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카들은 나를 삼촌이라 부르지만 실은 '외삼촌'이다. 몇 번 삼촌이 아니라 외삼촌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외삼촌보다 삼촌이 더 부르기 편한가 보다. 외삼촌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조카들에게 유일무이한 외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고모, 삼촌, 이모가 여럿이지만 외삼촌만큼은 딱 한 명뿐이다. 한 명뿐이라고 하니까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다. 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외삼촌은 조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을 자주 한다.
일단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외삼촌'으로 컨셉을 정했다. 너무 거창한가......? 외삼촌의 얄팍한 지식으로 판단할 때, 미래 세대는 현 세대보다 더욱 팍팍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는다면 나는 이게 좋다고 이쪽으로, 저게 좋다고 저쪽으로 휩쓸리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겠다. 자기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워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 건 다 큰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계속해서 연습해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습할 것인가? 아직 아이들이 어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 즉 딜레마에 대해 고민할 줄 알아야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고 믿는다. '거짓말'을 예로 들고 싶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물으면 모두가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들 입장에서도 아이들이 거짓말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곧 알게 된다. 때때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는걸.
아이들이 거짓말이 나쁘다고 말하면 난 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예시로, 사냥꾼과 사슴의 이야기다. 사냥꾼이 사슴을 쫓고 있다. 사슴은 오두막 주인인 나에게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사슴을 숨겨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이 도착했다. 사냥꾼이 사슴이 어디로 갔는지 묻는다. 이때 나는 사냥꾼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슴을 살리기 위해 사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거짓말하지 않으려 사슴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거짓말하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이때 '거짓말은 나쁘다면서?" 하고 물으면 아이들 동공에 지진이 난다.(이미 해봤다....ㅋㅋ)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른조차도 시원스레 말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삼촌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 대답은 필시 아이들은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야 할 혼란이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해서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언제까지나 회피할 수 없다. 이는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삼촌으로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배고픈 소크라테스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이다.
2.
다시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볼까 생각 중이다. 무슨 컨텐츠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인스타툰(인스타그램+웹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을 잘 그려서라기보다는 어쩐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여러 유명 인스타툰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인스타툰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들이 모두 귀엽다는 점이다. 선이 굵지 않고 둥글둥글, 동글동글한 인상을 갖고 있다. 주인공은 토끼, 햄스터, 곰 등 동물인 경우가 많다. 아마 이들이 주인공이 된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귀엽기 때문일 것이다. 난 어떤 주인공을 선택할까 생각하다가, '외삼촌툰'이라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외삼촌은 안 귀엽지만 조카들은 귀엽다. 이거 될 것 같다. 어린 조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려낸다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서윤이에게 나의 포부를 밝힌 적이 있었다.
"서윤아, 삼촌한테 계획이 있어."
"뭐야?"
"삼촌 이제 만화 그리려구."
"뭘 그릴 건데?"
"너희들이랑 있었던 이야기!"
"그럼 삼촌 우리랑 매일 놀아주는 거야?"
"?"
그 대화를 끝으로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3.
어른의 놀이와 아이들의 놀이는 정말 다르다. 외삼촌은 이불 덮고 누워서 핸드폰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반면, 아이들은 '함께' 움직여야 재밌다. 조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피구.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 피구란 게 보통 생각하는 피구와 다르다. 학창 시절에 했던 피구를 떠올려보면 공을 맞으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하지만 조카들의 피구는 다르다. 머리를 맞으면 탈락이 아니다. 또 공을 잡으면 공격권이 넘어갔던 것과는 달리 공을 잡아도 탈락이다. 그러니까 조카들의 피구는 무조건 공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또 중요한 사실은 이 피구에는 끝이 없다는 거다.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고 꺄르르 꺄르르 웃으며 공을 피한다...... 재밌니? 정말 재밌는 거니? 언제까지 재밌는 거니??? 아이들의 재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삼촌은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
외삼촌은 급기야 선풍기 타임을 요청했다. 잠깐 땀 좀 식힐 겸 쉬자는 거다. 아이들은 외삼촌을 크게 봐줬다는 듯 못내 동의하고 선풍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서준이 이 쪼그마한 게 체력이 남아도는지 공을 벽에 던지고 난리가 났다. 그러다 결국 사고를 냈다. 선풍이 앞에 앉아 서윤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외삼촌 머리에 공을 던진 거였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헉! 하는 순간에 안경테가 휘어져 버렸다. 서준이도 놀랐다. 화가 났지만 화를 내도 괜찮은 건지 헷갈렸다. 서준이도 자기가 잘못한 걸 알았는지 시무룩해져서는 "삼촌 미안해"했다. 서준이의 사과에 있던 화도 없어져 버렸지만 어쨌든 서준이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 했다. 다른 사람 머리에 공을 던지는 건 위험하다고 알려줬다. 서준이가 입을 삐쭉댔다. 혹여 울기라도 하면 대참사로 이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아이들은 아직 배우는 단계다. 나도 어렸을 때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했었을 거다. 그 행동은 고의적이라기보다는 부주의 혹은 몰라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아이들의 실수 혹은 잘못에 관대해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하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 선에서 알려줘야 할 건 알려줘야 한다.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