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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Nov 09. 2020

엄마의 사과

딸,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결혼을 앞둔 나는 엄마에게 자수를 배운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엄마랑 보내는 시간에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엄마에게 자수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의 유일한 취미, 바느질. 엄마의 작업실에서 엄마의 취미를 배우며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함께 수를 놓다 보면 엄마는 부쩍 옛날이야기를 한다. 어린 나에 관한 이야기. 아마도 엄마는 당신의 아기가 어느새 다 커서 결혼을 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나 보다. 설렘, 대견함, 그리고 아쉬움. 그날도 엄마는 내가 만든 바늘쌈지에 달아줄 자수용 단추를 고르다가 별안간 옛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알약만 한 단추, 그걸 보니 그 때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 아이고, 우리 유나 어렸을 때 알약을 못 먹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지금 와서 이래 생각해 보면 아(애)가 못 먹으면 빻아서 먹이든가 하면 되는데 내가 요령을 몰라가. 있잖아, 하루는 아가 약을 안 먹을라 카니까 내가 막 눈을 일케 부라리면서 '그냥 삼켜, 못 삼키면 혼나다?'카면서 겁을 줬는 거라. 아는 엄마가 무서우니까 안 먹는다 말도 못 하고 삼키다가 나중에는 막 다 올리는 거라.


- 엄마, 나도 그때 기억난다. 희경이 언니 집에서. 맞제?


- 그래, 맞다. 맞다. 희경이네 집에서. 내가 참... 왜 그켔는지, 니가 토하고 카는데도 내가 막 '아이, 가시나. 그걸 삼켜야지 토하면 어떻게 해!!' 그카면서 니를 혼내고. 우리 유나는 희한하게 다른 건 다른 아들보다 다 빠른데 알약을 못 먹었어. 제법 컸을 때까지도 이상하게 그걸 못 삼키대. 근데 나는 아가 아프니까 약을 먹여야 된다는 그 생각만 해가 못 삼키는 아한테 삼키라고 윽박지르고....... 의사 쌤한테 가루약을 달라카든지 빻아서 맥이든지, 약국 가면 그 캡슐도 판다는데 거 넣어가 멕이든지 카면을 될 걸. 약 먹여야 되니까 그 생각만 해가. 한 번씩 그 생각을 하면 왜 그캤는고 싶다. 아를 왜 그래 막 혼을 냈는고, 혼낼 일도 아니었는데 싶다카이.


- 맞다. 내 꽤 컸을 때도 알약 못 먹어서 내과 쌤이 맨날 "이제는 알약 먹나?" 물어보고 그캤잖아. 놀리고. 엄마 근데 내 그때 기억이 나는데 약이 아니고 클로렐라였다, 녹차 클로렐라.


- 에에? 아이다. 약이다. 그라이 내가 그캤지. 약을 믹이야 되니까. 클로렐라 같은 거였으면 안 캤지. 꼭 물 필요도 없는데.


- 아이다, 엄마. 내가 그거는 기억이 확실히 난다. 클로렐라였다. 동네 아줌마들이 내 팔에 닭살 있는 거, 그거 없애는데 클로렐라가 좋다 캐가. 그 완두콩 만한 거 다섯 알인가 여섯 알인가 씩 먹는, 그거!


- 맞나? 그카면 안 먹어도 될 걸 왜 그캤는고. 꼭 무야 되는 약도 아니고.......(한참 동안 침묵)....... 미친년. 니한테 막 소리 지르고 캤는 거 생각하면 내가 미친년 같고 가슴 여가 막 콱 막힌 것 같고 그렇다. 진짜 미친년 아니가 그거?



엄마는 내가 쓸 단추를 골라주고는 재봉틀에 앞에 가 앉았다. 엄마는 내 등 뒤에서 재봉틀로 가방을 만들고 나는 엄마 등 뒤에서 바늘 쌈지에 단추를 달았다. 다시 이어지는 엄마의 고백. 이번에는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 한 날은 있제. 나리네 아줌마가 저거 집에 놀러 오라 카는 거야. 그래가 준비를 막 해가 가는데, 그날따라 빈아가 얼마나 애를 먹이는지. 애를, 애를 먹이는 거야.


- 그럼 가지 말지 그랬노.


- 그케. 안 가면 될 낀데. 아마 그때 나도 너거 키우느라 하루 죙일 집에서 아만 보니까 심심하고 그캤겠지. 가고 싶었겠지, 심심하고 카니까. 그래가 빈아가 애를 먹이는 와중에,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니가 뭔 잘못을 했어. 엄마가 하지 말라 카는 걸 했는지, 우옜는지. 그케봤자 아가 잘못을 하면 얼마나 했겠노, 맞제. 별 일도 아니었을 낀데....... 니가 뭘 잘못을 하니까 내가 순간 짜증이 확 나가 길에서 니를 막 혼내면서.......


