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51세입니다. 아직 부모님도 살아계시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지만 얼마 전 교회 주보에서 상례 정보를 읽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누구누구의 모친, 부친, 조모 등의 윗 세대의 상례에 대하여 안내를 합니다. 비교적 큰 교회라 매주 상례 칸이 비어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어떤 주에는 5명이나 상례 정보가 있어서 놀랐던 적도 있죠.
청년이 죽었습니다. 청년부의 누구누구라고 쓰인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갈 때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절감합니다.
죽음 뒤에는 내가 살던 공간은 그냥 무채색으로 멈춰집니다. 내가 활동하지 않으니 나로부터 야기되는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많은 일이 벌어집니다. 평소에 생각지도 못하던 것들이.
죽은 사람은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죽기 전에 나의 장례는 어떤 모습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그걸 말해 두었나요? 내 소유물은 어떻게 나누고 싶다고 말했나요? 아무 소용없습니다.
명백하게 유언으로 확정되지 않은 것은 이제 모두 남겨진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당신의 평상시 소원하던 장례 절차는 이제 타인이 결정합니다. 당신의 몸은 오직 남은 가족이 알아서 처리할 뿐입니다.
어디에 묻히기를 원했었나요? 당신의 장례비용을 지불할 동생이나 친척이 결정하는 대로 화장을 할지도 모릅니다. 장례식장은 돈을 주는 사람의 의견을 따를 겁니다. 생전 당신의 바라던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사실 이미 죽은 뒤의 육체를 처리하는 것은 도리어 쉬운 쪽입니다. 더 큰 것은 남아있는 모든 물건들과 권리와 소유물을 정리하는 겁니다. 혹시 계좌 말고 어딘가 현금 또는 귀중품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산과 부동산을 정리하는 것은 금전적인 청산이지만 누군가 애써서 처리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기에 바쁜 시기에 아들이나 딸이 뛰어다니며 서류 처리에 온 정신을 쏟아야 할지 모릅니다.
죽음이란 결국 그 주민번호를 가진 사람의 기록의 삭제를 의미합니다. 온갖 의무와 권리, 그리고 구독권과 빚까지 다른 사람이 대신 정리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은 아마도 남아있는 가족이 되겠죠.
컴퓨터에 있는 직박구리 폴더는 완전하게 삭제하셨는지요? 창고에 박아 놓은 채 20년은 열어보지 못한 과거의 편지나 사진첩은 어떤가요? 과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은가요? 책 속에 넣어둔 비상금은 책과 같이 버려질지도 모릅니다.
보험, 증권, 은행, 자동차, 심지어 당신의 애완동물도 이제 당신이 직접 처리할 수 없습니다. 1인 가구였다면 아무도 당신의 집에 있는 물건들의 목록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누구에게 줄지 모두 다른 사람이 결정할 겁니다.
내가 창고에 집어넣은 이삿짐 박스 안에 무엇을 들었는지 나도 모르는데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정말 언젠가는 집안을 뒤집어 필요 없는 물건을 싹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니멀리즘의 자연스러운 체화라고 해야 할까요? 이젠 정말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살아가며 필요한 일상생활용 소모품만 다시 채워 넣을 뿐.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가족과 본인에게 있다면 축복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사만큼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겠죠. 하지만 매일 아침에 집을 나선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땅을 우아하고 품위 있게 떠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무척 많은 일거리를 던지니까요. 나중에 해야지 싶던 일을 다시 처리할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죽음마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미리 주변 정리를 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겨질 아이들과 미망인이 될 아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준비하는 과정은 어떨까요?
오늘의 질문: 당신의 창고는 정리되었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