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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Aug 17. 2020

셀축에서 만난 사람들

* 2014년 11월 터키 여행 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됩니다.




파묵칼레 버스회사에서 셀축으로 가는 표를 사고 나왔는데 혼자 여행 온 한국인 여자를 마주쳤다. 난 라면을 먹으러 갈 거라고 하니 같이 먹자고 하길래 함께 무스타파 할아버지네서 라면을 먹었다. 파묵칼레에서 라면이라니! 정말 반갑고 맛있었다. 우리는 공원의 호숫가로 가서 오리를 구경하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서 무료로 소파 정도를 얻어 잠을 자는 방식인데 용감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여행하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나도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1시까지 파묵칼레 버스회사로 갔다. 픽업 버스를 타고 오토갈로 와서 우연히 카파도키아, 페티예부터 마주친 여행자 3명을 만나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다. 여행 코스가 다 비슷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종종 마주친다. 낯선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낯을 많이 가리던 나조차 반가워서 어느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생각보다 버스가 좋아서 편하게 왔다. 셀축에 도착한 뒤 같은 호텔에 묵는 한국인 부부와 같이 호텔에 와서 체크인을 했다. 부부가 먼저 체크인을 하고 올라갔다. 내 차례가 되어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 룸으로 올라왔는데 방 문을 열자마자 남자 팬티가 널려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층 침대를 보니 청바지가 널려있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도미토리 룸이지만 낯선 남자와 같은 방을 쓴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 불편하고 불안했다.


호텔 주인에게 여성 전용 도미토리로 방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는 믹스 도미토리뿐이라고 했다. 별 수 없이 싱글룸으로 바꿔야 했다. 10 리라를 더 내고 싱글룸으로 변경했다. 방으로 올라가 보니 싱글 침대가 두 개나 있고 꽤 넓었다. 짐을 풀고 셀축 기차역으로 갔다.



셀축 기차역


기차역에서 내일 공항으로 가는 표를 구매하고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혼자서 유럽 여행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정말 멋져 보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머니께서 추천해주신 맛집에 찾아갔다. 쵭 쉬쉬(양꼬치) 맛집이었다.


젊은 터키 남성들이 운영하는 포차 수준의 작은 식당이었다. 길 한복판에 있어서 뭔가 재미있었다.


양꼬치 한 접시를 주문해 먹었는데 먹다가 맨 아래 비계를 씹는 순간 턱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한국에서 먹던 맛에서 느낄 수 없던 양 누린내가 미친 듯이 느껴졌다. 비곗살만 빼고 다 먹었다. 직원에게 부탁해 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한국인 말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파묵칼레에서 같은 룸을 썼던 여자애였다. 그녀는 내가 방을 변경하기 전의 도미토리 룸에서 묵게 되었다고 했다. 전에 내가 이 호텔에 예약했다고 말해서 이 호텔로 왔다고 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피데 맛집으로 갔다. 버섯 피데와 양고기 쾨프테를 주문했다. 피데는 참 맛있었는데 양고기는 누린내가 너무 나서 거의 못 먹었다. 한참 떠들고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웬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내 품으로 들어왔다. 너무 예뻐서 안고 호텔 앞까지 와버렸다. 품에서 내려주고 돌려보내기가 어려웠다.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여자애한테 내 방에 싱글 침대 두 개니까 여기에 와서 자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거절했다. 순간 내가 겁쟁이처럼 느껴졌다.



버섯 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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