엄마는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니를 막 혼내면서, 볼때기를 꼬집고 막 흔들었어. 니는 막 울면서 '엄마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카는데 나는 막 썽이 나가 악을 지르고. 미쳤지, 진짜 미쳤지. 지가 지 분을 못 이겼는 기지.


- 그래? 엄마, 나는 이거는 기억이 아예 안 나는데?


- 글나? 그카면 다행이지. 감사하지. 기억에 남았으면 시간이 지나도 니 쏙이 많이 상했을 낀데. 아무튼 내가 막 아 볼을 꼬집고 흔들고 막 카니까,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내한테 막 소리를 지르는 거라. '아줌마! 애한테 왜 캐요. 애한테 왜 그캅니까!! 아줌마 미쳤어요?' 사람들 다 있는 길에서 내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를 막 혼내키는 거라. 그제야 부끄럽대. 그때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막 쪽팔려 죽겠고. 에미라 카는게 지 기분을 지가 못 이겨가 아한테 막 캤다 싶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그카대. 그 아저씨가 그냥 카는게 아니고 막 소리를, 소리를 지르대. 내 정신 차리라고 캤겠지, 쟈도 지 정신 아니다 싶어가. 정신 차리라고 캤겠지.


- 그러게. 그 아저씨도 착하다. 요새 같으면 다 지 일 아니라고 모르는 척 지나갈 낀데. 그래서 엄마, 나리언니네 집에는 갔나? 그 와중에.


- 어, 거의 다 와서 캤으니까 갔지. 갔는데 나리 엄마가 내 기분을 살피고 기분이 안 좋으니까, 막 먹을 걸 주면서 달랬지. '애들 키울 때 다 그칸다. 괘안타. 아는 모른다. 금방 까묵는다. 괘안타.' 괘안킨 뭐가 괘안노. 나는 안 괜찮지. 그케도 내 속으로는 '유나야, 오늘 일은 기억하지 마래이. 엄마가 잘못했다. 절대 기억하지 마래이.'


- 엄마 기도빨 직빵이네? 내 기억 하나도 안 난다.


-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한 번씩 이래 혼자 작업실에 나와가 하다 보면 이 두 가지가 기억나. 한 번씩 떠올라. 비 오고 그런 날에 떠오르면, 가슴이 막 콱 막히고 답답하고, 후회스럽고. 지나고 나서 내가 살아보니, 니도 앤데 스스로 혼자 다 하니까 아가 어른인 줄 알고....... 한 번씩 길 가다가 애 엄마들이, 힘드니까, 엄마들도 힘들거든. 힘들어가 그런 줄은 알지만, 길에서 막 아를 혼내고 그런 걸 보면 내 칸다. '아이고, 아줌마요. 아줌마, 그 카지 마세요. 얼마나 후회할라고 그캐요. 나는 우리 딸 시집갈 나이가 다 됐는데 아직도 그게 가슴에 남아가 미안하고 그캐요. 후회하지 말고 그카지 마세요.' 사람들이 카제? 맞을 짓 하니까 맞지. 그거 다 미친 소리다. 내 안카나, 아가 말을 안 들어가 맞아야 된다 카면, 어른들은 다 맞아 디져야 된다. 어른들 말 안 듣는 거에 대면 아들은 말 잘 듣는 기다.


- 엄마, 생각하지 마라. 내 기억 하나도 안 난다.


- 그런 생각 한 번씩 나면 나는 속으로 칸다. '유나야, 미안하데이. 엄마가 몰라서 칸다. 용서해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몰라서 칸다. 한번 더 하면 진짜 잘해줄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싶지 뭐.



엄마가 울었다. 엄마의 사과에 애써 참으려던 나조차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금 내 나이 스물여덟. 엄마가 뱃속에 나를 가졌을 때 보다도 두 살이나 더 많은 나이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딸인 것에만 익숙한데 나보다 더 어렸을 그때의 엄마는 또 얼마나 서툴었을까. 엄마에게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콱 막힐 만큼 상처가 된 그날의 일을 정작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마도 엄마가 나에게 잘못한 날보다 잘한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일 테지. 딸의 혼인을 앞둔 엄마는 자꾸만 당신의 첫 아이, 나의 어린 날들을 돌이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보다 더 앳되었을, 엄마의 어린 날들이 아른거린다.


- 엄마, 내가 나중에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물으면 엄마는 늘 같은 답을 한다.


-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엄마보다 더 잘하지. 그라고 엄마처럼은 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한 실수를 잘 들어놨다가 나중에 니 새끼한테는 하지 마라. 우리 딸은 똑똑해가 다 잘하지 싶다.


엄마&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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