그램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솔로'만 본다.


내가 이 프로그램만 찾아서 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신기해서다. '나는 솔로'는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몇몇 출연자들은 '나는 솔로'에서 평생 남을 흑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신기하다고 말하는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을 뻔히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또 논란이 될만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면 가능한 건가 싶다가도 카메라를 든 사람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회의하게 된다. 게다가 이미 수차례 '나는 솔로'에 나온 출연자들 중 몇몇이 크게 논란이 됐었다. 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걸 보면 흑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마땅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특정 출연자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혹시 전문 연기자들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 방송에도, 늘 그렇듯 부정적인 의미로 화제가 된 출연자가 있다. 나는 요즘 이 출연자가 했던 말을 매일 생각한다. 그 출연자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다. 버젓이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에도 타인을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분이 했던 말 중에 가장 자주 생각나는 말은 마음에 드는 상대편에게 했던 말, "내가 성격이 좀 세서 힘들죠?"다. 상대방은 그런 모습마저도 귀엽다고 말한다. 사랑의 묘약에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언젠가는 그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 순간이 왔을 때도 성격이 센 사람이 내뱉는 말을 듣고서 귀엽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출연자가 스스로 성격에 세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예 폭주해 버리는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성격이 센 사람과 정말 맞지 않다. 성격이 센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결국 싸우게 된다. 성격이 센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뭐든 자기에게 맞추길 기대한다. 그러나 이곳은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다.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은 이기적이다. 이기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기심을 드러내면 추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이 싫다.


몇 달 전 어떤 분도 내게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었다. 나는 몇 달째 그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매번 이해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한다. 결국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됐고, 나중에 그 사람을 내가 쓸 소설에 출연시켜 망신을 주기 위해 그 사람이 가진 특징들에 대해 메모를 남기고 있다. 그분은 성격이 세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는 게 스트레스였고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그때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면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도 '나는 솔로'에 나온 출연자처럼 자기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게 내뱉었다. 참으로 끔찍한 사람이다. 스스로 성격이 세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지만 결국 그 성격대로 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 사람은 마흔이 넘었는데, 자기 성격에 대해 인지하고 또 그런 성격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기 성격을 조금씩 다듬어가야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기 성격대로 살고야 마는 그분을 떠올리며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이 했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현재 '나는 솔로'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화제가 되고 있는 출연자를 알고 나서는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됐다. 자기 성격이 어떤지 걸 알면서도 왜 그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싫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신기해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서 관찰하게 된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맹수들을 보는 기분이다.


동물원에 갇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회생활을 할 때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볼 것이라 예상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성격을 다듬을 필요성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을 텐데 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까. 스스로 성격이 세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입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그들이 불쌍하다. 나는 불행한 그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면서도 그 불행에 대한 통제권을 자꾸만 잃어버리는 그들이 너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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