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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in Jan 17. 2024

이희준이 온다

영화 ‘황야’(2024)를 반기며.

“코로나 이전에만 제작발표회를 하다가 (엔데믹 이후에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꿈같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무신경하게 타자를 치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우 이희준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영화 ‘오! 문희’(2021) 이후 가물가물해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고 ‘이, 희, 준’ 세 글자를 검색하니 아뿔싸! 2021년 ‘키마이라’가 마지막이다.


이희준은 흔히 말하는 다작 배우였다. 안방, 스크린 구분 없이 1년에 공개되는 작품만 2개가 기본이었고 장르도 다양했다. 진지한 얼굴도, 로맨틱한 얼굴도, 코믹한 얼굴도 가능한 배우니까 이곳저곳 러브콜이 많은 게 당연했다. 연극 무대부터 단역, 조연 닥치는 대로 연기했던 그는 단막극 인연으로 KBS 주말 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이하 넝굴당)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당시 ’넝굴당‘ 최고 시청률은 40%대, KBS 드라마 황금기를 이끈 작품 중 하나였다. 이희준은 방씨네 차녀 조윤희와 러브라인을 그리며 ‘천방커플’로 화제를 모았다. 당대 최고 가수 이수영의 뮤직비디오에 여러 차례 출연하고 ‘황금물고기’,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으로 널리 얼굴을 알린 조윤희의 상대역에 생소한 배우가 자리해 눈길을 끈 이유도 있지만 두 사람이 퍽이나 잘 어울려 여심을 흔드는 구석이 있었다. 대구식 사투리를 구사하는 남성미 진한 츤데레에 누군들 안 빠지겠는가.


‘넝굴당’ 이후 이희준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K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은 이견 없는 트로피를 건넸고, KBS 드라마 ‘전우치’로 단번에 안방 주연 배우로 성장했다. 김성수, 이한, 김태용, 장준환 등 배우라면 한 번쯤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들과도 스크린 위를 걸었다. 그중 2016년과 2017년은 그를 스타덤으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해였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21% 시청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가 누적 관객 수 723만명을 기록한 것. 이 시기 농구 선수 출신 모델 이혜정과 결혼에 골인하며 연예계 잉꼬부부 반열에 올랐다. 이혜정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내외조 기사가 쏟아졌고 2021년 절친 송중기의 부탁으로 성사된 ‘빈센조’ 부부 동반 출연 또한 뜨거운 감자였다. 좋은 배우, 좋은 남편. 이희준은 만인의 호감을 샀다. 그런 그가 작품에 나올 때마다 덩달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연기 하나는 뛰어난 배우니 어떤 역할을 맡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든든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이희준의 안방•스크린 나들이가 뚝 끊겼다. 캐스팅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지만 말 그대로 소식뿐이었다. 연극 무대도 올랐지만 대중에게 가닿기는 쉽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공개되지 못한 작품은 엔데믹 3년 차인 2024년에도 100여 편에 달한다. 2020년 촬영해 4년째 묵혀두고 있는 상업영화도 손에 꼽힌다. 이와 같은 경우 기획 단계까지 넉넉하게 잡으면 근 10년 빛을 못 본 셈이다.


이희준 역시 여러 작품을 장독대에 넣어둔 케이스다.  ’핸섬 가이즈‘는 2020년 9월 크랭크인해 같은 해 촬영을 마쳤고 ‘보고타’는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 해외 로케이션을 이어가며 1년 넘게 촬영했다. 두 작품 모두 2023년 개봉을 점쳤지만 한 해가 밀려 2024년 개봉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마저도 매해 들려온 소식이니 확답하기 어렵다. 장은 묵히면 깊은 맛이라도 날 텐데 영화는 묵히면 묵힐수록 관객에게 외면받기 쉬워져 투자배급 입장에선 골칫거리다. 출연한 배우의 심경은 어떻겠나. 애써 촬영한 작품이 기약 없이 창고 안을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흔한 예능, 인터뷰, 하다 못해 유튜브 콘텐츠도 출연할 명목이 없다.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연기뿐이거늘 변화한 세상엔 손 쓸 도리 없는 상실과 무력만 남아있다. 배우들은 아직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공개라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엔데믹과 함께 일상을 찾았다는 기사가 쏟아지는데 이들만 여즉 팬데믹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이희준에게는 ‘황야’ 제작보고회에 참여했던 이날이 꿈같고 소중할 테다. 공식 석상 일정을 조율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스타일리스트가 특별히 고른 의상을 착용한 뒤 단상에 올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마이크에 “안녕하세요. 배우 이희준입니다“라고 말하는 ‘일상이었던’ 일련의 행위들이.


이희준은 넷플릭스 영화 ‘황야’, 넷플렉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으로 OTT 플랫폼에 뛰어든다. 작품은 1월과 2월 연이어 공개될 예정이다. 다작 배우 이희준의 화려한 복귀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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