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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Sep 01. 2021

루프스테이션, 뮤지컬에서도 되네?

루프스테이션 열풍이 뮤지컬에도 상륙했다.

2017년 초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영상이 있다. 바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가수 헨리가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 일정한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곡 구성 방식 혹은 그러한 악기)을 활용해 마크 론슨의 ‘업타운 펑크(Uptown Funk)’를 연주한 영상. 헨리는 동일한 구간에 피아노, 바이올린, 손가락 스냅, 허밍 등을 쌓아 곡을 완성했고, 이는 대중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당시 루프스테이션 이펙터가 매체에 자주 비치지 않던 시기였기에 페달을 밟아 소리를 녹음한 뒤 그 위에 다른 소리를 얹는 행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후 헨리는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에서 루프스테이션을 활용한 음악을 다채롭게 선보였고, 싱어송라이터 스텔라장도 자신이 쓴 ‘YOLO’ 와 ‘Colors’를 루프스테이션으로 연주해 유튜브 조회수 180만 회를 넘기며 루프스테이션의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루프스테이션이 주목받고 단순한 음악 기법을 넘어 뮤지션의 음악적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 자리하면서,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심심찮게 보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2017년 공연된 창작집단 몬스터의 음악극 <맥베스-King’s choice>는 배우들의 대사에 음성변조를 더하는 방식으로 루프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장치로 사용했다.


음악극 <맥베스 -King’s Choice> ⓒ 창작집단몬스터


이어 지난 6월 19일부터 8월 22일까지 공연된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루프스테이션을 음악과 퍼포먼스 요소로 적극 활용했다.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은 양지해 음악감독. 대중음악을 작곡해온 싱어송라이터 안예은과 작업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한정된 소극장 뮤지컬 악기에서 벗어난 색다른 음악을 관객에게 선보이려 했다. 그의 바람이 통한 걸까. 낯선 시도는 작품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으로 자리했다.


무엇보다 루프스테이션이 소극장 무대에 걸맞은 이유는 ‘1인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소극장 특성상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나 밴드가 들어설 수 없어 루프를 이용하면 풍성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것. <유진과 유진> 역시 양지해 음악감독과 첼리스트로 구성된 2인조 라이브 밴드가 무대에 오르기 때문 에 한정적인 악기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프스테이션을 활용함으로써 단조로움을 깨고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했다. 여기에 녹음 마이크 앞에서 페트병을 구기고, 종이를 찢고,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리는 등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쌓으며 획기적인 멜로디를 완성했다. “‘작은유진’이 춤 연습실로 가는 길에 만나는 다양한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외부적인 소음들로 들릴 수 있지만, 구겨지고 찢기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고뇌에 찬 ‘작은유진’의 내면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랐고요. 또 대중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다 보니 대중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법을 사용해 장르 간의 연결점을 만들려 했죠.” 이처럼 악기가 아닌 다양한 소리들을 함께 섞어 인물의 감정선을 표현해 뮤지컬 음악이 갖는 메시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 또한 루프스테이션의 묘미다.


뮤지컬 <유진과 유진> ⓒ 낭만바리케이트


반면 위험 요소도 자리한다. 소리 녹음이 반복되기 때문에 녹음기가 켜진 순간 잡음이 들어가게 되면 재녹음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무대, 객석 등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기에 연주자는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실제로 <유진과 유진> 공연 당시 녹음을 진행하던 도중 무대 위 물건이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되기도 했다고. 다행히 박자에 맞춰 들어간 소음에 재녹음은 면했지만, 자칫 전체적인 흐름이 깨어질 수 있었기에 아찔한 경험이었다. “루프스테이션 연습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재녹음이었어요. 무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다른 소음이 들어갔을 때 재빠르게 다시 녹음하는 것을 많이 연습했죠. 배우들도 녹음하는 동안에는 다른 소음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하고 있어요. 연주자뿐만 아니라 배우 그리고 무대 밖과의 호흡도 중요한 기법이에요.” 그럼에도 루프스테이션을 통한 시도가 눈에 띄는 것은 소극장 뮤지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 좋은 멜로디를 넘어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신선한 들을 거리까지 더해진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기꺼이 반가움을 표현하지 않을까. 


오는 10월 개막하는 아카펠라 뮤지컬 <아일랜더>도 도전장 중앙에 루프스테이션을 적어 내민다. 음악은 뮤지컬 <광화문연가><베르나르다 알바><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맡았던 김성수 음악감독이 맡을 예정. 이 역시 루프스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음악을 선보여 뮤지컬 장르에 또 다른 길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editor. 나혜인


*해당 칼럼은 공연문화월간지 시어터플러스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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