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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Aug 27. 2021

여기, 극장이 있습니다

작품이 계속되는 한 극장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견뎌온 시간.


“‘나의 첫 번째 영화관, 서울극장’은 앞으로도 관객과 함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과 사랑, 추억을 함께 나누는 친구 같은 극장이 되겠습니다.”



종로 일대를 영화 중심지로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서울극장이 올 8월을 끝으로 40여 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문화 산업 종사자들이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이 영화 산업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언젠가는 끝을 맺겠구나.’ 라는 말이 오가기는 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바란 이들은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종로구 일대를 대표하던 피카디리, 단성사 등의 옛 영화관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텨온 영화관이기에 상징처럼 남아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묵묵하게 자리하던 서울극장도 결국 팬데믹 앞에서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서울극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서울극장


영화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팬데믹을 공연산업이라고 피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팬데믹 이전에도 쉽지 않았던 소극장 운영은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더욱 오리무중에 빠졌다. 특히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기일수록 극장 운영은 어려움을 겪었고, 거리두기 방안 발표와 함께 수많은 공연들의 취소가 줄을 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확진자가 급증했던 3월, 4월은 공연건수가 200건을 넘지 못했으며, 재확산 시기인 9월 역시 300건을 넘지 못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 년의 동일 기간 동안은 1,200건이 넘는 공연들이 상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충격적인 숫자다. 수차례 대유행이 찾아오고 거리두기 방안이 바뀔 때마다 매출액 변동도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난해 4월 팬데믹 도래와 함께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던 소극장 나무와 물이 폐업을 선언했고, 이어 종로예술극장도 문을 닫았다. 지난 5월에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 수상소감으로 “연극은 가장 안전한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장내에 퍼지며 팬데믹에 빠진 연극인들의 심경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안전한 극장’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팬데믹 장기화 속 탈출구는 존재할까.



지금, 공연계는.

팬데믹 그 후 1년, 위태로울 것만 같았던 공연계는 2021년에 들어서 안정기를 맞이한 듯 보인다. 거리두기 방안에 속수무책이던 지난날과 달리,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발 빠르게 대안을 내놓는다. 거리두기 발표 후 2~3일, 길게는 일주일이 걸리던 공지사항들이 발표 직후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매출액도 회복세를 보인다. 지난해와 비교해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거리두기가 4단계에 돌입했음에도 공연계의 방역수칙 안정화, 백신의 활발한 보급과 공연장이 안전한 장소라는 인식 정립, 문화 생활을 향한 관심 증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전년 대비 관객수가 늘고 있다. 지난 7월의 경우 연극은 관객수가 전년 대비 22.17% 증가했으며, 뮤지컬은 40.9% 증가했다. 특히 클래식의 경우 공연 건수 증가 및 다양화와 함께 전년 대비 관객수가 88.29% 늘었고 매출액은 340%를 넘어섰다. 300석 미만 규모의 소극장 역시 차츰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올 7월 공연건수와 예매수가 늘면서 매출액도 덩달아 지난해보다 1억 원 가량 증가한 것. 소극장 뮤지컬인 '유진과 유진''해적''와일드 그레이' 등의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연극 '일리아드''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등 역시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며 소극장 활성화에 기여했다.


여기에 소극장을 위한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이루지고 있다. 지난 해 ‘2020 지역극장 모델 발굴 시범사업’을 선보인 서울문화재단은 올해도 지역극장 운영 모델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운영에 타격을 입은 극장을 지원하는 긴급지원 유형과 극장의 주도적 학습 및 역량강화 활동을 돕는 모델발굴 유형으로 나누어 서울 대학로 이외 지역에서 공연예술인이 소유 혹은 임대하여 운영하는 300석 미만 소극장을 선정해 공연예술과 지역이 만나는 활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한다.


왼쪽부터 뮤지컬 '해적', 뮤지컬 '유진과 유진' ⓒ 콘텐츠플래닝, 낭만바리케이트



팬데믹에 들어서며 공연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공연은 전쟁 중에도 계속 됐고, 역병이 창궐한 상황에도 지친 마음에 위로를 선사했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공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 극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공연이 있는 한 극장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절망으로 가득 찼던 2020년을 벗어나 상황에 맞게 변화한 2021년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음에도 더 나은 2022년을 그려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내일이 더 나은 내일이 될 거라는 희망을 그리는 중심에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공연예술인들과 관객이 있다.






editor. 나혜인


*해당 칼럼은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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