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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Aug 21. 2020

여행 마지막 날, 귀국하다

* 2014 11 터키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됩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 7시쯤 나와서 다시 셀축 거리를 걷다가 상점들이 다 닫혀있어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배낭을 싸놓고 8시쯤 조식을 먹으러 1층 로비 옆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어제 만난 한국인 여자애가 있어서 같이 먹었다. 어제 도미토리 룸에는 한국인 남자애가 있었다고 한다. 방을 바꾼 것이 오버였나 싶어 괜스레 머쓱했다.


이 호텔의 사장은 한국인 여자였는데 친절히 대해주었지만 워낙 호텔이 후져서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방이 너무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짐을 로비에 맡기고 체크아웃을 한 뒤 여자애와 쉬린제 마을에 가기로 했다. 쉬린제 마을은 와인으로 유명한 곳인데 오토갈에서 돌무쉬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했다. 마을 입구에 내려걸으니 조용한 시골마을에 온 느낌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상점들이 즐비해서 구경했다. 캐시미어 제품들을 저렴히 판매하길래 가족들 선물로 이것저것 샀다.


쉬린제 마을



마을을 걸으며 구경하는데 어떤 쿠샤다스의 셰프란 터키인이 길 안내를 해주겠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높은 지대로 올라가 폐허가 된 건물들을 구경하다가 영 이상해서 그냥 우리끼리 내려와 시장 골목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떤 와인 가게를 발견해 들어가 보았는데 와인을 맛 별로 시음할 수 있었다. 여러 맛 중에 복숭아 맛 와인이 정말 맛있었다. 한 병 사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배낭 하나로 여행 중이라 담아갈 곳이 없어서 포기했다.



시음용 와인들



그 옆 가게에선 땅콩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땅콩에 깨를 묻힌 것이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두 봉지를 사고 난 기차 시간이 다가와 여자애와 인사하고 급히 셀축으로 돌아갔다.


여행 마지막 날인 것이 너무 아쉽기도 했지만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기차역으로 갔다가 어느 한국인 부부를 마주쳤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차가 와서 올라탔다. 기차는 만석이어서 짐칸에 배낭을 내려놓고 서서 갔다. 가다가 터키 청년들이 빈자리에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했지만 괜찮다고 거절했다. 금방 도착할 것 같아서... 근데 50분 정도를 서서 갔다.


이즈미르 공항 역에 내려서 탑승 수속을 밟고 나니 배가 고파 버거킹에 갔다. 버거와 감자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공항에 동양인은 나뿐이어서 다들 나를 신기한 듯 보았다. 셀축에서 이스탄불까지의 비행은 약 한 시간가량 걸렸다.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다리다가 대한항공 탑승구로 갔더니 연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얼떨결에 시간이 많아져서 면세점에 갔다. 남은 돈으로 엄마와 내 립스틱을 하나씩 사고 로쿰과 친구들 선물도 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돈이 다 떨어져서 저녁으로 피자 한 조각을 사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했다.


대충 9시쯤이 되어 탑승구로 가보니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패키지 관광을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혼자 바닥에 앉아있는데 어떤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어왔다. 혼자 여행 왔는지, 몇 살인지, 궁금한 것이 많으셨는지 한참이나 내 옆에서 수다를 떨었다.


드디어 탑승 시간이 다가와 내 자리를 찾아갔는데 난 터키쉬 할아버지 옆 옆 자리였다. 창가 자리라 풍경 보긴 좋지만 화장실 갈 땐 불편했다. 할아버지한테서 약간 양 누린내가 나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시종일관 웃으며 우린 서로를 배려했다.


13시간 동안의 사육이 시작되고 영화 ‘용의자’, ‘What If’를 보다가 졸다가 하다 보니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빠가 분명 마중 나오기로 약속했는데 휴대폰을 켜고 유심칩을 바꾸고 연락해보니 일이 있어 못 온다고 했다.


젠장. 지갑을 열어보니 한국 돈이 하나도 없었다. 비상용 돈과 체크카드가 든 지갑을 첫날 공항에 오면서 아빠 차에 두고 내렸던 것이다. 배낭 안주머니를 뒤져보니 오백 원짜리 한 개와 백 원짜리 두 개가 있었다. 공항철도를 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공항철도를 타는 역 개찰구 앞 벤치에 앉아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왜 그러냐 하셔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2천 원을 주셨다. 방법은 모르나 나중에 갚겠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검암역까지 갔다. 검암역에서 택시를 타고 엄마 회사로 갔다. 다 와서 엄마에게 전화해 택시비를 결제하고 회사 소파에 배낭을 베고 눕자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여행이 어땠냐는 엄마의 물음에 그냥 간결한 대답이 나왔다.


정말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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